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로쑈핑은 정말 임대료 탓에 무너졌나
삐에로쑈핑은 정말 임대료 탓에 무너졌나
  • 이지원 기자
  • 호수 371
  • 승인 2020.01.07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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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찾으라는 데 보물이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년여전, 이마트는 잡화 전문점 ‘삐에로쑈핑’을 선보였다. 미로처럼 복잡한 매장에서 저렴한 상품을 찾는 재미가 있는 일본의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매장이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직접 홍보전선에 뛰어들 정도로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오너의 열정’ 덕분인지 삐에로쑈핑은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마트는 “임대료 부담 탓에 누적적자가 쌓였다”면서 2019년 12월 삐에쑈핑을 접겠다고 발표했다. 정말 임대료 부담 탓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판 돈키호테를 내세웠던 삐에로쑈핑이 실패한 원인을 분석했다. 

삐에로쑈핑은 일본의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 주목받았지만 반짝인기에 그쳤다.[사진=연합뉴스]
삐에로쑈핑은 일본의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해 주목받았지만 반짝인기에 그쳤다.[사진=연합뉴스]

2018년 6월, 이마트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잡화전문점 ‘삐에로쑈핑’을 선보였다. ‘B급 만물상’을 콘셉트로 내세운 삐에로쑈핑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야심작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어모았다. 실제로 정 부회장은 개점 3개월여를 앞두고 열린 채용박람회에서 삐에로쑈핑을 언급했다. “일본의 (잡화전문점) 돈키호테에서 영감을 받은 ‘펀(Fun) 스토어’를 코엑스에 오픈할 것이다. 1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삐에로쑈핑은 일본의 돈키호테와 판박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참고: 일본 돈키호테는 덤핑상품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만물 잡화점이다. 일본에서 370여개(이하 2017년 기준) 매장을 운영 중이다. 연간 매출액은 8300억엔(약 9조원)에 이른다.] 한국판 돈키호테란 평가를 받을 법도 했다. 무엇보다 매장의 구조나 상품 진열방식이 거의 똑같았다. 일반 대형마트(4m) 절반(1.8m) 수준의 좁은 동선과 4만여개 상품을 빼곡히 쌓아놓은 ‘압축진열’ 방식은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놀랄 만큼 싸다(驚安)’는 캐치프레이즈로 무장한 돈키호테처럼 ‘급소가격(가격경쟁력이 있는 특가상품)’ ‘광대가격(단독 및 PL상품)’ ‘갑오브값(카테고리 내 가격경쟁력 우수상품)’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이마트 측은 “재밌는 상품과 미친 가격으로 소득이 많지 않은 2030세대가 ‘보물찾기’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출발은 상큼했다. 신선식품부터 가전제품ㆍ명품ㆍ성인용품을 아우르는 제품 구성은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삐에로쑈핑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자 이마트의 주가도 들썩였다. 2018년 6월 28일 개점을 앞둔 시점에 이마트 주가는 5거래일 동안 강세를 보였다. 개점 당일에는 주가는 전일 대비 3.2%(8000원) 오른 25만6000원에 거래됐다. 삐에로쑈핑이 이마트의 차기 신사업으로 주목받은 셈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삐에로쑈핑 1호점은 개점 두달여만(2018년 6월 28일~8월 29일)에 누적 방문객 수 60만명을 넘어섰고, 초기 매출 목표를 120% 초과 달성했다. 이후 이마트는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대했다. 같은해 8월 동대문 두타점, 11월 논현점, 12월 의왕점ㆍW몰점, 명동점을 잇따라 오픈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ㆍ부산 등에 진출하면서 매장 수는 9개로 불어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마트는 1년 반여만인 2019년 12월 삐에로쑈핑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삐에로쑈핑을 포함한 전문점의 영업적자가 연간 900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이마트는 앞서 7월 의왕점ㆍ논현점을 폐점한 데 이어 12월 31일에는 플래그십스토어 개념의 명동점도 문을 닫았다.

2019년 12월 31일 폐점일에 찾은 삐에로쑈핑 명동점은 황량했다. 물건이 모두 빠진 3~4층은 들어갈 수 없었고, 1~2층에선 재고소진 행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텅빈 매대에는 팔리지 않은  몇가지 물건만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명동점을 찾은 직장인 김소진(33)씨는 “명동에 올 때 가끔 들렀는데 폐점하는지 몰랐다”면서 “이미 70%까지 할인행사가 진행된 탓에 이미 살 만한 물건은 빠지고 없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업 초기 목표매출을 초과달성할 정도로 인기를 끌던 삐에로쑈핑은 왜 사업을 접어야 했을까. 이마트 측은 가장 큰 원인으로 ‘임대료’를 꼽았다. “높은 임대료 부담에 수익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사업 조정이 불가피했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삐에로쑈핑의 매장은 임대료가 비싼 곳에만 있다.

