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에 부는 ‘뉴트로+α’ 바람

뉴트로(New-tro) 열풍이 제약업계에도 불어닥쳤다.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거나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는 제약사들이 기존 제품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을 찾고 있어서다. 화장품으로 재탄생한 마데카솔과 까스활명수, 박카스는 대표적인 예다. 최근엔 광동제약과 스무디킹이 손을 잡고 쌍화스무디를 내놓기도 했다. 제약사의 흥미로운 변신이지만 한편에선 우려도 많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제약업계에 불고 있는  ‘뉴트로+α’ 바람을 취재했다. 

제약사들이 기존 주력제품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약사들이 기존 주력제품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새살이 솔솔.” 이 문구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품이 있다. 동국제약의 상처치료제 ‘마데카솔’이다. 동국제약은 잘 몰라도 마데카솔은 누구나 알 만큼 이미지가 친숙하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하면 1ㆍ2순위로 떠올릴 만큼 시장 내 마데카솔의 포지션도 견고하다. 2015년 동국제약이 사업다각화를 위해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을 때 마데카솔에서 이름을 따온 ‘마데카 크림’을 주력제품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레드오션으로 꼽히는 화장품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출한 동국제약은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았다. 2015년 동국제약의 화장품 사업 매출은 165억원에 불과했지만 3년 만인 2018년 550억원 규모까지 커졌다. 이는 동국제약 전체 매출의 1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업계에선 동국제약의 화장품 사업이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마데카 크림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마데카 크림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마데카솔의 주성분으로 만들었다. 시장에서 검증된 마데카솔의 덕을 톡톡히 봤다는 얘기다.

동국제약의 사례는 최근 유통업계에서 불고 있는 ‘뉴트로(New-tro)’ 열풍과 맥이 같다. 뉴트로의 방향성이 ‘화장품’과 맞닿아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새로운 것(New)’과 ‘옛것(Retro)’의 합성어인 뉴트로는 “옛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해태제과의 스테디셀러 버터링이 아이스크림 버터링콘으로, 롯데제과의 죠스바가 죠스바젤리로 재출시된 것 모두 뉴트로 열풍의 결과물이다. 

기업들이 뉴트로를 선호하는 이유는 장점이 뚜렷해서다. 빅히트를 친 제품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 때문에 제품개발이나 마케팅에 드는 비용이 적을 수밖에 없다. 소비자로선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선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사실 제약업계 안팎에 ‘뉴트로+화장품’ 트렌드가 번진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동화약품은 2017년 대표 제품 까스활명수의 주요 성분을 담아 만든 화장품 브랜드 ‘활명’을 론칭했다. 까스활명수를 통해 검증받은 생약 성분이 화장품으로서도 가치가 높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활명은 미국에서부터 기반을 닦았는데, 최근엔 국내에서도 인지도를 쌓고 있다. 특히 2019년엔 국내에 상륙한 글로벌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에 독점 입점한 3개 국내 브랜드 중 하나로 꼽혔다. 

최근엔 동아제약이 박카스 성분을 결합한 화장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동아제약이 2019년 12월 화장품 브랜드 ‘파티온’을 선보였는데, 그중 남성용 화장품 ‘옴므’에 박카스 주성분인 타우린이 담겼다. 박카스가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타우린을 넣은 화장품이 피부에 생기와 활력을 부여해줄 거란 게 회사의 설명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유통업계와 달리 통상 제약업계는 보수적이다. 이를 감안하면 제약업계에 뉴트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건 다소 흥미롭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제품을 활용하는 방식은 제약사들에 무척 효과적이다”면서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코스메슈티컬(화장품과 의약품을 합친 기능성 화장품) 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제약사들이 많은데, 의약품 시장이든 화장품 시장이든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7년 동아제약은 배스킨라빈스와 함께 박카스향 소르베를 출시했다.[사진=연합뉴스]
2017년 동아제약은 배스킨라빈스와 함께 박카스향 소르베를 출시했다.[사진=연합뉴스]

그렇다고 제약업계에 ‘뉴트로+화장품’ 트렌드만 번졌다는 건 아니다. 제약업계와 유통업계가 뉴트로를 사이에 두고 협업한 사례도 숱하다. 2017년 동아제약과 SPC그룹의 배스킨라빈스가 협업해 출시한 ‘박카스향 소르베’는 대표적인 예다. 해당 제품은 한달여 판매됐는데, 동아제약 관계자는 “박카스의 기존 이미지를 벗고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뉴트로는 역효과

2019년 11월 광동제약이 신세계푸드 스무디킹과 협업을 진행한 것도 같은 사례다. 광동제약의 쌍화탕 농축액을 주재료로 사용한 ‘쌍화스무디’ ‘쌍화밀크티’ ‘쌍화티’를 출시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젊은 세대들도 전통음료를 즐길 수 있도록 재해석한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다소 이색적인 콜라보란 인식 때문인지 시장의 평가는 반반이다. 한편에선 박카스향 소르베를 재출시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뉴트로가 유행이라고 해도 쌍화스무디는 생뚱맞은 것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한다.

 

전문가들은 제약업계에 불어닥친 ‘뉴트로+협업’ 바람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반의약품 시장은 성장세가 주춤한 데다, 제네릭(복제약) 위주의 전문의약품 시장은 경쟁이 과열되고 있어 실적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시너지를 기대하고 무턱대고 뉴트로 열풍에 뛰어들었다가 부메랑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익명을 원한 한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의 기존 제품과 새로운 사업군의 제품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뉴트로를 고집했다가 아이덴티티가 상충된다면 되레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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