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형 제약기업의 민낯

혁신형 제약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7년째 제자리걸음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혁신형 제약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7년째 제자리걸음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혁신형 제약기업은 보건복지부가 제약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야심차게 꺼내든 카드다. 연구ㆍ개발(R&D) 역량을 갖춘 기업들을 뽑아 당근을 쥐어주면 더 열심히 할 거란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혁신형 제약기업은 혁신을 일궜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혁신형 제약기업이 도입된 지 7년, 해당 기업은 단 1곳 늘었고,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혁신형 제약기업의 민낯을 취재했다. 

“연구ㆍ개발(R&D) 실적이 뛰어나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역량을 갖춘 기업.” 2012년 보건복지부가 야심차게 도입한 ‘혁신형 제약기업’의 정의다. 제약산업이 미래 먹거리로서 주목을 받으면서 2011년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는데, 이듬해 이 법안에 혁신형 제약기업의 근거가 마련됐다.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의 골자는 간단하다. “복지부가 정한 기준에 걸맞은 기업들을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하고 R&D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인센티브도 꽤 쏠쏠하다. 국가 R&D사업에 우선 참여할 수 있는 권한, 법인세ㆍ취득세ㆍ재산세를 비롯한 조세 감면, 연구시설에 부과되는 부담금 면제 및 입지 규제 완화, 약가 우대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복지부는 혁신형 제약기업에 큰 기대를 걸었다.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가 복제약 위주의 과당경쟁을 줄이고, 제약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는 게 복지부의 시나리오였다. 

혁신형 제약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선정 기준도 까다로웠다. 연간 매출액이 1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의약품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5% 이상, 연간 매출액 1000억원 미만인 기업은 의약품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7% 이상(또는 R&D 비용 50억원 이상)이어야 신청할 수 있다.

매출액 대비 R&D 비율 요건을 충족해도 ▲인적ㆍ물적자원의 우수성 ▲신약R&D 활동의 우수성 ▲사회적 책임과 윤리성 등에서 인정을 받아야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최종 선정될 수 있다.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뽑히더라도 끝이 아니다.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된 기업들은 3개년 계획을 제출하고, 3년마다 재인증을 받아야 지위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

아울러 혁신형 제약기업을 처음 선정했던 2012년 6월 복지부는 “인증기준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할 것”이라면서 “지금은 매출액 대비 R&D 비율의 기준이 5~7%지만, 2015년에는 10~12%, 2018년엔 15~17%로 높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ㆍ유럽 등 제약 선진국에 비해 유독 R&D 성과가 저조한 국내 제약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복지부의 결의가 엿보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선정된 지 7년여가 흐른 혁신형 제약기업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까. 복지부의 기대처럼 혁신형 제약기업은 복제약 중심의 과당경쟁 위주였던 국내 제약산업의 지형도를 바꿔놓았을까. 

물론 긍정적인 변화는 있었다. 2015년엔 한미약품이 기술수출 신화를 썼고,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높은 문턱을 넘어선 국산 의약품도 부쩍 늘었다. 복지부가 “혁신형 제약기업이 제약산업의 성과를 견인했다”고 자축한 이유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 혁신형 제약기업이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는 미지수다. 지난 7년간 혁신형 제약기업들이 보여준 성장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그동안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선정된 기업들을 보자. 복지부는 2012년 이후 2년에 한번씩 총 4번 새로운 혁신형 제약기업을 뽑았다. 

첫해엔 43곳, 2차 선정 때인 2014년엔 5곳, 2016년 7곳, 2018년엔 6곳을 혁신형 제약기업으로 인정했다. 총 61개 기업이 뽑혔지만 현재 혁신형 제약기업 명단엔 44개 기업밖에 없다. 17개 기업이 혁신형 제약기업 지위를 박탈당했거나, 재인증에 실패한 결과다.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대부분은 리베이트, 매출액 대비 R&D 비율 기준 미달 등 부정적인 이유가 많았다. 올해만 해도 ‘인보사 사태’를 빚은 코오롱생명과학을 포함해 동아ST와 동화약품이 혁신형 제약기업 명단에서 빠졌다. 

이유야 어찌됐든 첫해를 빼면 7년 동안 혁신형 제약기업은 단 1곳 늘어났다. 혁신형 제약기업의 R&D 성과가 또다른 R&D 경쟁을 낳는 선순환으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거다. R&D 실적을 봐도 가시적인 성장세를 보여주진 못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혁신형 제약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11.8%. 2012년(11.7%)과 비교했을 때 고작 0.1%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올해 혁신형 제약기업들의 R&D 투자계획에 따르면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13.4%까지 높아질 전망이라지만, 글로벌 수준에 비하면 이마저도 만족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글로벌 10대 제약사의 평균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21.0%에 달했다. ‘혁신형’ 제약기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다. 

2016년 6월 “인증기준을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할 것”이라며 결의를 내비쳤던 복지부는 입을 닫았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15~17%를 넘지 못하는 곳들은 자격 미달로 혁신형 제약기업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

현재 남아있는 44개 혁신형 제약기업 중 올 3분기(누적) 매출액 대비 R&D 비율을 확인할 수 있는 25개 기업 중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15%를 넘는 기업은 4곳에 불과하다.[※참고 : 대상은 매출이 적어서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바이오벤처기업과 정보 확인이 어려운 비상장사, 제약 외 사업 비중이 높은 LG화학ㆍSK케미칼을 제외한 25개 일반 제약기업이다.]

복지부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기준을 단계별로 상향조정하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지키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복지부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기준을 단계별로 상향조정하겠다고 했지만 그 말을 지키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현재 혁신형 제약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비율 인증기준은 7년 전과 똑같은 5~7%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남아있는 직원 중 2012년에 근무했던 사람이 없다”면서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그나마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를 맡고 있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최소한의 기준”이라면서 “심사할 땐 그 외에 다른 것들도 많이 본다”고 해명했다. 

7년째 똑같은 혁신기업 인증기준

진흥원의 설명처럼 혁신형 제약기업을 심사할 때 매출액 대비 R&D 비율 외에도 보는 게 많다. 그렇다고 매출액 대비 R&D 비율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치부해버리긴 어렵다. 특히 신약개발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는 제약기업들에는 R&D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국내 제약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이유다. 

국내 혁신형 제약기업도 마찬가지다.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들은 모두 매출액 대비 R&D 비율이 높다. R&D 투자가 활발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매출액 대비 R&D 비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당초 계획대로라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받지 못했을 곳들이 숱하지만, 그 기업들은 여전히 R&D 투자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각종 인센티브를 누리고 있다”면서 “혁신형 제약기업을 도입한 이유가 R&D 투자를 확대해 제약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건데, 지금은 당초 의도가 사라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7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혁신형 제약기업, 이는 국내 제약산업의 민낯이다. 혁신형 제약기업을 혁신해야 할 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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