일본 돈키호테는 일본 내 370여개(이하 2017년 기준) 매장을 운영 중으로, 연간 매출액은 9조원대에 이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 돈키호테는 일본 내 370여개(이하 2017년 기준) 매장을 운영 중으로, 연간 매출액은 9조원대에 이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특히 명동점은 명동의 노른자위 땅(신한은행 명동점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매장을 만들어 ‘임대료 부담’을 털어내겠다는 전략을 세웠겠지만 맞아떨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더구나 자금이 넘치는 대기업이 힘없는 자영업자처럼 ‘임대료 탓’을 운운하는 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직접 홍보전선에 나서는 등 임대료 부담을 상쇄할 만큼의 마케팅 효과도 누렸다”면서 “집객효과와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명동에 매장을 내놓고 이제와서 비싼 임대료 탓을 하는 건 삐에로쑈핑 실패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는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했지만, 결국 삐에로쑈핑은 ‘실패작’일 뿐이란 일침이다.

자! 그렇다면 삐에로쑈핑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돈키호테가 내세운 ‘놀랄 만큼 저렴한 가격’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급소가격’ ‘광대가격’ 등 저렴한 가격을 홍보하는 POP(구매 시점 광고)가 무수히 많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덴 한계가 있었다는 거다.

예컨대 삐에로쑈핑에서 7500원에 판매하는 ‘갸스비 스타일링 왁스(울트라하드ㆍ80g)’의 온라인몰 가격은 4700원대(배송비 별도)다. 삐에로쑈핑에서 3000원에 판매하는 ‘크리넥스 베이비 입체마스크(3개입)’는 온라인몰에서 1500원대(최저가 기준ㆍ배송비 별도)에 판매되고 있다. ‘가격’을 메리트로 온라인 고객을 삐에로쑈핑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웠던 셈이다.

 

일본 돈키호테의 또다른 메리트인 ‘다양한 상품’을 갖추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삐에로쑈핑이 돈키호테의 DNA까지 옮겨오진 못했다는 거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상품의 60%는 본사에서 공급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나머지 40%는 점장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매장 특성에 맞는 상품을 그때그때 소싱해 최저가에 판매하기 위해서다.

상품회전율과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구사했다는 건데, 삐에로쑈핑은 이를 구현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 교수는 “한국 시장의 경우 매장을 채울 만한 콘텐트(상품)가 많지 않고, 유통업계의 경쟁은 치열하다”면서 “점장 한사람에게 권한을 준다고 해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일본 돈키호테를 그대로 옮겨오려는 전략이 되레 ‘독’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소비자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일침이다. 삐에로쑈핑을 방문한 박형돈(43)씨는 “아이와 함께 방문했는데, 여기저기서 나오는 방송소리와 복잡한 매장 구조가 한국 소비자에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꼭 필요한 물건이 있는 게 아니라면 재방문하지 않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마트 측은 삐에로쑈핑을 포함한 전문점의 영업적자 누적으로,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이마트 측은 삐에로쑈핑을 포함한 전문점의 영업적자 누적으로,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보물찾기를 콘셉트로 하고 있지만 ‘보물’이 없었던 셈”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삐에로쑈핑이 당초 내세운 보물찾기 콘셉트가 성공하려면, 소비자에게 정말 보물 같은 메리트를 줘야 한다. 예컨대 구제시장에는 제품이 어지럽게 쌓여있지만 그 속에서 희귀한 제품을 찾는 재미가 있고, 가격이 저렴해 소비자로선 정말 보물을 찾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삐에로쑈핑의 경우 매장 구조나 상품 진열은 복잡했지만, 소비자가 찾는 보물은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삐에로쑈핑은 ‘한국판 돈키호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폐점 수순을 밟게 됐다. 이마트 측은 150여명의 삐에로쑈핑 직원을 이마트나 트레이더스 등 계열사에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삐에로쑈핑의 직원 다수가 기간제 직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 

정연승 교수는 “유통시장에서 새로운 업태의 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선 그 나라 소비자의 취향이나 소비코드, 상품구색, 소비수준, 문화수준 등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대료 탓을 할 게 아니라 자신들의 벤치마킹 전략을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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