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1] 중소기업 전용 백화점 현주소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6월 취임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중소기업 전용 백화점 ‘행복한백화점’이였다. 매스컴은 박 장관의 파격행보를 홍보하느라 호들갑을 떨었고, 중소기업 CEO들은 환

 
영의 메시지를 전파하느라 바빴다. 그로부터 1년 3개월이 흐른 지금, 행복한백화점은 과연 행복할까.

“넥타이가 5000원이면 정말 싸다. 동대문야구장 앞보다 더 싸다. 이 정도 가격이면 멀리서 일부러 찾아와서 사도 충분히 남겠다. 이런 곳이 주변에 있고 손쉽게 갈 수 있으면 자주 이용할 수 있을 듯하다. 조금만 밀어주면 더 많은 중소기업이 스스로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6월 3일 행복한백화점에서 5000원짜리 넥타이를 사면서 했던 말이다. 행복한백화점(당시 ‘행복한 세상’)은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약 1080억원(100%)을 출자해 1999년에 설립한 중소기업 제품 판매 전용 백화점이다.

박 장관은 그날 별도의 간담회를 통해 중소기업인들로부터 중소기업 전용판매망 확대 등 유통망을 개선해달라는 건의를 받고 “공공기관 중 비어있는 건물이나 정부 유휴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통해 유통망을 확대시키는 방안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올해 5월에는 당시 구매한 넥타이를 매고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운영하는 ‘홈앤쇼핑’에 출연해 중소기업 제품에 관심을 가져달라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박 장관의 이런 행보에 대해 언론의 의견은 다양했다. 한편에선 중소기업을 위하는 마음이 애틋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에선 전시행정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장관으로서 제품을 홍보하기보다는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판로확보를 돕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박 장관이 행복한백화점을 다녀간 지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무엇이 바뀌었을까.
행복한백화점에 입점한 중소기업은 여전히 판로확보에 고전하고 있다. 설립된 지 13년이 지난 행복한백화점은 설립목적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행복한백화점을 운영하는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설립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행복한백화점이 진짜 행복한지 살펴봤다.

행복한백화점은 중소기업의 판로를 넓히기 위해 설립됐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중소기업 판로지원을 위해 수수료율을 낮췄다. 대형 마트나 일반 백화점의 수수료율이 평균 20~30%인데 비해 행복한백화점의 수수료율은 18~20%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의 부담이 그만큼 적다.
하지만 행복한백화점에 입점했거나 입점한 중소기업 CEO 대부분은 판로개척이나 매출에 큰 효과가 없었다고 말한다.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최근 기존 중소기업 전문 매장을 1155㎡ 규모에서 3630㎡로 3배 이상 넓히고, 입점업체를 476개에서 1500개로 늘렸음에도 중소기업의 반응이 시큰둥한 이유다.

▲ 인근 일반 백화점은 평일에도 손님들로 북적이는데 비해 행복한 백화점은 한산했다.

입점 기업수 증가, 매출은 요지부동

운동기구 제조·판매업체 씨에치엘텍 김운식 대표는 “이렇게까지 효과가 없을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씨에치

 
엘텍의 운동기구는 지난해 중진공이 선정하는 ‘HIT 500’ 제품으로 선정돼 올해 2월부터 행복한백화점에서 판매됐다. 하지만 8개월 동안 팔린 제품은 총 3대에 불과하다. 더구나 행복한백화점을 통해 제품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바이어는 단 한명도 없었다.

로봇청소기 제조·판매업체 마미로봇의 홍보 담당자는 “행복한백화점에 입점돼 있지만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면서 “대기업 마트와 백화점 등에도 제품이 들어가는데, 행복한백화점으로부터 받은 도움은 전혀 없고 모두 자체 노력으로 만든 판로”라고 말했다.

실제로 행복한백화점의 최근 3년간 매출은 제자리걸음이다. 2009년 702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738억원을 기록해 5.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입점 중소기업수는 653개에서 862개로 32% 늘었다. 행복한백화점에 둥지를 튼 중소기업은 크게 늘었지만 매출은 요지부동이라는 얘기다.

행복한백화점의 고객만족도 역시 낮았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입점고객과 구매고객 만족도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각각 평균 72.3점과 76.1점이었다. 같은 기간 일반 공기업의 고객만족도 평균 점수가 92.9점, 준정부기관은 88.2점, 기타 공공기관은 84.7점이었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행복한백화점의 고객만족도가 낮은 것에 대해 센터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다. “행복한백화점은 순수한 중소기업 지원 기관이 아니다. 입점고객의 만족도는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일반 백화점에 비해 대기업이나 해외브랜드 제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시설투자에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 없기 때문에 구매고객의 만족도도 낮은 편이다.”

그는 또 “판로개척을 돕는다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행복한백화점에 입점한 모든 중소기업이 불만족을 표시하는 건 아니다”고 강조하며 전문 가발업체우먼시크릿을 사례를 들었다.

우먼시크릿은 2001년 설립한 가발 업체다. 이 회사 제품은 2002년 우수특허상품으로 선정됐고, 2003년 5월 행복한백화점에 입점했다. 이후 각종 홈쇼핑에서 인기를 끌어 2005년, 2007년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 각각 입점했다. 센터 관계자는 “우먼시크릿 전체 매출에서 행복한 백화점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낮다”면서 “하지만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 행복한백화점이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계속 입점해 있다”고 말했다.

