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시장의 민낯, 돈도 정책도 현실도 따로 논다
창업시장의 민낯, 돈도 정책도 현실도 따로 논다
  • 최아름 기자
  • 호수 368
  • 승인 2019.12.1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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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금대출과 청년들

창업자금을 빌리고 싶어 은행에 갔다. 절실한 이유를 말하니, 애먼 답변이 뒤통수에 꽂힌다. “실적 갖고 오세요.” 뭔가. 가게를 만들 자금을 지원받으러 갔는데, 실적이라니…. 물어보니 그게 원칙이란 답이 날아온다. 젊은이들이 꿈을 키워야 하는 창업시장. 이곳에서 법과 제도, 현실이 따로 놀고 있다. 이래서야 돈도 없고 백 도 없는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겠는가. 더스쿠프(The SCOOP)가 창업시장의 민낯을 취재했다.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취업해서 노동의 대가를 받거나 창업을 해서 재화ㆍ서비스의 대가를 받는 거다. 둘 다 쉬운 길은 아니다. 지난해 새롭게 사업을 시작한 창업자는 약 137만명(국세청)이다. 같은 해 폐업을 선택한 사업자는 90만명이다. 폐업을 감안하면 순수하게 늘어난 사업자만 47만명에 이른다는 거다.

지난해만의 얘기가 아니다. 창업하는 사람은 꾸준히 생겼고, 늘어났다. 2016년 688만명이었던 총 사업자 수(국세청ㆍ국세통계)가 2018년 767만명으로 증가한 걸 보니, 매년 40만명씩 창업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는 거다. 적지 않은 수다. 취업자(연평균 20만명 증가)와 비교하면 증가폭이 더 두드러진다. 사람들이 창업을 여전히 쉽게 생각하는 걸까. 답을 찾아가보자.

일단 창업의 전제는 ‘자금’이다. 많든 적든 초기 비용이 필요해서다. 생각보다 사업이 잘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비상자금도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창업을 꿈조차 꾸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보다 예비창업자가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걸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통계자료를 보자. 2018년 기준 만 15세 이상부터 만 39세 이하의 청년에게 물은 결과다. 창업을 생각하고 실제로 실행에 옮긴 비중은 고졸 이하의 학력일 때(8.6%) 가장 컸다. 대학 재학생이거나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창업을 원하는 비중이 1.0%로 낮았다.

지역별로는 서울(3.6%)이 아닌 지방(8.7%ㆍ부산ㆍ울산ㆍ경남)으로 갈수록 창업 희망 비중이 높아졌다. 서울과 비교해 일자리가 많지 않고 취업시장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창업을 생각하고 또 결행할 비중이 높다는 거다. 이는 예비창업자가 경제적으로 유리하지 않다는 걸 입증한다. 아울러 어쩔 수 없이 창업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 누군가는 창업한다. 아니, 창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계형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업종은 무엇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예비 창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업종은 숙박 및 음식점업과 도소매업이었다. 숙박 및 음식점업을 선택한 예비 창업자의 비중은 24% 수준이었다. 당연히 창업 지원을 원하는 수요도 해당 분야에서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다.

가장 수요가 많은 지원정책은 ‘자금 지원’이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창업자의 30%는 ‘자금 지원’을 가장 시급한 지원책으로 꼽았다. 정부에 자금지원정책이나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다. 창업자를 위해 마련한 정부 기금만 올해 기준 2조원에 육박한다.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면 문제가 뭘까. 답은 간단하다. 정책의 수혜를 누리는 과정이 문제다. 정책을 이용하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거나 일부는 법의 보호를 받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힘들다.

창업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통칭 ‘창업자금대출 지원’을 살펴보자. 정부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1~2%)로 창업자금 대출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대출 한도나 조건 등을 살펴보면 모순이 숱하다. 이를테면 창업을 해서 매출을 일으켜야 그에 비례해 창업자금을 지원해주는 식이다.

이렇다보니 대출을 원하는 사람은 일단 가게부터 열어야 한다. 수중에 돈이 없으니 사업을 위해 신용대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게 ‘악순환’의 시작이라는 거다. 신용대출을 받으면 신용등급이 낮아지고, 이는 창업자금 대출을 받을 때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정부가 창업대출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실적과 함께 신용등급도 평가하기 때문이다. 든든한 지지기반 없이 시작해 도움이 절실한 창업자로선 위험을 끌어안고 발걸음을 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창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은행권의 대출제도와 현실의 괴리감은 예비 창업자들에게 장벽과 같다. 관련 제도가 설명된 대로만 운영된다면 상관 없지만 은행권의 대출심사과정은 외부 요소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정부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대출 담당자(은행원)를 설득하지 못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담당자가 대출제도를 잘 몰라서 과정이 멈추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익명을 원한 창업자의 말을 들어보자. “종종 방문해 친분을 쌓았던 은행원이 아니었더라면 창업 대출을 받는 것이 힘들었을 수도 있다. 제도는 있지만 제도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창업자 개인의 역량에 좌우되는 부분이 크다.” 은행에서도 정부 지원제도를 전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직원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거다.

또 다른 창업자의 한탄이다. “이미 사업을 하는 상황에서 대출 지원책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원들도 세세하게 설명해줄 여유가 없던 것 같았다. 대출이 거절되고 나서도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물론 믿을 만한 담보 없이 대출을 해야 하는 정부와 은행 입장도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다. 창업자가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을 경우 떠안아야 할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최대한 안전한 거래를 위해 만든 기준을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창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족쇄와 다를 바 없다.

한편에선 “실패한 창업자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생태계를 마련하면 창업자금대출 제도를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예비창업자들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 어디서부터 허물어야 할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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