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비행 항공사 추락 이유

한국 항공업계가 위기에 직면했다. 올해 3분기 대한항공을 제외한 모든 항공사가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4분기에도 대부분 회사가 마이너스 실적을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부진은 내년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경쟁력을 제대로 쌓지 못한 탓도 있지만 오너리스크 등 복잡한 변수 때문이기도 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고공비행하던 항공사들이 추락한 이유를 취재했다. 

여객수요는 증가세지만 올해 국내 항공사들의 실적은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다.[사진=연합뉴스]
여객수요는 증가세지만 올해 국내 항공사들의 실적은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다.[사진=연합뉴스]

2014년, 한국 항공업계에 눈부신 호황기가 시작됐다. 저비용항공사(LCC)를 포함한 7개사(대한항공ㆍ아시아나항공ㆍ제주항공ㆍ진에어ㆍ에어부산ㆍ이스타항공ㆍ티웨이항공)가 연간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2013년 대형항공사(FSC) 2곳이 적자를 냈지만 그해엔 모두 활짝 웃었다. FSC는 저유가 덕을 톡톡히 봤다. LCC는 국내선에서 쌓은 노하우로 국제선 시장을 공략한 게 알찬 실적으로 이어졌다. 

7개사의 흑자 성적표는 2017년까지 계속됐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ㆍMER S) 사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 AAD) 배치’ 등 굵직한 악재가 터졌지만 실적 고공행진은 이어졌다. 2017년 7개 회사의 매출 합은 2014년보다 11.5%나 늘었다.

그로부터 2년여, 항공업계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2018년만 하더라도 오너리스크에 휩싸인 아시아나항공을 빼곤 흑자 기조를 이어갔지만 2019년은 다르다. 증권사들은 대한항공을 뺀 모든 항공사가 적자 성적표를 받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렇다고 대한항공이 순항만 했다는 건 아니다. 대한항공 역시 영업이익이 큰폭으로 줄어들 게 분명해 보인다. 

시장도 지각변동을 준비 중이다. 시장재편의 신호탄이 된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마무리 수순을 밟았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의 품에 안겼다. 이밖에도 몇몇 항공사들의 구조조정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 항공업계가 급격히 추락한 이유는 뭘까. 여러 변수가 있긴 했다. 항공화물 시장이 지난해 말부터 부진에 빠진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세계 경기 둔화와 미ㆍ중 무역전쟁 등으로 항공 물동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10월 누적 항공 화물실적은 353만188톤(t)으로 전년 대비 4.2% 감소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일본여행 기피현상이 확산된 것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본 노선 매출 비중이 높은 LCC 업계는 수익성 타격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런 변수들을 항공업계 부진을 뒷받침할 근거로 보긴 어렵다. 가령 LCC 업계는 일본 노선이 타격을 받기 전인 지난 6월부터 적자를 내고 있었다. 

난기류 만난 항공업계

항공산업의 핵심 수익원인 여객시장이 올해 큰폭으로 성장한 것도 부진을 털어내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2019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725만명을 돌파했다. 역대 최다기록이다. 

여객 실적(1월~10월 누적)은 2014년과 비교하면 51.6%(6801만9264명→1억316만5982명)나 성장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는데도 적자를 걱정해야 하는 미스터리한 상황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한국 항공업계의 경쟁 구도가 ‘FSC 대 LCC’였다면 최근엔 ‘국적사 대 외항사’로 바뀐 탓”이라면서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외국 항공사의 초저가 공세 때문에 국적 항공사들의 수익성도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무슨 얘기일까. 심상치 않은 변화를 보인 국제선 여객 점유율 추이를 보자. 한국 항공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2017년 외국 항공사의 여객 점유율은 32.0%에 불과했다. 올해는 35.4%로 3.4%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 FSC 점유율은 2.5% 하락했고, LCC 점유율은 0.9% 깎였다. 

외국 항공사의 올해 여객실적은 전년 대비 10.2%나 늘었고, 공급좌석도 11.1% 증가했다. 시장 성장의 과실을 국적 항공사 대신 외항사가 누린 셈이다.

특히 중국ㆍ중동 항공사의 세력 확장이 위협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서 저가低價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국내 항공사는 허리띠를 졸라매기 급급하다. 당장 맏형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861.9%도 높다. 아시아나항공이 시장 매물로 나온 것도 막대한 부채 때문이다. 둘보다 규모가 작은 나머지 LCC의 현금흐름에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업계 관계자는 “호황을 누릴 당시 연비 좋은 항공기를 도입하거나 수익성 높은 항로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낮추면서 기초체력을 갖췄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면서 “지금의 재무상태로는 점유율 하락을 막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향후 전망도 어둡다는 거다. ‘본업 경쟁력 강화’에만 역량을 쏟아야 할 판에 온갖 이슈에 발목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봉합된 듯했던 오너일가 갈등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시장 커졌지만 무한경쟁 돌입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향해 “가족과 사전 협의 없이 경영상 중요 사항들이 결정되고 있다”면서 비판에 나섰다. 같은 그룹의 LCC 진에어는 지난해 8월 국토부가 제재를 시작한 이후 1년 넘게 신규 노선 개설은 물론 새 항공기 도입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교롭게도 이 역시 오너일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 외국인 신분으로 진에어 등기이사를 맡아 항공법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야 하는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2월 12일로 기한을 잡아뒀던 주식매매계약(SPA)이 27일에야 체결됐다. 원 주인인 금호그룹과 새 주인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줄다리기 협상 때문이다. 양측은 ‘구주 가격’ ‘우발채무 손해배상 한도’ 등으로 이견을 보이다가 최근에야 합의를 마쳤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공동경영 체제가 업계에 미칠 파장도 클 전망이다.

상황이 이런데 과당경쟁은 더 거세진다. 올해 운항면허를 받은 신규 LCC 사업자 3곳(플라이강원ㆍ에어로Kㆍ에어프레미아)이 2020년 영업개시를 앞두고 있다. 한국 항공산업의 침체를 알리는 경고음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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