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은 사회ㆍ정치ㆍ자본적 이데올로기의 주변부에 있는 집단의 문제의식을 꾸준히 다뤄왔다. 4ㆍ3 제주 학살의 희생자들(비념), 옛 구로공단 시절부터 오늘날까지의 여성 노동자들(위로공단), 베트남 전쟁ㆍ빨치산 등 역사적 사건에 고통 받던 여성(할머니)들(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이데올로기와 매스컴에 가려진 여성 탈북자들(려행) 등 국가적 학살의 피해자, 여성노동자, 탈북자에 이르는 이야기에 주목했다. 잊혀선 안될 이들의 기억에 귀 기울이고 아픈 과거를 애도하는 그의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임흥순의 개인전 ‘고스트 가이드(GHOST GUIDE)’가 개최된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근현대사를 다룬 작업 ‘좋은 빛, 좋은 공기(Good Light, Good Air)’를 비롯해, ‘고스트 가이드(Ghost Guide)’ ‘친애하는 지구(Dear Earth)’ 등 미공개 영상 및 설치 작업들을 선보인다.
“나의 작업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길 소망한다”고 말한다. 전시명이 암시하듯 이번 전시에서는 주변부의 유령을 불러내 내밀한 과거와 역사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보여준다. 잊히길 원치 않는 유령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장면들을 삽입해 문제 영역을 확대한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던 유령들은 이런 작업으로 본래의 모습과 이름을 되찾게 된다. 사회적 유령들을 애도하고 위로를 건네는 작가만의 방식이다.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2018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출품해 국제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좋은 빛 , 좋은 공기(Good Light, Good Air)’다. 각각 1980년대와 1970년대에 군부 정권의 독재로 집단 학살을 경험한 두 도시의 이야기다. ‘좋은 빛’은 우리나라 광주를, ‘좋은 공기’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뜻한다. 두 도시의 참혹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여전히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처참했던 사건이 벌어진 후 40여년이 흘렀지만 그곳에 여전히 아픈 기억과 역사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임흥순은 사회 속에서 유령 같은 존재로 남아 주변부를 맴돌고 있는 그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불러낸 유령들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임을 작품을 통해 암시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우리가 역사와 기억들을 애도하고 상기하게 만든다.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내년 1월 23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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