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자동차업체 3사 위기의 함의

2024년엔 레벨3이나 레벨4의 자율주행차가 도로 곳곳을 누빈다. 하늘을 나는 이동수단인 플라잉카는 2025년에 실용화된다. 정부가 꿈꾸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이렇게 장밋빛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한쪽에선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한국 자동차 산업엔 현대차그룹만 남을 공산이 크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한국차는 어느 쪽의 미래를 맞게 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외국계 자동차업체 3사 위기에 숨은 함의를 분석했다. 

자동차 업계가 선제적으로 몸집을 줄이지 않으면 미래차 시대에 생존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사진=뉴시스]
자동차 업계가 선제적으로 몸집을 줄이지 않으면 미래차 시대에 생존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사진=뉴시스]

“국적 2위 항공사 아시아나항공이 새 주인을 맞았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을 품에 안았다. 불황에 구조조정이 예상됐던 항공산업의 시장 재편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하지만 격변을 눈앞에 두고 있는 건 항공업계만이 아니다. 자동차 산업도 위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래차 육성’이라는 희망찬 슬로건만 외치고 있다.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일 구조조정 전략은 없는가.” 자동차 부품업계 경영컨설팅 회사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로 2019년 한국 자동차 업계는 다사다난했다. ‘군산공장 폐쇄(2018년 2월)’ 같은 충격적인 이슈는 없었지만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2018년 대비 ‘생산(-1.9%)’ ‘내수(-1.8%)’ ‘수출대수(-1.9%)’가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생산 규모(395만1000대)도 400만대를 밑돌았다. 연 생산량 400만대가 무너진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351만3000대) 이후 10년 만이다.

그렇다고 비보만 있었다는 건 아니다. 낭보도 있었다. 정부가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위한 국가적 전략과 로드맵을 짜기 시작하면서다. 미래차(친환경차ㆍ무인차 등)는 바이오헬스ㆍ시스템반도체와 함께 정부의 3대 중점 혁신산업 중 하나로 선정됐다. 미래차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홍보대사’를 자처할 정도로 애정을 쏟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미래차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기존 미래차 관련 정책을 보완하고 산업의 비전과 목표, 법ㆍ제도ㆍ인프라 구축 등이 망라된 종합대책이었다. ▲친환경차 보급 및 글로벌 시장 공략 가속화 ▲2024년까지 자율주행차 인프라 및 제도 마련 ▲60조원 규모 민간투자 기반 미래차 생태계 구축 등을 통해 미래차 부문 세계 1위 경쟁력을 달성하겠다는 비전이다. 

한편에선 “희망 섞인 목표일 뿐”이라고 깎아내리고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세계 주요 기업이 미래차로의 전환을 빠르게 추진하고 있지만, 이 분야의 절대 강자는 아직 없어서다. 민첩하게 움직인다면 한국 자동차 업계가 시장 주도권을 가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실제로 글로벌 자동차 사회에선 지난해 ‘피크카(Peak Car) 이론’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피크카는 석유 생산의 정점을 가리키는 피크오일(Peak Oil)에서 따온 신조어로 자동차 생산과 소비가 정점을 찍었다는 뜻이다. 이제 자동차 산업은 ‘CㆍAㆍSㆍE(커넥티드ㆍ자율주행ㆍ공유ㆍ전동화)’로 대표되는 패러다임 격변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적기에 전략을 꺼내든 셈이다.

생산ㆍ내수ㆍ수출 모두 감소

그렇다면 격변기가 끝난 뒤 부진의 늪에 빠진 한국 자동차 산업이 ‘미래차 세계 1위’를 거머쥘 수 있을까. 아쉽지만 전문가들의 전망은 어둡다. 김동한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대차와 기아차를 제외한 외국계 3사(쌍용차ㆍ한국GMㆍ르노삼성)의 경우 생산설비를 매각하고 OEM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결과적으로 국내 완성차 제조사는 5개사에서 2~3개사 정도만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의 장밋빛 미래차 플랜에 외국계 3사는 올라타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전략이 발표된 장소도 현대차 남양연구소였다. 역으로 보면,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미래를 내다볼 만한 여력을 갖춘 회사가 현대차ㆍ기아차밖에 없다는 소리다. 실제로 외국계 3사의 상황은 썩 좋지 않다. 

쌍용차는 지난해 9월 임원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안식년제 시행, 급여삭감 등 고강도 자구안을 수행 중이다. 극심한 노사분쟁을 겪은 르노삼성은 대규모 희망퇴직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GM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560여명은 한꺼번에 해고예고통지서를 받아들었다. 이들 3사에서 문제가 터진 건 노사갈등 같은 일시적 이슈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자동차가 팔리지 않고 있다.

외국계 3사가 미래차 시장의 개화를 반전기회로 삼을 순 없을까. 자동차 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전기차나 수소차ㆍ무인차 등으로 차종이 대거 바뀌면 인력과 설비는 오히려 감축될 수밖에 없다. 가령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생산 공정이 단순하다. 차량 한대를 조립하는 데 필요한 부품 수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더구나 이들 기업은 연구ㆍ개발(R&D)에 돈을 쏟아붓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래차는 고사하고 내연기관 신차를 내놓기도 벅차다.”

혹자는 ‘외국계 3사가 악화일로를 걷는 건 맞지만 어차피 외국계 아니냐’면서 선을 긋는다. 그렇지 않다. 외국계 3사의 위기는 부품사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미 만도는 지난해 7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임원을 20% 이상 감원하고,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적자를 기록한 자동차 부품사의 비중은 25.0%로 2018년보다 2.4%포인트 높아졌다. 김동한 수석연구원은 “수익성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견실하다고 평가받는 부품기업마저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미래차에 필요한 부품을 새롭게 개발하거나 생산할 여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외국계 3사 지원책 필요 

한국 자동차 산업을 벼랑 끝에서 건져내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의 45페이지 분량의 미래차 전략엔 플라잉카 얘기는 상세하게 설명해놨지만, 외국계 3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는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구조 개편이 절실한 자동차 산업의 큰 그림은 외면한 채 장밋빛 미래차 전략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라면서 “이렇게 실기하다간 막대한 혈세가 외국계 3사를 연명하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