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 vs 온라인탑골

탑골공원은 노인의 성지聖地로 대변된다. 1980~1990년대 지상파 음악방송을 틀어주는 유튜브 채널이 ‘온라인 탑골공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온라인 탑골공원은 잊힌 가수에게 제2의 전성기를 찾아줄 만큼 연일 흥하지만, 그 관심이 진짜 탑골공원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탑골공원이 있는 종로3가는 인파가 북적이기 때문인지 얼핏 생동감 있어 보인다. 하지만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른 풍경이 보인다. 그 거리에서 젊음과 생동감이 빠지기 시작한 건 오래전 일이다. 젊음은 ‘온라인 탑골공원’에만 머물러 있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탑골공원의 모습을 4일간 취재했다. 

낡은 거리는 다음 세대가 찾아야 살아날 수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낡은 거리는 다음 세대가 찾아야 살아날 수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탑골공원이 화제다. 종로의 ‘진짜’ 탑골공원이 아니라, ‘온라인 탑골공원’이 유행하고 있다. 온라인 탑골공원은 유튜브에서 1980 ~1990년대 지상파 음악방송을 스트리밍해주는 채널을 뜻한다. ‘SBS KPOP 클래식’ ‘어게인 가요톱10’ ‘MBC 추억의 가요순위’ 등 지상파 3사가 과거 음악 프로그램을 틀자 수많은 이들이 모였다. 이 시절의 추억을 가진 이들과 복고 열풍을 타고 ‘힙한’ 볼거리를 찾아 온 이들은 흥겨운 음악에 열광했다. 

덕분에 느닷없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연예인도 숱하다. ‘탑골 GD’로 불리는 양준일은 팬미팅까지 앞두고 있다. ‘탑골 제니’ 려원, ‘탑골 아이유’ 장나라 등 더이상 노래하지 않는 이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 ‘탑골’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1980~1990년대 추억을 가진 이들을 ‘고령자’로 취급해서다. 나이 많은 이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탑골공원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렇다면 진짜 탑골공원은 어떤 모습일까. 온라인처럼 오프라인 공간에도 활력이 넘칠까. 사흘에 걸쳐 종로 3가역과 탑골공원, 낙원상가가 있는 종로 1~4가동을 둘러봤다.
 
■뜻밖의 유동인구 = ‘종로 상권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한참 됐다. 하지만 탑골공원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상권이 죽었다는 말이 낯설게 들릴 정도로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유동인구가 많다. 노인의 비율이 높긴 하지만, 젊은층과 중장년층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탑골공원 인근의 유동인구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2019년 4~6월 3개월간 유동인구는 1㏊당 10만9923명에 달했다. 2017년 6만8989명, 2018년 9만1754명보다 더 늘었다. 

흥미롭게도 유동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대다. 탑골공원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익선동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로변 인근에 적지 않은 어학원과 고시학원이 둥지를 틀고 있는데다 지하철 노선이 3개나 있는 것도 젊은층이 많은 이유로 보인다. 문제는 젊은층이 탑골공원 주변에서 소비를 하거나 독특한 문화를 만끽하느냐다. 글쎄, 탑골공원 인근을 좀 더 살펴보자. 

■노점상 주르르 = 대로변 상가에는 주로 귀금속 가게와 카페, 패스트푸드점이 입점해 있다. 그 앞에선 종로만의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좌판을 연 노점상이 주르르 펼쳐진다. 딱히 매대랄 것도 없지만 품목은 옷, 안경, 반지, 목걸이, 전선, 인형 등으로 다양하다. 새것인지도 의심스러운 잡동사니를 누가 살까 싶지만, 의외로 좌판 앞은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역시 노인이 많다. 

식사시간이 아닐 때 패스트푸드점이 만원인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2층짜리 패스트푸드점의 한층에 놓인 테이블 개수는 15~20개 남짓. 오후 2시가 넘어 점심식사 시간이 지났지만 빈자리는 많지 않았다. 자리를 잡은 노인들은 1000원짜리 커피 한잔을 두고 햇볕을 쬐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식사 시간이 가까워지는 오후 5시가 되면 오히려 매장엔 빈자리가 늘어난다.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매장을 떠난 이들은 어디서 끼니를 해결하는 걸까.

