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더 이상 국내에서만 안주할 수 없게 됐다는 거다. 문제는 국내에서 써먹던 ‘편법’을 해외에서 활용했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세계 각국이 기업의 부패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자칫 뇌물이라도 건넸다가 발각되면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해외뇌물주의보는 이미 발령됐다.

해외에서 뇌물을 건넸다가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외에서 뇌물을 건넸다가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북유럽의 스웨덴은 손꼽히는 청렴 선진국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해 부패인식지수(CPI)를 발표하는데, 2018년 스웨덴은 180개 국가 중 3위에 올랐다. 하지만 국가의 청렴지수가 높은 것과 기업이 청렴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국내 거래보다 국제 거래에서의 부패방지를 위한 법망이 더욱 촘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웨덴 통신 장비업체 에릭슨(Ericsson)은 최근 미국 정부에 벌금을 물게 됐는데, 이유는 뇌물이었다. 

에릭슨은 2019년 12월 미국 법무부로부터 3년간 기소를 유예받기로 하고 비자금 조성과 뇌물 제공 혐의를 인정했다. 그 대신 총 10억6000만 달러(약 1조3000억원)의 벌금을 물기로 미 법무부와 합의했다. 이는 역대급 벌금 규모다. 미 법무부가 2018년 브라질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에 부과한 17억8000만 달러에 이어 두번째로 크다. 스웨덴 검찰은 뒤늦게 에릭슨의 뇌물 혐의에 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에릭슨만이 아니다. 한국의 A중공업은 에릭슨의 벌금이 확정되기 2주전 미 법무부와 7500만 달러의 벌금을 내는 데 합의했다. 에릭슨과 마찬가지로 기소를 유예 받는 조건이었다. 미국 검찰에 따르면 A중공업의 미국 직원들은 브라질 페트로브라스에 시추선을 인도하는 계약을 따내기 위해 뇌물을 공여했다.

브라이언 벤치카우스키 미 법무부 차관보는 “A중공업이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브라질 중개업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했는데, 그 돈의 일부가 페트로브라스의 고위 간부에게 뇌물로 지급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페트로브라스의 해당 간부는 1500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12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A중공업은 조사에 적극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을 20% 정도밖에 감경받지 못했다. 

 

에릭슨과 A중공업 모두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위반한 사례다. 미국 FCPA 전문사이트 FCPA Blog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FCPA를 위반한 기업들 중 벌금액 상위 10개 기업에 미국기업은 단 한곳밖에 없다. FCPA를 위반해 미국 정부에 고액의 벌금을 내는 건 대부분 외국기업이라는 얘기다. 예전엔 FCPA 위반 사건을 강 건너 불 보듯 여겼다. 하지만 A중공업 사례에서 봤듯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청렴하다고 알려진 국가들도 1950년부터 1960년대까지는 국내ㆍ국제거래에서 뇌물공여가 빈번했다. 21세기 들어 이런 부패 문제가 크게 줄었는데, 여기엔 미국이 제정한 FCPA,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뇌물방지협약 등 국제공조가 큰 역할을 했다. 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도 1997년 뇌물방지협약에 서명하고, 이듬해엔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국제뇌물방지법)’을 제정했다. 

그럼에도 2018년 뇌물방지협약 이행평가를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OECD 뇌물작업방지반은 “신속히 법안을 개정해 해외뇌물 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부과할 수 있는 제재 수준을 높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고의 형태였지만 일종의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국제뇌물방지법은 미국 FCPA에 비하면 처벌 규정이 매우 약하다.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한 기업의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양벌兩罰규정을 적용하고 있지만 제재 수위는 낮다. 뇌물을 제공한 기업은 10억원 이하의 벌금 또는 뇌물로 얻은 이익의 2배 이하의 벌금을 무는 데 그친다. 심지어 국내 거래에서 적용되는 뇌물공여죄는 더 심각하다. 형법 제133조의 단 한개 조문으로 규율되는데, 뇌물을 준 기업의 형사책임조차 인정되지 않는다.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하면서 뇌물도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세계는 더 이상 뇌물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부패방지법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해외에서 뇌물을 건넸다가는 탈탈 털리는 시대가 됐다는 거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들이 치열한 비즈니스 전쟁을 치르더라도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불공정한 경쟁의 대가는 혹독하다. 국내의 솜방망이 처벌에 익숙해진 국내 기업들에 해외뇌물주의보를 발령할 때다. 
글=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정리=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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