우먼시크릿의 성공이 행복한백화점 때문인지 아니면 홈쇼핑 덕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행복한백화점이 우먼시크릿이 성공하는 데 발판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우먼시크릿처럼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이다. 일반 구매고객의 눈으로 이틀에 걸쳐 행복한백화점을 둘러본 결과, 이 백화점에 입점한 중소기업들이 고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행복한백화점 운영기관인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지원체계가 미흡하다.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수익은 행복한백화점, 중소기업 제품 전문 TV쇼핑몰 홈앤쇼핑 두 곳에서 주로 창출된다. 자체 수익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기 때문에 정부지원은 거의 없다.

그 결과 수익성이 좋지 않은 행복한백화점 입점 중소기업은 단기간에 퇴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실제로 행복한백화점의 퇴점 기준에는 ‘당해 점포 동일 상품군의 하위 15%에 해당돼 매출향상을 위한 방안 제출 후 3개월 동안 평균 매출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라고 명시돼 있다. 100여일의 시간 동안 부진한 제품의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특히 마케팅 비용과 홍보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으로선 더더욱 그렇다. 이런 퇴점 기준은 행복한백화점이 현실적으로 지속적인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동반성장의 무풍지대, 행복한백화점

▲ 소비자의 구매심리를 읽지 못하면 중소기업은 살아남기 힘들다.
행복한백화점과 대형 유통업체의 협력관계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지난해 중소기업유통센터는 대형 유통사와의 제휴로 해당 유통업체의 매장에 행복한백화점에 전시된 중소기업제품을 진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총 69회가 진행됐고, 4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장場’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중소기업유통센터가 대형 유통사들에 수차례에 걸쳐 비슷한 제휴를 부탁해도 퇴짜를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소기업유통센터의 한 관계자는 판매 수수료율이 너무 높아 중소기업유통센터는 물건을 팔아도 남는 게 없고 오히려 돈을 더 지불해야 해서 진행이 어려울 때가 많다” 면서 “좋은 중소기업 제품이 있으면 수수료율을 조금만 낮춰줘도 판로 확보에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말로만 외친 동반성장의 현주소다.

행복한백화점의 운영주체와 대형 유통업체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행복한백화점의 중소기업 전용매장 가운데 각 기업에서 파견된 담당자가 제품을 판매하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열에 여덟은 센터에서 고용한 계약직 근무자들이 판매를 맡고 있었다. 제품만 있고, 제품특징을 고객에게 설명해주는 직원은 자리에 없다는 얘기다. 계약직 근무자들이 기업에서 파견된 담당자보다 열정적으로 영업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센터의 관계자는 “대다수 중소기업은 비용 문제 때문에 직원을 파견하는 것을 꺼린다”고 밝혔다.

김익성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기업 CEO들은 여전히 영업사원을 통한 제품 위주의 마케팅 전략만을 고수한다”며 “파견 직원을 통해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업·브랜드 홍보 등 다양한 마케팅 효과는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마케팅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에 마케팅 전담부서가 없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행복한백화점이 중소기업의 판로역할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선 제품 경쟁력도 재고해 봐야 한다. 중진공이 선정한 HIT 500 제품 가운데 소비자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만한 제품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소비자평가단 8000여명과 유통업체 MD 16명이 매년 선정함에도 그렇다. 선정과정에 대한 좀 더 세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유통센터 관계자는 “때로는 별 것 아닌 제품이 큰 반향을 일으킬 때도 있다”며 “미리 시장을 내다볼 수 없는 이상 선정 기준을 충족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반인이 볼 때는 별 볼일 없을지 몰라도 제품을 만든 당사자는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제품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받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우리의 업무”라고 설명했다.

행복한백화점은 이름처럼 행복하지 않다. 중소기업 전용 백화점이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중소기업유통센터, 중진공, 그리고 행복한백화점에 입점한 중소기업이 조금씩 원인을 제공한 결과다.

중소기업유통센터 관계자는 “홍보와 판로 확보를 위해 온라인쇼핑몰 운영계획을 중진공에 건의한 상태”라며 “이번에 HIT 500 매장을 확대한 만큼 바이어 확보에도 더욱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종 기관과 연계한 바이어 초청행사도 기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진공 관계자는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제시한 온라인쇼핑몰 계획과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한 매장 확대 건은 공단에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행복한백화점 온라인쇼핑몰은 이미 1999년에 운영됐지만 관리소홀로 한번 실패했다.

 

HIT500 제품 경쟁력 있나

더구나 중소기업유통센터와 중진공의 노력만으로 행복한백화점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행복한백화점은 중소기업의 제품 판매처일 뿐만 아니라 대형 유통업체 위주의 유통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형 유통사의 협력과 지원이 그만큼 절실하다.

중소기업 CEO의 마케팅 마인드도 바뀌어야 한다. 요즘 소비자는 스마트하다. 똑똑한 소비자는 절대로 볼 품 없는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값이 싸면서도 품질이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은 행복한백화점 말고도 많다. 특히 온라인쇼핑몰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소비자의 구매심리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또 지금처럼 제품만 덩그러니 놔두고 ‘사든지 말든지’라면서 불평을 늘어놓아선 곤란하다. 중소기업을 위한 행복한백화점이 행복해지는 길. 어쩌면 중소기업의 어깨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