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부대 피싸움과 혈세

입영장병 혈액검사사업에 예산 155억원이 책정될 전망이다. 대한적십자사가 하던 검사를 민간의료기관으로 교체하는 데 따른 비용이다. 애초엔 7억원 수준이었다. 정부예산을 크게 늘려 혈액검사사업을 민영화하겠다는 건데,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공공재인 군 혈액을 왜 민간에 넘기느냐는 게 첫째 의문이다. 둘째는 민간의료기관이 감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군 부대 피싸움과 혈세 증액 논란을 단독취재했다. 

입영장병의 혈액검사 사업이 민영화 될 처지에 놓였다. 책정된 혈세가 155억원이나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입영장병의 혈액검사 사업이 민영화 될 처지에 놓였다. 책정된 혈세가 155억원이나 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군대에 입소한 장병은 누구나 혈액검사를 받는다. 매년 25만여명이다. 검사항목만 BㆍC형 간염 항체, 에이즈 감염 여부, 염증반응 등 16종에 이른다. 군 복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지 미리 판단하겠다는 취지다. 검사담당기관은 대한적십자사다. 1993년 국방부와 협약을 맺고 입영장병 혈액검사를 도맡아왔다.

내년부턴 검사기관이 바뀔 전망이다. 공공기관인 대한적십자사가 아닌 민간의료기관에 입영장병 혈액검사를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쉽게 말해, 혈액검사 사업을 ‘민영화’하자는 거다. 현실화 가능성은 높다. 2020년 국방부 예산안에 ‘진료지원(입영신체검사 민간위탁)’ 사업이 추가됐다.

지난 11월 5일 이 예산안의 국방위원회 예비심사가 처리됐고, 지금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에 이름을 올려둔 상태다. 예결위를 통과하고 본회의 관문만 넘어서면 민영화 수순을 밟게 된다. [※ 참고 : 20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는 10일 오전에 열린다.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상정해 처리할 계획인데, 해당 예산은 변동될 가능성도 있다.]

이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155억원이다. 당초 정부안(25억800만원)에서 심사를 통해 129억9200만원이 증액됐다. 대폭 늘어난 이유는 민간의료기관의 검사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2016년 1월 기준 국방부가 조사한 민간의료단체의 계약단가는 검사 1건당 4만7307원이었다. 

지금은 가격이 더 올랐다. 예산안 심사회의 때 국방부는 ‘1건당 6만5000원’을 언급했다. 매년 25만건의 입대장병 혈액검사가 이뤄지는 걸 감안하면, 검사에 필요한 비용은 120억~160억원이다. 

국방부는 그간 매년 7억원 안팎의 재정만 썼다. 대한적십자사의 검사비용이 1건당 평균 2800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두 기관은 검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만 청구하기로 협약했다. 이는 대한적십자사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맺을 수 있던 협약이었다. 민간의료기관에 이런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민영화 사업에 155억원이라는 막대한 혈세가 책정된 배경이다.

민영화 예산 국방위 예심 통과 

굳이 예산을 책정해 군 혈액검사를 민간의료기관에 맡겨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이를 두고는 갑론을박이 오간다. 국방위 예산안 심사 회의록을 종합하면 민영화 추진 근거는 다음과 같다. “자격도 없는 대한적십자사가 검사를 독점하고 있는 탓에 군 혈액관리가 방만해졌다.”

회의록을 바탕으로 하나씩 풀어보자. 첫번째 근거는 ‘불법’이다. 의료법 제33조 제1항에 따르면 혈액검사 등의 의료행위는 원칙적으로 ‘의료기관’만 시행할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의료사업을 사업목적으로 두고 있는 공공기관이지만, 의료기관은 아니다. 대한적십자사가 그간 불법으로 검사를 해왔다는 거다.

대한적십자사 설명은 다르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법률 자문을 통해 ‘의료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받아뒀다”면서 “불법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기관 등록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적십자사가 의료법을 어기고 검사를 한 거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국방부가 26년간 이뤄진 불법검사를 방관했다는 얘기라서다. 

국방부와 대한적십자사의 돈독한 협력관계를 문제 삼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 역시 어폐가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대한적십자조직법에 규정된 ‘전시 군 의료보조기관’이다. ‘군 혈액공급에 관한 협약’ ‘군 혈액관리규칙(국방부령 제909호)’ 등에 근거해 전국 16개 군병원에 혈액을 전량 무상공급하고 있다. 전쟁시 군에 혈액수급을 책임지는 곳도 대한적십자사다. 군부대 전시채혈반의 교육과 각종 기자재를 지원도 담당하고 있다. 

