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주유소 비즈니스

정유업계는 2019년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국제유가는 급락을 반복했고, 석유정제시설은 가파르게 늘어났다. 수익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유업계는 ‘친환경 이슈’까지 떠안았다. 정유업계가 신사업 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중심엔 주유소를 활용한 네트워크 사업이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정유업계의 ‘주유소 비즈니스’를 살펴봤다.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는 주유소가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GS칼텍스 관계자들이 전기차 충전 시연을 하는 모습.[사진=GS칼텍스 제공]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는 주유소가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GS칼텍스 관계자들이 전기차 충전 시연을 하는 모습.[사진=GS칼텍스 제공]

요즘처럼 정유업계의 고민이 깊은 때가 또 있었을까. 그동안 정유업종은 시설투자만 잘하면 큰 걱정 없이 쏠쏠한 수익을 내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국제유가가 종종 급락하는 상황에서 미중 무역분쟁까지 겹치니 수출로 먹고 살던 정유사들 입장에선 타격이 크다.

[※참고 : 미국과 중국이 1단계 합의를 마쳤지만 위험요인은 여전히 남아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석유 정제시설이 늘어나는 것도 악재다. 이미 철강이나 조선, 태양광 산업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공급과잉→산업 구조조정’의 패턴이 정유업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제마진까지 좋지 않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지난해 1분기 평균 배럴당 7.0달러였지만, 올해 2분기까지 3.5달러로 꾸준히 떨어졌다. 3분기에 7.0달러로 깜짝 반등하긴 했지만, 10월과 11월 현재 평균치는 1.1달러에 불과하다. 심지어 11월 정제마진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석유정제로 돈 벌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유산업은 환경 이슈 부각과 함께 환경 파괴업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이나 엑손모빌ㆍ쉘 등 글로벌 정유사들은 이미 기관투자자나 환경단체로부터 기후변화 대책을 마련하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유사들에 이런 압박이 전달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다시 말해 변화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남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다. 정유업계가 신사업 찾기에 여념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정유업계는 어떤 신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을까. 

정유사들이 대외적으로 밝힌 사업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크게 ‘주유소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업’과 ‘본업과 연계한 석유화학 사업’ 두가지로 구분된다. 이중 주유소를 거점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주목할 만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어떤 연료든 충전할 수 있는 복합충전소’ 설치다. 자동차 연료가 좀 더 친환경적인 연료로 전환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의 정유사가 복합주유소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한 협업도 한창이다. 

전기차 앞에선 모두가 친환경

가장 먼저 나선 건 현대오일뱅크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6월 국내 최초로 울산에 휘발유ㆍ경유ㆍLPGㆍ수소ㆍ전기 등 모든 수송용 연료를 한곳에서 판매하는 복합에너지스테이션을 열었다. 올해 5월엔 경기도 고양시에도 수도권 최초의 복합에너지스테이션을 건립하겠다고 했지만, 최근 사업부지 관련 규제가 풀리지 않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7월엔 국내 1위 전기차 충전기 제작사인 중앙제어, 충전기 운영전문기업인 차지인과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협약식을 갖기도 했다.

지난 9월엔 SK이노베이션이 2023년까지 190개 주유소에 다양한 충전방식(DC콤보 차데모)을 모두 지원하는 100㎾급 전기차 충전시설을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11월엔 평택시, 수소에너지네트워크와 수소충전소 인프라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참고 : SK이노베이션은 이미 2011년 사명 변경 이후 배터리 사업을 집중적으로 키웠다. 전기차 관련 신사업에는 가장 먼저 뛰어든 셈이다.]

GS칼텍스는 현대차와 공동으로 수도권 최초의 ‘토탈에너지스테이션’을 선보인다는 계획을 잡고, 지난 10월 수소충전소를 착공했다. 강동구 소재 주유소와 LPG충전소 유휴 부지에 100㎾급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설치한 다음 그 옆 부지에 수소충전소를 짓는 방식이다. 

GS칼텍스는 모빌리티 관련 협업도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5월엔 LG전자 그린카 시그넷이브이 소프트베리 등과 함께 전기차 이용환경 개선과 저변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획기적인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11월엔 GS리테일, 글로벌 1위 전동킥보드 공유기업인 라임과 파트너십을 맺어 주유소를 전동킥보드 충전 네트워크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KST모빌리티, 소프트베리와는 ‘전기택시를 위한 거점충전소 사업’ 제휴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주유소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업이 복합충전소 건립, 전기차 관련 네트워크 구축이나 서비스 발굴 등에만 치우친 건 아니다. 다양한 신사업도 발굴하고 있다. 지난해 8월 SK에너지와 GS칼텍스가 협업해 추진한 홈픽서비스는 업계 1ㆍ2위가 손잡은 신사업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주유소를 택배서비스 거점으로 활용한 거다. 양사는 지난해 12월엔 주유소 기반 스마트 보관함 서비스 ‘큐부’를 공동 출시하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지난 10월, 쿠팡과 주유소 기반 물류 거점 구축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에쓰오일의 전기차 충전소 사업은 비교적 조용히 진행됐다. 현재 6곳 정도를 운영 중이며, 주유소의 새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 중이다. 앞서 지난 3월에는 강서구 소재 주유소에 무인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를 열기도 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처럼 완전히 다른 사업(배터리)을 하지 않는 이상 주유소 네트워크를 활용한 신사업이 최선”이라면서 “전기차 관련 사업들이 많은데,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따라주지 않으면 빠르게 사업을 넓혀가기 힘들기 때문에 사업 안착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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