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사회적경제센터 특약
류재욱 해냄기획사협 이사장

10대든 30대든 60대든… 그 누구에게든 ‘역할’이 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비장애인이 해야 할 영역이 있고, 장애인이 잘할 만한 영역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장애인에겐 맡길 일이 없다고 단정 짓는 이도 많다. 판촉물 제작업체 해냄기획사회적협동조합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모델’로 다름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해냄기획의 목표는 발달장애인이 평생직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냄기획의 목표는 발달장애인이 평생직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발달장애인. 나이에 비해 정신·신체가 미성숙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교한 작업과 의사소통이 어려워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은 직업을 갖는 게 쉽지 않다. 장애는 ‘부끄러움’이 아닌 ‘다름’일 뿐이라지만 경제활동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발달장애인 앞에선 메아리에 불과하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류재욱(54) 이사장은 일자리를 직접 만들기 위해 2017년 3월 ‘해냄기획사회적협동조합’을 세웠다. 목표는 발달장애인을 교육해 평생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십수년 장애인 부모연대를 운영하면서 알게된 부모들도 조합원으로 참여해 뜻을 모았다.

먼저 고부가가치의 사업 아이템이 필요했다. 발달장애인이 충분한 임금을 가져갈 수 있고, 무엇보다 참여가능한 일이어야만 했다. 고민 끝에 류 이사장은 옥내외광고물과 인쇄물, 판촉물 등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장애인이 만든 광고물을 누가 쓰겠냐”는 편견을 깨기 위해 철저한 ‘분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고퀄리티를 요구하는 광고물 디자인과 시공 영역은 비장애인에게 맡겼다. 발달장애인은 보조업무와 포장·조립을 담당하게끔 했다.

류 이사장은 비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소통하며 일하는 ‘노동통합형 일터’를 만들고 싶었다. “발달장애인이 뭐든 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닙니다. 한사람 몫을 해내는 사회구성원임을 입증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취지였지만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초기 자본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었다. 고가의 인쇄기기 등 초기경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류 이사장은 꿈을 굽히지 않았다. 사재를 털어 출자금을 댔다. 많은 조합원들도 동참했다.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돌려받지 않겠다는 각서도 썼다. 그만큼 부모들의 마음은 간절했다.

절실함으로 무장하자 길이 열렸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고, 부천시로부터 사업개발비와 전문인력을 지원받았다. 일감도 조금씩 늘어났다. 해냄기획이 만든 홍보용 현수막이 구름다리에 걸렸고 공사장엔 통행 제한과 위험지역을 알리는 표지판들이 세워졌다. 작지만 꼭 필요한 도시에 없어선 안 될 것들이었다.

해냄기획의 비전은 발달장애인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노화가 빠르다. 그렇기에 은퇴 시기도 빠르게 찾아온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류 이사장은 이제 또하나의 꿈을 꾸고 있다. 은퇴를 맞은 발달장애인들이 요양을 할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하는 것이다.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류 이사장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아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잘 해줬어요. 이젠 우리가 해낼 차례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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