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 건전성 빨간불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하고 있다.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정책의 지속가능성이다. ‘보장확대정책’으로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3년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르면 2년, 늦어도 6년 안에 건강보험 적립금이 바닥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확대정책이 폭탄돌리기로 전락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문재인 케어의 빛과 그림자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통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아픈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2022년까지 국민 모두가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 어떤 질병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시행을 앞두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역설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2017년 기준 62.7%에 불과한 건강보험 보장률을 2022년 70%까지 높이고, 전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평균 18% 낮추겠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자 건강보험의 보장범위가 크게 늘어났다.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질환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됐던 초음파는 간, 담낭, 신장, 남성생식기, 중환자실·응급실 초음파 검사로 확대됐다. 올해부터는 여성생식기 초음파 검사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될 예정이다. MRI(자기공명 영상상치) 검사, 2~3인실 병실비, 난임시술비, 65에 이상 노인의 임플란트·틀니 본인 부담률 축소 등 다양한 정책도 시행됐다.

정부는 문재인 케어의 시행으로 2017년 8월~2019년 7월 약 3600만명의 국민이 2조2000억원의 의료비 경감 혜택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의료취약계층인 노인·아동이 부담하던 의료비용이 8000억원가량 줄고, 중증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50%에서 25% 수준으로 축소된 결과다. 국민 입장에선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일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 ‘건강보험 보장확대정책’을 무슨 돈으로 계속 하고 있느냐다. 더구나 정부의 곳간이 갈수록 비어가고 있지 않은가. [※ 참고 :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9년 11월말 기준 중앙정부의 채무는 704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중앙정부의 채무가 700조원을 넘어선 것은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처음이다. 같은 기간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45조6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확대정책’에 필요한 41조6000억원(2017~2022년·5년간)의 재원을 건강보험 적립금(20조8000억원·2018년 기준)과 국가재정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참고 : 건강보험 적립금 20조8000억원 중 18조5000억원은 박근혜 정부(2012~2016년) 시절 쌓아둔 돈이다. 박근혜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을 크게 늘리지 않았기 때문에 적립금이 쌓였다는 지적이 많다. 어쨌거나 ‘문재인 케어’의 과감한 집행을 전 정부 시절 쌓아놓은 적립금이 돕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건강보험 적립금의 바닥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장성인 연세대(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건강보험 적립금이 2022년 적자(11조5000억원)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석철 서울대(경제학과) 교수도 ‘건강보험 재정추계(2019~2030년) 결과’를 기초로 이르면 2024년, 늦어도 2026년이면 건강보험 적립금이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두 교수의 전망치에는 정부의 재정절감 효과가 빠져 있다”면서 “건강보험 적립금을 10조원 이상 유지할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2020년 들어 MRI 검사 등 일부 항목의 보장을 축소한 것은 건강보험 적립금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석철 교수는 이렇게 꼬집었다. “빨라지는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의료비는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2023년까지 건강보험 적립금 10조원을 유지하기 위해선 건강보험료를 매년 3.85%씩 인상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법은 크게 두가지다. 건강보험에서 정부가 부담하는 국고지원금 비중을 높이는 것과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다. 문제는 둘 다 현실화하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원칙적으로 정부는 건강보험료의 20%를 지원해야 한다. 나머지는 80%는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로 충당한다.

하지만 정부의 건강보험 부담률은 최근 10년간 한번도 15%를 넘은 적이 없다. 되레 2015년 13.3%에서 12.5%(2016년), 11.5% (2017년), 11.2%(2018년)로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건강보험 부담률을 20%로 쉽게 끌어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재정적자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어서다.

건강보험료 인상은 더 힘들다. 안 그래도 강제적으로 거둬들이는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면 지갑이 얇은 직장인만 힘들게 한다는 반발에 부닥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건강보험의 50%를 부담하는 기업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공산이 크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기업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는데 정부가 기업의 부담만 높이는 격이어서다.

임금자 박사(전 의료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는 정부의 건강보험정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건강보험료 인상률은 현 상태로 유지하면서 건강보험 보장비율을 62.7%에서 70% 수준까지 올리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보장 확대만 얘기하고 있다.”

보험료 인상 쉽지 않아

그는 주장을 이어갔다. “그렇다고 매년 3.2%씩 보험료(2020년 기준 6.67%)를 인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항이야 설득으로 무마한다고 하더라도 연평균 3.2% 올리면 직장인 건강보험료율 법적 상한선인 8%를 2026년(8.03%)이면 초과하게 된다. 정책을 유지하면 나가는 비용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려야 하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듯하다.” 정부가 건강보험 확대책을 고집하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교수는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정책을 펴면서 다음 정권엔 건강보험료 부담이라는 폭탄을 전가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보장성을 강화한 문재인 케어가 ‘폭탄 돌리기’의 출발점이 돼선 안 된다는 일침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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