국방부와 대한적십자사는 협업도 많다. 가령, 전사자 신원 확인엔 대한적십자사가 보유한 혈액 검사 데이터가 활용된다. 전ㆍ평시 안정적인 혈액수급이 군부대엔 필수인 만큼, 국가혈액사업을 주도하는 대한적십자사와 국방부는 불가분의 관계다.

민간의료기관 검사는 다를까

이 때문에 입영장병 혈액검사 민영화 사업이 추진되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의사이자 공군 군의관 출신의 윤일규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은 “호시탐탐 신규 이권을 노려왔던 민간혈액기관에서 군 혈액검사 사업의 민영화를 추진해달라는 민원을 국회에 넣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 사업에 민간이 개입할 경우, 군 혈액관리가 이들의 수익창출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혈액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한적십자사의 군 혈액관리에 문제가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민간의료기관으로 대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민영화에 따른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민영화의 가장 큰 이점으로 꼽히는 ‘경제적 논리’를 내세우는 것도 어렵다. 이 사업 민영화 과정엔 적잖은 혈세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의료기관에 입영장병 혈액검사사업을 넘기자는 쪽에선 이 주장에도 반론을 편다. “혈액검사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정부예산을 늘리는 게 뭐가 문제인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예산안 심사 중 한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은 “병사 혈액 검사 비용은 우리가 충분히 예산을 따내줄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합법적인 기관에 최고의 혈액검사 시설로 맡기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민간의료기관이 입영장병에게 적합한 최고의 시설일지는 의문이다. 진단의학 업계 관계자는 “대한적십자사가 국가 혈액관리 업무를 위탁받아 전국 곳곳에 혈액원을 두고 있는 만큼 검체를 안전하게 유통하고 보관하는 인프라 역량만큼은 민간 의료기관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수익성을 좇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군 혈액검사 사업에 적합한 사업자”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한적십자사는 혈액사업 회계가 따로 분리돼있다. 이익금이 나도 오로지 혈액사업 목적으로만 쓴다. 반면 민간의료기관은 다르다. 정부사업을 수주해 얻은 매출로 인식될 뿐이다. 그렇다고 감사를 받는 것도 아니다. 

국정감사, 감사원의 피감기관이자 매년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회계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 대한적십자사와 달리 민간 의료기관에겐 이런 의무가 없다. 공공성 측면에선 대한적십자사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따지면 혈액검사 민영화 사업은 155억원의 혈세만 낭비하는 셈이다. 

군 혈액이 경쟁의 대상인가

그럼에도 추진되는 이유는 뭘까. 윤일규(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최근 군 혈액사업의 주도권을 놓고 대한적십자사와 민간업체가 벌이는 경쟁이 치열하다. 이 이슈 역시 단순히 혈액검사기관을 정하는 싸움이 아니다. 군 혈액사업 전반을 둘러싼 이권 갈등으로 번질 공산이 크다. 혈액검사 사업에서 민영화 물꼬를 트고 나면, 나머지 사업에서도 민간기관이 기웃거릴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영장병 혈액검사사업만 민영화가 추진된 건 아니다. 군 단체헌혈사업도 문호개방 요구가 빗발쳤다. 혈액검사사업이 민간의료기관 몫이 되면, 단체헌혈사업도 같은 논리로 민간혈액원에 개방될 공산이 크다. 이런 가능성은 국방위 예산안 심사 당시 한 수석전문의원의 발언으로도 엿볼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군 부대 단체헌혈을 받는 조건으로 민간의료기관보다 혈액검사 비용을 싸게 받고 있다. …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혈액검사 비용을 싸게 받지 말고, 현실화(민간의료기관에 위탁)시켜서 한마음혈액원이나 다른 혈액기관하고 (군 부대 단체헌혈사업을 두고) 경쟁을 시켜라. (혈액검사 민영화 사업은) 이런 취지의 사업이다.”

군 혈액관리 사업을 민간에 개방해 ‘시장경쟁 체제’를 갖추라는 건데, 이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군 혈액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내 전체 헌혈 실적에서 군 장병 헌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2%(2018년 기준)로 높다. 

부족한 혈액수급 문제를 군 장병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혈액업계 관계자는 “윗선의 지시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군 조직의 특성상 헌혈실적만 무리하게 끌어올리는 꼴사나운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이는 헌혈의 순수한 봉사의 의미가 퇴색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매년 25만명의 혈액검체 관리를 민간 시장에 맡기고, 이를 어떻게 관리할지는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 예산 책정이 확정된 건 아니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세워둔 건 없다”고 설명했다. 군 혈액관리 사업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게 생겼다. 그만큼 민영화의 그림자는 짙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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