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경계선’을 넘지 못했네
공실지옥 vs 제2의 홍대

마곡은 서울의 마지막 신도시로 꼽히며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br>
마곡은 서울의 마지막 신도시로 꼽히며 기대감을 한몸에 받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007년 강서구 마곡동은 서울의 마지막 신도시 부지가 됐다. 대기업 연구센터가 들어올 것이라는 계획에 기대감도 높았다. 그 어떤 신도시보다도 서울과 가깝다는 장점 때문에 높은 가격으로 상가와 주택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3년여가 흐른 2020년. 마곡은 ‘공실 지옥’이 됐다. 기운을 차리고 있는 곳은 기존 도시와 맞닿아 있는 경계부지(발산역 일대)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 마지막 신도시 마곡지구의 두 얼굴을 취재했다. 

지하철 9호선 급행열차를 타고 마곡나루역에 내렸다. 2번 출구로 나오니 서울식물원의 이름을 딴 오피스텔 한동이 멀뚱하게 서있다. 남쪽은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다. 2년 후 이곳에 LG아트센터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아직은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마곡나루역에서 마곡역까지 약 700m를 걸었다. 마곡역이 있는 공항대로까지 이어지는 마곡중앙로의 서쪽은 개발 중인 신도시가 그렇듯 빈땅이다. 공사 부지를 두른 펜스엔 ‘마곡 사이언스 파크’를 향한 기대감이 담긴 그림이 가득했다. 마곡중앙로의 보도를 따라 걸어 내려오니 마곡역까진 금방이었다. 


신축건물이 공항대로를 따라 나란히 서있었지만 빌딩풍만 거셌다. 빌딩의 1~2층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마곡역 일대의 신축빌딩은 상가와 오피스 모두 새로운 입주자를 찾느라 바쁜 듯했다. 한 상가에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여러장 나붙어 있었다. 대부분이 의료시설 임차인을 구하고 있었다.

마곡지구를 평가하는 말, ‘공실 지옥’은 틀리지 않았다. 임차인을 찾고 있는 건물들이 말하듯 오피스 입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듯했다. 상가에서 소비할 사람들이 없기 때문일까. 

서울시가 운영하는 우리동네상권분석 서비스에 들어가 마곡지구의 변화를 확인해봤다. 유동인구는 늘었다. 2017년 3분기 1㏊(1만㎡)당 1252명 수준이었던 유동인구는 2018년 3분기 1567명, 2019년 3분기 3709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1㏊는 마곡나루 1ㆍ2번 출구와 접해있는 오피스텔 동의 부지 면적과 비슷하다. 오피스텔 한동 블록에 3000여명이 드나든다는 얘기다.

거주인구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2017년 3분기 1㏊당 254명→2019년 3분기 1㏊당 292명), 직장인구는 큰 폭의 변화가 있었다. 2017년 3분기 1㏊당 41명이었던 직장인구는 2019년 106명으로 늘어났다. 2년 새에 2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이는 2018년 LG사이언스파크가 입주한 다음의 변화상이다. 대규모 기업 입주가 이뤄진 덕분인지 2017년과 2019년을 비교하면 유동인구와 직장인구 모두 늘었다. 

문제는 2018년과 2019년 1년 간은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2018년 1㏊당 94명이었던 직장인구는 106명으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2년간의 변화와 비교하면 증가 폭이 줄어들었다.) LG사이언스파크란 대형 오피스가 입주했지만 성장은 되레 더뎌졌다는 얘기다. 마곡역 일대의 ‘썰렁함’을 두고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발산역 일대 상권은 공항대로 뒤편으로 뻗은 보행로가 있어 대로변 앞과 뒤로 나뉜다(사진 위). 발산역 인근 마곡지구 상권은 기존 상권을 등에 업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br>
발산역 일대 상권은 공항대로 뒤편으로 뻗은 보행로가 있어 대로변 앞과 뒤로 나뉜다(사진 위). 발산역 인근 마곡지구 상권은 기존 상권을 등에 업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이 있다. 마곡지구가 모두 ‘공실 지옥’인 건 아니다. 마곡역에서 100m만 가도 180도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이번엔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발산역까지, 마곡지구의 서쪽 경계길을 걸어봤다. 약 1㎞ 구간, NC백화점이 있는 발산역 3ㆍ4번 출구로 이어지는 길이다. 

우리동네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NC백화점이 있는 발산역 3ㆍ4번 출구 일대는 ‘발달상권’이다. 유동인구만 따져도 1㏊당 8만명에 이른다. 아직 1만명대 유동인구도 기록하지 못한 마곡역 주변과는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로 걸어보니 발산역을 끼고 있는 마곡지구 서쪽 끝에 시선이 쏠렸다. 신축건물에 불 켜진 간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의료시설이나 필라테스 등 건강 관리시설이었다. 공실이 가득했던 마곡역 일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발산역에서 길을 건넜다. 강서로를 넘은 발산역 1번 출구부터는 마곡지구다. 차로가 일직선으로 뻗은 공항대로를 따라 마곡역으로 걷는 대신 대로변에서 뒤로 물러나 있는 힐스테이트 에코 오피스텔로 걸음을 옮겼다. 야외 공지가 있어 대로변에서 건물 뒤쪽 보행로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발산역과 마곡역 사이 공항대로와 접한 상가 1층은 대부분이 비어 있었지만 뒷길은 달랐다. 보행로를 따라 걸으니 ‘신흥 상권’의 활기가 느껴졌다. 1~2층에 만들어진 상가 자리에는 빈 곳이 거의 없었다.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저녁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발산역 일대는 기존에 있던 등촌동 상권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곡지구의 마곡역 일대는 왜 발산역의 활기를 잇지 못했을까. 숨통을 막은 건 마곡이 가진 이름값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 안 마지막 신도시’라는 별칭이 붙은 마곡지구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이런 기대감은 분양가를 끌어올렸다. 

일례로 마곡지구 상가의 평균 분양가는 3.3㎡당 5745만원이다. 강북의 평균 상가 매매가격이 3.3㎡당 4000만원을 넘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척 비싼값이다. 통계를 보면 강남에 비견될 만한 가격 수준이기도 하다. 이는 고스란히 임대료에 반영됐다. 상가 3.3㎡당 1층 상가의 임대료는 25만원에서 30만원에 육박한다. 99㎡(약 30평대) 상가라고 가정하면 900만원이다. 

서울 다른 상권과 비교해도 낮지 않은 임대료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역을 질기게 앓고 있는 이태원1동의 1층 임대료(2019년 3분기 기준)도 3.3㎡당 평균 21만원 수준이다. 현지 공인중개사는 “마곡역 일대를 향한 기대감은 여전히 높다”면서 “공실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임대료가 저렴할 것으로 기대하고 연락해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곡이 조만간 ‘공실 지옥’이란 꼬리표를 떼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곡의 임대료는 여전히 높았고, 수요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상가 1층은 비어있지만 임대료는 3.3㎡당 25만원대에서 움직일 줄을 모르고 있다. 기대감이 빠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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