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모델 왜 뜨나

언뜻 보니 김완선이다. 90년대 초 히트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부르며 격렬하게 춤을 춘다. 그때 모습 그대로다. 금색 드레스에 점퍼를 입은 고령의 여배우가 빛을 낸다. 70년대 배우 문숙이다. 그때보다 기품이 멋지게 흐른다. 김완선, 문숙, 김칠두…. 시니어 모델이 인기다.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니어 모델이 난데없이 소환된 이유는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나이 잊은 마케팅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유통가에 시니어 모델이 부상하고 있다. 이들에게 열광하는 젊은층과 소비력을 갖춘 중장년층 모두를 잡을 수 있어서다. [사진=뉴시스]
유통가에 시니어 모델이 부상하고 있다. 이들에게 열광하는 젊은층과 소비력을 갖춘 중장년층 모두를 잡을 수 있어서다. [사진=뉴시스]

# 지난여름, 가수 김완선씨의 유튜브 채널에 뮤직비디오 한편이 게재됐다. 신곡의 비디오가 아니었다. 29년 전 발표한 노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였다. 삐에로와 좀비가 등장한 호러 콘셉트의 뮤직비디오에서 김씨는 좀비 사이를 누비며 멋진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뮤직비디오가 올라오고 일주일 후, 에버랜드는 자사 유튜브 계정에 김씨의 노래를 개사한 광고를 게재했다. 김완선씨의 뮤직비디오가 에버랜드와 제일기획의 핼러윈 축제 홍보용 프로젝트였던 거다.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는 191만회를, 에버랜드의 광고는 446만회를 기록했다. “광고지만 끝까지 봤다” “기획자에게 상 줘야 한다” “지금 봐도 김완선씨가 세련됐다” 등 호평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 반짝이는 금색 드레스에 커다란 금 귀걸이를 한 백발의 여성이 카메라를 응시한다. 드레스보다 눈에 띄는 건 그가 입은 겉옷이다. 알파벳 NY가 패턴을 이루는 점퍼가 드레스와 대조적이다. 백발의 여성은 맨투맨·점퍼·야구 모자 등을 우아하게 소화해 냈다. 이 여성은 70년대 대표 여배우 중 한명인 문숙이다. 올해로 65세인 그는 스트리트 캐주얼 의류 브랜드 MLB의 ‘모노그램 컬렉션’ 광고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뽐냈다. 문씨뿐만이 아니다. MLB 모노그램 컬렉션은 인기 시니어 모델 김칠두씨도 함께 캐스팅했다. 그는 1955년생(64세)이다.

유통업계가 ‘나이를 잊은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앞선 사례들처럼 과거에 활동했던 연예인을 다시 소환하거나, 주요 소비층의 연령대가 낮은 상품에도 시니어 모델을 캐스팅하는 식이다. 흥미롭게도 시니어 모델을 향한 젊은 소비자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김완선씨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2002년생 고등학생이 팬을 자처하기도 하며, 문숙씨가 광고한 MLB의 모노그램 컬렉션은 품절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니어 모델의 효과는 생각보다 많다.

■ 뉴트로 열풍과 맞닿아= 먼저 시니어 모델의 인기가 뉴트로 열풍과 이어진다는 점이다. 절판된 상품을 재출시하거나 복고풍 패키지를 리뉴얼하는 뉴트로 마케팅에 시니어 모델은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인기모델보다 뜻밖의 시니어 모델을 내세웠을 때 오히려 ‘신선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 젊은 소비층의 호감= ‘자기 관리를 잘 한’ 시니어 연예인에게 호감을 갖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은 또다른 효과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젊은 소비자 중엔 멋지게 나이든 연예인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동경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며 “그들이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광고에 나올 때 특히 호응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브랜드 가치 제고= 시니어 모델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도 제고할 수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광고모델로 배우 김혜자씨와 류준열씨를 함께 캐스팅했다. 김씨가 출연한 광고의 주제는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기 위한 여정이었다. 의류의 기능 대신 스토리를 강조한 광고였는데, 회사 측은 김씨를 캐스팅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리브랜딩 과정에서 아웃도어의 진정한 의미를 ‘자연을 즐기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김씨 같은 시니어 모델을 통해 이를 보여주면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78세인 김씨가 먼 타국으로 떠난 여행을 삶의 여정에 비유한 광고는 감동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아웃도어 모델이라고 하면 아이돌이나 젊은 남성이 대다수였다”며 “이번 광고로 자연을 즐기는 데에는 남녀노소나 제한이 없다는 걸 강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모델을 다양한 연령대로 설정한 덕에 브랜드 철학까지 강조하는 게 가능했다는 얘기다. 

‘자기 관리를 잘 한’ 시니어 연예인에게 호감을 갖는 소비자가 많다. [사진=유튜브 캡처]
‘자기 관리를 잘 한’ 시니어 연예인에게 호감을 갖는 소비자가 많다. [사진=유튜브 캡처]

■ ‘오팔세대’ 소비자 유인= 경제력을 갖춘 시니어층을 잡는 효과도 있다. 이들은 최근 들어 새롭게 주목받는 소비주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는 2020년 트렌드로 신중년층인 ‘오팔세대(58년생·Old People with Active Lives)’를 꼽았다. 오팔세대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를 중심으로 한 50~60대로, 여가 생활을 활발히 즐기는 세대다.

돈도 있고 ‘즐길 줄도 아는’ 이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자 이들을 잡으려는 움직임도 커졌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에이지리스(Ageless)’ 잡화·패션 편집숍인 ‘코너스(CORNER'S)’를 론칭했다. 아예 소비층의 나이 구분을 없애 다양한 취향의 시니어 층을 잡겠다는 거다.

하지만 시니어 모델의 효과가 과대포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마땅한 모델이 없는 탓에 시니어가 부각됐단 주장이다. 이를테면 반짝 트렌드란 거다. 경원식 브랜즈앤컴 대표는 “시니어 모델을 쓰는 건 20~30대가 아닌 경제력이 있는 중장년층을 타깃층으로 삼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아이돌을 제외하면 마케팅 효과가 있는 모델이 많지 않다. 특히 전 연령층의 호응을 이끌어낼 모델도 줄어들었다. 그러다보니 광고업계가 편안하고 익숙한 이미지의 시니어 모델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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