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7] 역설의 경제학 극복전략

십여 년 전 외환위기가 있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소수 대기업집단의 높은 부채비율과 무분별한 투자였다. 시장경쟁의 공정화 작업이 지체된 게 국가경제위기를 불렀다는 얘기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관점에서 재벌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논의다.

▲ 공정하지 못한 경쟁규모가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사진은 대기업의 기업형 수퍼마켓을 규탄하는 모습.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기업집단 총수 일가는 불과 4~5%의 지분을 가지고 수십 개 혹은 100여 개 이상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전자•자동차•통신서비스•식품•유통•운송•건설•레저 등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소수의 기업집단이 독과점 위치에서 시장을 지배한다.

이런 구조는 경제성장 초기부터 의도한 부분이 없지 않다. 어느 정도 경제가 발전한 후에는 공정한 경쟁구조를 만들어 간다는 구상이 있었지만 그 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또는 부당 내부거래 중에는 모기업 경영진이 소액주주들을 배임하고 특정 개인에게 부를 이전하는 횡령행위가 있다는 사실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져 왔다. 천문학적 액수를 횡령한 범죄가 실형이 아닌 경미한 처벌을 받을 때 시민들은 ‘법 앞의 불평등’에 분노했다.

이런 구조가 시장의 공정성을 어떻게 망치는지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기업집단 총수들이 자녀가 대주주인 빵집을 내 줄 때를 생각해 보자. 일단 ‘어느 그룹에서 운영하는 빵집이다’는 소문만으로 그 빵집은 큰 이득을 본다. 뿐만 아니라 그룹 내 호텔의 제빵 기술자가 무료로 컨설팅을 제공하고 고가의 장비를 무상으로 지원하기 십상이다. 이 빵집에서 제공받은 브랜드와 컨설팅, 고가 장비는 모두 소액주주들을 포함한 모기업 주주들이 투자하고, 축적한 결과물들이다. 그리고 소액주주들의 부는 총수 자녀에게로 이전된다. 자기 자본을 생짜배기로 출자해 창업한 빵집은 출발부터 경쟁이 될 수 없다. 기업가정신이 위축되고, 시장의 역동성을 살리기 어렵다.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이 기업의 창조와 혁신을 촉진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공정한 경쟁은 기회 균등 원리를 시장에서 구현함으로써 전체 경제를 발전시키고 혁신과 창조를 촉진한다. 그것은 대기업집단의 것을 중소기업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고 공정하게 분배받는 구조에 관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기업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수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집단은 순환출자나 지주회사 형태를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환출자는 상호출자 금지를 우회한 탈법적 성격이 농후하며, 지주회사 규제는 느슨한 편이다. 앞으로 경제민주화 논의는 이 같은 순환출자와 지주회사 규제 문제로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대기업집단과 중소기업계 모두에게 이 두 가지 문제가 중요하다. 문제를 푸는 방향과 방법에 따라 향후 한국 경제와 기업구조가 결정될 것이다.

누가 어떤 대안과 정책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과 분배를 공정하게 이끌어갈 것인지 모두 눈여겨보고 판단해야 한다. 창조와 혁신이 중요한 한국경제에 어떤 정책이 적합할 것인지, 어떤 정책이 지배구조 건전화에 가장 적합한 것인지. 누가 대기업집단의 경쟁 훼손행위를 잘 감시하고 규제할 것인지 공부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가 향후 한국 경제의 구조, 성장과 분배의 모습을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규제영향평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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