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자 반등했다’는 고용지표의 그늘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만든 일자리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될 수 없다. 질 좋은 ‘진짜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만든 일자리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될 수 없다. 질 좋은 ‘진짜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설이 코앞이다. 경기가 침체한 데다 날씨가 춥지 않아 겨울장사까지 망치는 바람에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래도 가족 친지들이 모처럼 만나 살가운 대화를 나누는 기회다. 설 차례상 대화의 단골 메뉴는 취업과 장사 등 돈벌이부터 결혼과 출산 및 육아, 내집 마련, 승진과 자녀의 상급학교 진학 등 우리네 삶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일상의 출발점이자 기반은 일자리다.

그 일자리와 관련해 15일,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관계 장관들과 긴급 합동브리핑을 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취업자 증가, 고용률, 실업 등 3대 고용지표가 개선돼 양적 측면에서 V자형 반등에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과연 경제팀이 ‘성공’ 운운할 정도로 고용시장에 훈풍이 불었을까. 고용지표는 수치상으로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연간 취업자는 30만1000명 증가했다. 2018년 취업자 증가폭(9만7000명)의 3배를 웃도는 규모다. 고용률도 전년보다 0.2%포인트 높아진 60.9%로 2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늘어난 일자리 대부분이 60세 이상(37만7000명 증가), 그것도 65세 이상(22만7000명 증가) 고령자 몫이다. 대학을 나와 직장을 잡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을 시기인 30대 취업자는 5만3000명 줄었다. 40대 취업자도 16만2000명 감소했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40세대 일자리가 21만5000개 줄었다. 대신 정부가 국민 세금(재정)을 쏟아 부어 하루 2~3시간 일하고 월 20만~30만원 받는 노인 일자리를 이보다 훨씬 많이 만든 덕분에 전체 취업자가 늘어난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는 산업별, 근로형태별, 취업시간대별 취업자 수로 입증된다. 먼저 산업별로 볼 때 정부 재정이 주로 투입되는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16만명) 취업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반면 중년층의 안정적 일자리가 많은 제조업(-8만1000명), 금융ㆍ보험업(-4만명), 도ㆍ소매업(-6만명) 취업자는 일제히 줄었다. 

특히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가 6만명 감소한 것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익이 줄어든 영세 자영업자들이 종업원을 줄이고 식구들끼리 점포를 운영하거나 폐업한 여파다. 이는 근로형태(종사자 지위)로 볼 때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8만1000명 늘어난 반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1만4000명 줄어든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독창적인 아이디어 창업보다 생계유지형이 많은 자영업의 현주소다. 

고용의 질도 나아지지 않았다. 주당 17시간 이하 초단시간 취업자가 30만1000명 증가했다. 1980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182만1000명)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주휴수당을 지급하도록 지난해 최저임금법이 개정되자 ‘쪼개기 알바’가 늘어났다. 또 이들 일자리 중 상당수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급조한 단기 노인 공공알바다. 

우리나라 일자리 문제의 핵심은 경제의 허리인 40대의 고용절벽과 양질의 일자리인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다. 지난해 40대 취업자 감소폭은 1991년 이후 가장 컸다. 40대는 외환위기 때 힘든 청년기를 보냈다. 지금은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다. 40대의 실업은 자녀세대에 빈곤을 대물림할 개연성이 높다.

제조업 일자리는 2016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전통산업이 도태되면서 사라지는 일자리는 신산업 태동으로 생겨나는 일자리로 대체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선순환은 규제혁파와 혁신성장이 겉돌면서 막혀 있다.

이런 일자리 추세는 2018~2019년 이태 연속 닮은꼴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고, 이듬해부터 일자리 가뭄이 지속되는 것은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다. 정부는 올해 512조 초슈퍼 예산으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지만, 재정 일자리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될 수 없다.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확장실업률이 22.9%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라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질 좋은 ‘진짜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온다. 홍 부총리 등 경제팀은 재정을 투입해 급조하는 ‘가짜 일자리’로 숫자놀음하지 말고, 40대ㆍ제조업 일자리 해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정책 기조를 수정 보완하고, 노동 유연성 확대 정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도 취임과 함께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청와대 상황판을 ‘규제 상황판’으로 바꿔 달고 규제혁파를 진두지휘할 필요가 있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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