■‘럭키’한 락희거리 = 사라진 이들은 공원 뒤편으로 흘러들어간다. 해가 지면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탑골공원 북문에서부터 낙원상가 사이, 10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엔 고소한 냄새가 감돈다. 이 길엔 ‘락희樂喜거리(종로 17길)’라는 이름이 붙었다. 럭키(Lucky)를 음차한 고령자 친화거리다. 가게는 거리를 찾는 노인에게 물을 제공하거나 화장실을 개방한다. 말끔한 보도블록에 비해 세월의 흔적이 묻은 가게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거리 초입에 줄줄이 자리한 노포 옆엔 거대한 고물상이 있어 폐지 담긴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이 오간다. 

노년층에게 친숙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일까. 락희거리의 가게들은 레트로풍 간판을 달았다. ‘맛집 동방홍’ ‘황태 해장국’ ‘추억 더하기’ 등이 원색으로 커다랗게 쓰여 있다. 그 덕분에 길에선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가 난다. 레트로풍으로 꾸민 간판과 낡은 가게가 신기했던지, 이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거나 기웃거리는 이들이 종종 보인다. 

■중장년의 핫플레이스 = 락희거리의 끝은 낙원상가다. 상가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수표로가 나온다. 저녁이 되면 ‘송해길’로 이어지는 약 300m 구간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해장국·장어·치킨·족발·국밥·호프집…. 술과 밥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가게 안엔 양복을 입은 중장년층 손님이 많다. 거리엔 종로의 독특한 풍경을 즐기는 관광객이 몰려다닌다. 중국인 여성 두명은 붕어빵을 들고 거리를 배경으로 서로를 찍어주기 바빴다. 

낙원상가와 수표로 사이에는 패션 잡화점이 있다. 중년 여성을 위한 옷과 수제화를 판다. 어머니와 딸이 운영하는 가게다. 딸은 “어머니는 40년, 나는 1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며 “인사동이랑 맞닿은 곳인 만큼 이곳은 언제나 오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수요일에도 이른 저녁부터 사람이 북적이는 게 복고 열풍이 불기 시작한 최근의 일은 아닌지 궁금했다. 상인들은 입을 모아 “최근의 일이 아니다”며 “유동인구는 항상 많은 거리”라고 말했다. 

종로 3가역 인근의 유동인구는 20대가 가장 많지만 주거인구는 50~60대 이상의 비율이 가장 높다. 10대(1.8%), 20대(3.7%)에 30대(5.6%)까지 합쳐야 11%를 간신히 넘는다. 반면, 50대(25.2%)와 60대 이상(53.4%) 비율은 78.6%에 달한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 10명 중 5명 이상이 60대 이상이니, 중장년들의 천국이라고 불릴 만하다. 

■가성비 천국 같지만… = 노인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 건 가성비 좋은 가게가 많다는 이유도 있다. 락희거리 내 2500원짜리 해장국 집은 5시만 돼도 만원이다. 막걸리 노포에선 2000원짜리 잔술도 마실 수 있다. 5000원 한장이면 밥을 먹고도 남는다는 거다. 지갑 얇은 노인이나 일용직 노동자, 노숙자들이 이곳에 몰리는 이유다. 서울 시내에서 저렴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러 이곳을 찾는 젊은층도 있다. 

특히 락희거리 초입에 있는 냉면가게는 TV 맛집 프로그램에도 수차례 소개된 곳이다. 한곳에서만 40년 넘게 운영한 만큼 단골손님도 많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평양냉면과 설렁탕, 녹두전이다. 낡고 좁은 가게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음식의 맛에 비해 저렴한 가격 덕분이었다. 약 10년 전만 해도 이곳의 설렁탕은 2500원, 물냉면은 3500원, 녹두전은 3000원이었다. 

