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terview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예산이 허투루 쓰인다는 기사는 차고 넘친다. 문제는 이런 일이 특정 정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산 낭비는 반복적이고 습관적이다. 진보든 보수든 똑같다는 얘기다. 왜 그런 걸까. 정창수(52)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예산 낭비를 불러일으키는 구조를 바꾸거나 진짜 책임 있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최근 「워 오브 머니(War of Money)」란 책을 발간한 그에게 대한민국 예산의 문제를 물었다.

1월 15일 열린 「워 오브 머니(War of Money)」 북콘서트.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맨 왼쪽),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가운데), 안진걸 민생경제정책연구소장.[사진=나라살림연구소 제공]
1월 15일 열린 「워 오브 머니(War of Money)」 북콘서트.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맨 왼쪽),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가운데), 안진걸 민생경제정책연구소장.[사진=나라살림연구소 제공]

「워 오브 머니(War of Money).」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이 최근 발간한 책 제목이다. 여기서 ‘머니’는 예산을 뜻한다. ‘예산전쟁’이란 말인데, 누가 누굴 상대로 치르는 전쟁일까. 언뜻 예산을 둘러싸고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국회가 벌여온 아귀다툼이 떠오른다.

하지만 정 소장이 말하는 예산전쟁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유용하게 쓰이는지 감시하고, 지적하며, 바로잡는 일’ 그 자체가 전쟁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1998년부터 20년이 넘게 예산 감시활동을 펼쳐온 그의 소회를 책 제목으로 대신했다고나 할까.

✚ 간단히 책 소개를 한다면.
“살림살이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혁신도 성공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예산을 올곧게 쓰지 않으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언론에 게재했던 칼럼들을 모아 낸 책이 「워 오브 머니」다.”

✚ ‘War(전쟁)’란 단어를 붙인 이유는 뭔가.
“사실 ‘게임’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예산은 어렵다는 이유로 관심에서 멀어지기 쉽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더욱 그렇다. 젊은 세대들이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게임에 빗대 본 거다.”

✚ 책에서 빌런(악담)을 설정해 놓은 것도 그 때문인가.
“그렇다.”

✚ 빌런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
“뒤에 감춰진 중요한 사실을 왜곡하고 예산 혁신을 방해한다.”

✚ 예를 들어 달라.
“흔히 정부는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지금도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정책자금에 기대 연명한다. 그런데 이런 지원은 누군가에 혜택을 주지만,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는 업체엔 피해를 준다. 정책자금에 기댄 중소기업 때문에 결국 시장이 왜곡되는 셈이다.”

✚ 정책자금이 대규모 실업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실업을 막고 싶다면 노동자를 직접 지원하면 된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 조선업이 몰락했을 때, 영국은 경영을 잘못한 책임은 기업에 묻고,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에겐 2년치 실업급여를 제공해 직업을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정부는 기업의 역할과 책임은 기업에 맡기고,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일자리 지원정책도 문제가 많다.”

✚ 기업을 통해 지원하기 때문인가.
“그렇다.”

✚ 자세하게 말해 달라.
“지원금을 기업에 주면 기업은 필요 없는 사람을 싸게 고용해서 지원금을 빼먹거나 원래 일하던 직원의 급여를 낮출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원할 것 같으면 노동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 종합하면 시장의 일은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쓸데없이 빠져나가는 재원을 줄여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라는 건가.
“그렇다.”

✚ 사회안전망은 분명 강화해야 할 요소다. 하지만 사회안전망을 무턱대고 강화하면 불필요한 복지예산이 증가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하게 반론해야 할 지점이다.”

✚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복지 분야에서 예산사업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공적연금이나 주택부문 사업이다. 여기에 복지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경제예산이 증가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경제예산이 늘어나는 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 경제예산은 무엇을 말하는가.
“연구ㆍ개발(R&D), 산업ㆍ중소기업ㆍ에너지, 사회간접자본(SOC), 농림ㆍ수산ㆍ식품 등의 분야에 쓰이는 예산이다. 2020년 이 예산은 79조1000억원에서 91조3000억원으로 늘었고, 그중 일부는 허투루 쓰였다.”

✚ 예를 들어달라.
“농업 쪽 이야기를 해보겠다. 정부는 농작물 가격을 보전해준다. 당연히 농사를 크게 짓는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왜 그래야 하는가. 이게 공익인가.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정해진 예산의 틀이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 잘 안 바뀌는 이유가 있나.
“새로운 일에 예산을 투입하려면 법 등 근거가 있어야 한다. 성가신 부분이다. 그래서 예산은 ‘늘 하던 일’에 투입되게 마련이다.”

✚ 책에는 정부, 지자체, 기업, 국회 등 다양한 빌런이 등장한다. 그중 핵심 빌런은 누구라고 보나.
“굳이 따진다면 기획재정부다. 전체 정부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실질적인 조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인 전쟁이나 게임에선 빌런을 없애는 게 목적이지만, 책에선 다르다.”

✚ 무슨 말인가.
“가장 큰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책임도 가장 크게 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핵심 빌런으로 꼽은 거다. 하지만 기재부의 역할이 있는데 없애면 되겠는가. 혁신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 어떻게 말인가.
“많은 이들이 감시자가 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예산전쟁에서 이긴다. 책을 낸 것도 그 때문이다.”

✚ 하지만 예산은 전문성이 있는 분야이고,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슈를 통해 접하면 어렵지만은 않을 거라 본다.”

 

정 소장은 “한계기업 지원은 결국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꼬집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정 소장은 “한계기업 지원은 결국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꼬집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언론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다.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사실만 전달하면 중요한 이슈라도 쉽게 묻힌다.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을 짚어가면서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명확해지고 쉽게 묻히지 않아 구조를 바꿀 수 있다.”

✚ 현 정부의 예산정책 문제점을 짚자면.
“기대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도 없이 출범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기재부 조직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건 문제다. 청와대 내에 재정기획관을 둔 것은 예산을 제대로 보겠다는 것이지만, 이 또한 공무원 출신이 맡았다. 이러면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예산을 제대로 개혁할 수 없다.”

✚ 그렇다면 뭘 어떻게 바꿔야 하나.
“다원성을 확보한다든지 견제기구를 만든다든지 해야 한다. 사실 박정희 정부 경제기획원이나 참여정부 기획예산처와 같이 기획부서를 따로 분리했을 때 예산을 좀 더 효율적으로 썼다. 진짜 기획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기재부에 권한을 몰아놓으면 바뀌지 않는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 문제를 알고 있는 탓에 가끔 빌런을 용서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알아보니 그런 이유도 있던데, 그럼 별수 없지 않겠나’ 뭐 이런 식이다. 어쩌면 이들이 개혁을 막는 진짜 방해꾼들일지 모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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