갈길 잃은 한부모 지원정책

남편과 이혼한 A씨.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데, 한부모가족 지원정책의 수혜대상에서 탈락했다. 이유는 황당했다. “월급이 많아요.” 경제사정을 이유로 부인과 헤어진 B씨. 직업교육을 받기 위해 중고차를 샀는데, 그 때문에 한부모가족 지원정책에서 탈락했다. 이쯤되면 가난해야만 한부모지원정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진다. 한부모 정책,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한부모가족 지원정책의 역설과 눈물을 짚어봤다. 

우리나라 한부모 가구수는 지난해 기준 153만9362가구에 달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남편과 이혼 후 네살배기 아들을 홀로 키우는 김영희(가명·37)씨는 올해 1월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다. 작은 회사의 사무보조직이었다. 월급(실수령액)은 170만원. 최저시급(174만원·8350원×209시간)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고 우려했지만 김씨는 개의치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돈을 버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부모가정 지원정책에 거는 기대감도 한몫했다. 지난해까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김씨는 한부모가정 지원 대상으로 지정돼 월 13만원의 아동양육비를 지원받았다. 그 돈이 올해 20만원으로 상향됐으니, 기대감이 클 만도 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해당 지자체로부터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의 월급이 정책지원 대상인 중위 소득(209만6528원·2019년 기준)의 52%인 151만1395원보다 많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는 “중위소득 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최저임금보다 적게 벌어도 지원이 안 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 경제적인 이유로 아내와 헤어진 박철수(가명·46)씨는 초등학교(10살)와 중학교(14살)에 다니는 두딸과 함께 지방에 계신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박씨는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직업교육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박씨가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데에 있었다. 고민 끝에 박씨는 큰마음을 먹고 300만원짜리 중고차를 구입했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 됐다. 중고차 가격 300만원이 소득인정액으로 계산되면서 한부모가정 지원대상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참고 : 소득인정액을 계산할 때 자동차는 재산의 소득환산율 월 100%를 적용받는다. 다른 사람 명의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박씨는 관련 기관에 해결 방안을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황당했다. 배기량 1600㏄ 미만의 승용차 중 연식이 10년 이상이거나 차량가액이 150만원 미만인 차량만 소득인정액에서 제외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가진 재산이라곤 중고차 한대가 전부인데 최소한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한부모가족 지원을 받기 위해선 영원히 가난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한무모가족 지원책이 현실의 어려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가족의 의미가 변화하면서 한부모가족은 부쩍 늘어났는데, 지원책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이유에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부모가족의 수는 153만9362가구에 이른다. 전체 가구의 7.5% 비중이다.

한부모가족에게 정부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한부모가 경제적 문제와 양육을 모두 책임지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부모의 월평균 소득은 219만6000원으로 전체 가구의 평균 소득(389만원)의 56.5%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은 되레 길었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한다는 한부모가 41.2%에 달했지만 주5일제 근무를 하는 부모는 36.1%뿐이었다. 일과 가정 양립은 한부모에겐 ‘그림의 떡’이었던 셈이다.

사실 한무모가족이 받을 수 있는 복지혜택은 많다. 아동양육비(월 20만원), 추가 양육비(만 5세이하 월 5만원), 중고등학생 학용품비(1인당 연 5만4000원), 전기·가스·수도 등 요금감면정책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한부모지원정책 지원대상의 기준이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월 소득인정액이 151만원(2인가구 기준)을 넘으면 대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

요금전기·가스·수도 등 요금감면 혜택도 월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60%(2인 가구 기준 174만3917원)를 넘으면 받을 수 없다. 여기에 자동차 등의 재산이 있으면 탈락 확률이 높아진다. 주거급여·교육급여 등의 다른 복지혜택도 마찬가지다. 복지정책마다 다른 소득인정액 기준에 발목을 잡히기 일쑤다. 주거급여와 교육급여의 소득인정액은 각각 44%, 50%로 한부모가족 기준인 중위소득 52%보다 더 낮다.

최저시급 못 받는 가구마저…

새로운 정책의 도입이 더디다는 점도 문제다. 한부모가족 중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숱하게 많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양육비 문제가 도마에 오를 때마다 비양육자의 양육비 지급을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메아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문제의 심각성 때문인지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 공약 중 하나로 ‘양육비 대지급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비양육 부모를 대신해 국가에서 양육비를 지급하고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권이 반환점을 돌 때까지 정책은 도입되지 않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낮다. 현재 양육비 지급을 거부하는 비양육자를 처벌·규제하는 법안(5건)과 양육비 대지급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법안(2건)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법안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될 상황에 놓였다.

김미경 대한한부모협회 도담도담 대표는 “한부모가족의 아동양육비가 지난해 13만원에서 올해 20만원으로 상향조정됐지만 이를 받을 수 있는 한부모는 제한적”이라며 “이는 남들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하는 한부모에게 도움을 받고 싶으면 일정 수준 이상 벌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자녀가 미성년자일 때까지만이라도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며 “한부모 지원정책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히 크다”고 토로했다.

한부모가족 지원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숱하다. 한부모가족을 지원하는 건 여성가족부 소관이다. 하지만 복지혜택을 신청해야 하는 곳은 보건복지부나 지자체다. 게다가 한부모가 직접 챙기지 않으면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신청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현실 반영 못하는 한부모 지원정책

황은숙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회장은 “2012년부터 여가부에서 한부모가족 정책을 소관하고 있지만 한부모가족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의 지원정책을 안내하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면 여가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부모가족의 정보를 파악하고 지원할 전담 기구가 필요하다”며 “한부모를 지원하는 경제적 기준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한부모가족지원법 3조 2항에는 이런 내용이 적시돼 있다. 한부모가족의 모 또는 부와 아동은 한부모가족 관련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한부모 지원정책에 가장인 동시에 자녀양육까지 책임져야 하는 한부모의 어려움이 담겨 있는지는 의문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