지금은 설렁탕 5000원, 물냉면 8000원, 녹두전 7000원으로 훌쩍 올랐다. 이곳에선 비싼 편이지만 서울 시내에선 저렴한 가격이다. 종종 이곳을 찾는다는 한 30대 직장인은 “보통 평양냉면 가격이 1만4000원 정도 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싸다고 생각한다”며 “가게가 좁아서 불편하지만 맛있고 좋다”며 웃었다.  

락희거리의 끝에는 카페 겸 밥집이 자리하고 있다. 밝고 귀여운 디자인의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빈자리가 많다. 이곳의 아메리카노는 2500원, 식사는 6500원대다. 다른 가게보다 한산한 이유다. 가게를 찾은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차를 마시는 분들만 좀 온다. 어르신들은 비싸다고 잘 안 오신다. 아메리카노 한잔이 옆집 해장국이랑 같은 가격이니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하지 않나.” 

■“맛 좋아서 북적이겠나” = 가성비 좋은 가게를 찾는 이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지갑 얇은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술을 병이 아닌 잔의 단위로 판매하는 것도 4000~5000원짜리 술 한병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있어서다. 올해부터 수표로에서 호떡을 팔기 시작했다는 상인은 경기가 어떤지 묻자 “이 동네에서 가장 인기 많은 집은 2000원짜리 국밥집”이라며 운을 뗐다.

“거기가 노인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이다. 어떤 아저씨는 그곳에서 어머니 음식 맛이 난다고 하더라. 글쎄다. 제대로 된 고깃덩어리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맛이 대단하진 않을 거다. 그보단 그 가격에 밥 먹기 쉽지 않으니 자주 찾는 게 아닐까.” 

돌아다니는 이들이 많다는 게 경기가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10년째 한곳에서 도넛을 파는 상인은 “다니는 사람이 많으니 밖에선 여기가 (장사가) 잘 되는 줄 안다”며 “잘되긴 커녕 매년 안 좋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여기도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며 “요즘은 익선동 상인들도 어렵다더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의 여파는 이곳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고령자 친화거리인 락희거리에선 2000원으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고령자 친화거리인 락희거리에선 2000원으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고개 돌리는 젊은층 = 수표로의 호프집들은 대낮에도 노인 손님이 많다. 점심 때 비빔밥, 국밥, 국수 등 각종 식사도 팔기 때문이다. 상인들이 “손님이 많은 곳이니 한번 가보라”며 알려준 호프집을 찾았다. 내부는 오래된 호프집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색이 바랜 천 소파가 좌석마다 있고, 색소폰 연주가 라이브로 흘러나왔다.

대낮에 누가 호프집을 찾을까. 반신반의했던 것이 무색하게 가게 안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밥 한그릇에 맥주 한잔을 놓고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 덕에 가게 안은 시끌시끌했다.

사장은 입구 근처 소파에서 손님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40년간 카바레 사업을 하다 접고 20년째 요식업을 한다는 그는 “젊은층은 이 동네 들어오면 화들짝 놀라며 나가지 않느냐”며 껄껄 웃었다. “나는 아예 노인들만 공략했다. 여기서 젊은이까지 잡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노인들은 맥주 한잔만 시켜놓고 이야기하는데, 요즘 어디서 그런 걸 받아주나.” 

실제로 거리를 구경하거나 지하철역을 오가는 젊은층은 많았다. 하지만 가게 안에 있는 이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고 저렴해도 오래된 가게에 선뜻 발 들이기 어려웠던 탓일까. 기자가 취재를 하는 동안 줄곧 거리를 구경하던 20대 여성 두명이 있었다. 그들은 곳곳을 다니며 셀카를 찍었지만 끝내 어느 곳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너무 낡았다고 속닥이며 을지로로 사라지는 사람이 이들만은 아닐 것이다. 

낡은 거리가 생명력을 찾기 위해선 다음 세대의 유입이 필요하다. 온라인 탑골공원을 찾는 이들은 많지만 그들이 진짜 탑골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기진 않는다. 젊은층이 계속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면 이곳도 머지않아 생명력을 잃은 ‘죽은 상권’이 될지 모른다. 그 어느 곳도 들어가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잡을 때 진짜 탑골도 낡음을 벗고 전성기를 찾을 테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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