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과 쿠팡의 전략

쿠팡플렉스의 배송단가가 떨어지고 있다. 추정되는 이유는 하나, 배송인력이 늘었을 가능성이다. 쿠팡 역시 “시장 논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다. 배송인력이 증가한 것보다 쿠팡의 배송건수가 훨씬 더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배송인력의 증가가 배송단가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닐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플렉서의 배송단가를 떨어뜨린 건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민감한 질문에 펜을 짚어넣었다. 

쿠팡은 기존 플렉서 배송단가를 낮추면서 신규 플렉서 정착지원금은 확 올렸다.[사진=천막사진관]
쿠팡은 기존 플렉서 배송단가를 낮추면서 신규 플렉서 정착지원금은 확 올렸다.[사진=연합뉴스]

“원하는 날짜,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해 자유롭게 일하고 소득을 얻는 배송 일자리.” 지난해 8월 쿠팡은 새롭게 도입한 프리랜서 배송원 시스템인 ‘쿠팡플렉스’를 이렇게 소개했다. 당시 쿠팡은 쿠팡플렉서(쿠팡플렉스 배송원ㆍ이하 플렉서) 모집 광고를 통해 “시급 2만5000원 이상 가능”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내세웠다. 그러자 유연한 일자리를 원하던 이들 사이에서 플렉서는 제법 인기를 끌었다. 쿠팡 측에 따르면 플렉스 시작 이후 4개월여 만에 누적 플렉서 가입자 수가 30만명을 넘기도 했다.

물론 논란도 많았다. ▲지원자가 많고 적음에 따라 지역별로 1건당 배송단가 차이가 많이 난다는 지적 ▲배송 중 재해에 관한 책임 소재 논란 ▲플렉서 신원 확인 미비로 인한 우려 등 다양했다. 쿠팡 측이 내건 ‘시급 2만5000원 이상 가능’이라는 문구가 현실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당초 1건당 배송단가가 주간 기준 750원이었으니, 계산상 시간당 34개(2분 내 1개 배송)의 물품을 배송해야만 2만5500원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참고 : 건당 750원이라는 금액은 당초 쿠팡이 발표한 공식(주간 기준) 배송단가였다. 다만, 초기 단계에선 플렉서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건당 1000원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역 편차가 있는 것까지 감안하면 최저 배송단가였던 셈이다.]

이런 지적에 쿠팡 측은 “플렉서의 배송범위가 넓지 않다”면서 “숙련도가 쌓이면 속도 또한 빨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시급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플렉서로서 만족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 플렉서는 “주말 새벽에만 4시간가량 일했는데, 용돈벌이로는 쏠쏠했다”고 털어놨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여가 흐른 지금, 쿠팡플렉스의 인기는 이전 같지 않다. 가장 큰 원인은 배송단가 하락에 있다. 플렉서들에 따르면 기존 750원이던 주간배송단가는 500~700원선까지 떨어졌다.[※참고 : 지역마다 배송단가가 다르고 쿠팡은 배송단가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집계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일부 지역의 실제 변경가격을 반영했다.] 

주간배송단가보다 좀 더 높은 새벽배송단가도 1200~1500원 수준에서 1000~11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8개월가량 일을 했다는 한 플렉서는 “기존엔 3~4시간 배송하면 5만~6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는데, 지금은 물량만 늘고 단가는 내려갔다”고 꼬집었다. 지방의 경우엔 더 심각해 보인다.

A지역의 예를 들어보자. 올해 2월 초만 해도 A지역 배송단가는 새벽배송 기준 1500원이었다. 그런데 2월 11일 1200원, 21일 1100원, 25일 1000원으로 내렸다. 불과 보름 사이에 배송단가가 500원(-66.6%)이나 떨어진 거다. 쿠팡 관계자는 “배송단가는 시장 상황에 따라 오를 수도, 내려갈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배송단가가 올랐다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쿠팡 관계자도 이 부분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배송단가 왜 하락했나

배송단가가 하락한 이유는 뭘까. 쿠팡 관계자는 “배송인원이 늘면 배송단가도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쿠팡맨이 증가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쿠팡 사업장 내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지난해 12월 6010명에서 올해 8월말 7896명으로 31.3% 증가했다. ‘배송인원과 배송단가는 부(-)의 관계’라는 쿠팡 관계자의 말이 입증된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올해 2분기 기준 쿠팡의 일평균 배송건수가 전년 동기비(100만개→200만개) 늘었기 때문이다. 배송단가 하락의 원인을 쿠팡맨의 증가에서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배송단가가 하락한 다른 이유로 추정되는 건 하나다. 쿠팡이 인위적으로 배송단가를 내렸을 가능성이다. 쿠팡이 일용직 계약관계에 불과한 플렉서와 단가를 협의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익명을 원한 플렉서는 “순식간에 플렉서 지원자가 급증한 것도 아닌데 단가만 줄었다”면서 “쿠팡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췄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이 최근 진행하고 있는 신규 플렉서 정착지원금 인상 프로모션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배송단가 인하를 결정한 뒤 플렉서 지원자가 줄어들자 다시 신규 플렉서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여서다. 경기권의 한 지역의 경우, 올해 11월 1일 ‘신규 플렉스 정착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공지했다. 이에 따르면 쿠팡은 신규 가입자들에게 첫 배송 시 2만5000원, 두번째는 1만5000원, 세번째와 네번째는 각각 1만원씩 총 6만원을 정착지원금으로 준다. 

흔들리는 쿠팡의 혁신시스템

쿠팡 측은 “더 많은 이들에게 플렉서로 활동할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 플렉서는 “기존 배송단가를 낮추면 장기 플렉서들의 이탈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신규 플렉서를 유인하기 위한 전략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말을 이었다.

쿠팡맨의 증가가 배송단가 하락을 불러왔는지는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쿠팡맨의 증가가 배송단가 하락을 불러왔는지는 의문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문제는 이로 인해 플렉서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고, 동시에 배송서비스 질까지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배송 오류만 하더라도 경험이 많은 플렉서가 신규 플렉서보다는 더 적지 않겠는가. 단기 일자리이긴 해도 플렉서의 장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쿠팡이 비용절감에만 신경 쓰다 보니 쿠팡플렉스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플렉서 배송단가 하락과 신규 플렉서 유치 확대 전략. 이 둘이 의미하는 건 뭘까. 많은 이들의 추정처럼 쿠팡은 배송단가 인하의 파장을 막기 위해 신규 플렉서 유지전략을 꺼내들었을까. 그렇다면 이를 쿠팡 스스로 플렉서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고 해석해도 괜찮을까. 쿠팡은 이런 질문에 의미 있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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