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재정확보 방안과 한계

지출을 늘리기 위해선 수입이 있어야 한다. 이는 복지도 마찬가지다. 안정적으로 돈이 나올 곳이 있어야 후유증 없이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하는 ‘문재인 케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보기는 많은 데 답이 보이지 않아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건보 재정확보 방안과 한계를 취재했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사진=연합뉴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원익(기명·32)씨는 최근 직장인 건강보험료율이 2019년 6.46%에서 2020년 6.76%로 오른다는 기사를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인상되는 월평균 보험료는 3653원, 1년이면 4만3836원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1년에 한번 병원을 찾을까 말까한 이씨는 속이 쓰리기만 하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떼 가는 돈만 느는 것 같아서다.

실제로 이씨는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월급이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 이씨는 2016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은 180만원 남짓, 건강보험료는 월 5만4440원이었다. [※참고: 2016년 직장인의 건강보험료율은 6.12%였다. 직장인 건강보험료는 기업과 노동자가 반반 부담한다. 이씨의 건강보험료가 5만4440원(180만원×3.06%)인 이유다.] 지난해 기준 이씨의 월급은 280만원 남짓이다. 2016년 대비 55.5% 인상된 셈이다.

그렇다면 건강보험료는 얼마나 인상됐을까. 이씨가 매월 내는 건강보험료는 9만1240원이다. 4년 사이 67.6%나 올랐다. 게다가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이씨의 월급은 2018년부터 오르지 않았다.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하지만 올해 건강보험료율은 6.67%로 전년 대비 3.2%(0.3%포인트) 인상됐다. 이씨의 월급봉투가 더 얇아질 거란 얘기다.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확대에 나섰다. 문제는 보장이 확대되는 만큼 국민이 짊어질 부담도 늘어난다는 거다. 건강보험은 국민의 진료비 부담을 막기 위해 정부가 운용하는 사회보장제도다. 국가에서 운용하는 실손의료보험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2018년 기준 건강보험 가입자는 5107만1982명(직장인 가입자 3698만9716명+지역 가입자 1308만2266명)에 이른다. 이는 2018년 우리나라 인구 5161만명의 98.9%에 달하는 수치다. 건강보험의 재정 규모도 크다. 2018년 건강보험료 수입은60조9668억원(기타 수익 1조7489억원 제외)을 기록했다. 이중 건강보험료로 거둬들인 돈이 53조8964억원(88.4%)이다. 정부지원금은 7조704억원(보험재정 국고지원금 5조1903억원+담배부담금 1조8801억원)이다. 건강보험의 88% 이상을 국민이 부담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확대정책의 영향으로 국민의 부담이 늘어날 공산이 커졌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재정전망’에 따르면 2018년 20조6000억원이었던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3년 7000억원으로 감소한 후 이듬해 -3조1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민간 전문가들의 전망은 이보다 더 비관적이다. 건강보험료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그럼 어떤 전략들이 있을까.

■혜택 축소 = 먼저 지출을 줄이는 방법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보장 축소와 보장 확대의 속도조절이다. 언뜻 쉬운 방법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속도조절은 공약 파기라는 비판을, 보장 축소는 국민을 우롱했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미 정부는 MRI(자기공명 영상장치) 검사의 본인부담률을 지난해 30~60%에서 올해 80%(일반적인 두통·어지럼증의 경우)로 인상할 계획이다. 정부는 2년 사이 2배 이상 늘어난 MRI 남용을 막겠다는 취지라고 밝혔지만 국민으로선 줬던 혜택을 빼앗기는 꼴이나 다름없다. 정확한 분석 없이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건강보험료 인상 = 지출을 줄이지 못하면 건겅보험료를 인상해 수입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여기엔 한계가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직장인 가입자의 건강보험료율 상한이 8%(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보험료율이 6.67%라는 걸 감안하면 2026년이면 상한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법을 개정해 보험료율을 인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보험료율 인상에 선뜻 동의할 직장인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건강보험료는 직장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징수하는 준조세에 해당한다. 보험료율 인상이 세금을 올리는 것과 같은 의미다.

직장인 건강보험료의 절반을 책임지는 기업의 반발도 거세질 게 뻔하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급진적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가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떨어뜨리고 경제 활력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한 바 있다.

■정부 지원금 현실화 = 정부 지원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온 방안이다. 정부지원금이 법정 기준인 20% (국고 지원금 14%+담배부담금 6%)를 한창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정부지원 예산이 8조9627억원으로 책정되면서 지원 비율이 14%로 상승했지만 기준에 못 미치긴 마찬가지다. 시민단체들이 이를 높여 건강보험 재정을 확보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예산을 확정할 때 국회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산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힘겨루기가 매년 반복된다는 걸 생각하면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재정 여건에 따라 정부의 예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변수다. 정부 재정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담뱃세 인상 = 담배부담금(국민건강증진기금)을 높이는 방안도 있다. 이를 위해선 담뱃세를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2015년 한갑에 2500원이던 담배가격을 4500원으로 80% 올리면서 발생했던 사회적 논란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희박하다.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세금을 올리는 꼼수를 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금을 올리든 담뱃세를 올리든 서민의 부담만 가중된다는 건 매한가지다.

국민을 위한 복지가 늘어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세대를 위한 복지가 다음 정권 혹은 다음 세대를 옥죄는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꼴이 될 게 뻔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해소할 혜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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