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MZ세대와 닮은
미국의 밀레니얼·Z세대

미국에서도 매해 다양한 유행어가 나온다. 단어의 원래 의미와 아예 다르게 쓰거나(Tea· Basic), 국내에서도 쓰는 말(flex)이 유행하기도 한다. 이들의 유행어를 잘 들여다보면 미국의 밀레니얼·Z세대와 국내 MZ세대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FIRE족’ ‘gucci’ ‘JOMO’ 등이 그 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 신조어와 다를 바 없는 미국의 신조어를 분석해봤다. 

미국 유행어를 보면 국내와 미국의 MZ세대가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유행어를 보면 국내와 미국의 MZ세대가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조어나 유행어에 민감한 건 국내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최근 수많은 유행어와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Tea(흥미로운 가십)’ ‘Basic(대세·몰취향)’처럼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쓰거나, ‘flex’처럼 국내서도 유행한 말도 있다. 흥미로운 건 유행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과 국내 밀레니얼·Z세대(MZ세대)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부모처럼은…” FIRE족 = 파이어(FIRE)족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로, 이른 은퇴가 목표인 이들을 지칭한다. 1992년 등장한 말이지만 최근 미국 밀레니얼세대 중 고학력·고소득자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이들은 벌어들이는 돈으로 더 나은 환경에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자린고비가 되길 자처한다. 

파이어족은 낡고 좁은 집에 살며 월세를 아끼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떨이음식을 사먹으면서 소득의 50~70%가량을 저축한다. 그렇게 모은 돈이 연소득의 약 30배가 되면 퇴직해 투자수익금이나 예금이자로 생활한다. 파이어족은 종류도 다양하다.

린 파이어(Lean FIRE·극단적으로 제한된 소비만 하는 이들), 팻 파이어(Fat FIRE·생활 수준을 유지하면서 은퇴를 준비하는 이들), 사이드 파이어(Side FIRE·부수입으로 은퇴를 준비하는 이들), 바리스타 파이어(Baris ta FIRE·퇴직 후에도 은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이들) 등이 있다.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이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이들은 부모 세대가 2008년 이후 장기화한 금융위기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본 세대다. 불안정한 경제 상황 탓에 직장을 얼마나 오래 다닐지 알 수 없게 되자, 빨리 노후자금을 모아 은퇴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2016년 트렌드였던 욜로족(YOLO·You Only Live Once)과는 정반대다. 

미국 밀레니얼세대와 국내 밀레니얼세대의 성장 배경엔 유사한 점이 있다. 국내 밀레니얼세대도 1997년 IMF 이후 부모 세대의 파산과 경제적 어려움을 보면서 자랐다. 둘다 역대 가장 가난한 세대로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밀레니얼세대 중 부모보다 돈을 잘 버는 이들은 44%로, 역사상 가장 낮다(2019 State of the Union: Millennial Dil emma). 국내 밀레니얼세대는 가장 빚이 많은 세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30대가 된 밀레니얼세대의 부채 비율은 무려 54.7%에 달했다(2017 가계금융·복지조사).

국내 밀레니얼세대가 재테크나 부수입에 관심이 많은 것도 경기침체의 영향이다. 보험관리 플랫폼 굿리치가 2030세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재테크에 수입의 31% 이상을 쏟아붓는 이들은 43.2%에 달했다. 2014년 설문조사에서 재테크를 하지 않는 이들이 33.4%(트렌드모니터)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That’s gucci!” = 2018~2019년 미국 MZ세대가 썼던 신조어 중 독특한 말이 있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인 구찌(GUCCI)가 유행어로 쓰인 거다. 구찌는 ‘훌륭하다’ ‘완벽하다’ ‘멋지다’ 등을 의미하는 형용사로 활용됐다.

예컨대 “That’s  gucci!”라는 말은 “정말 멋지다!”와 같은 뜻이다. 통상 ‘Good(좋은)’이 들어갈 자리를 구찌가 대체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It’s all gucci(모든 것이 완벽하다)” “You’re gucci(넌 최고야)!”처럼 쓸 수 있다. 

미국 MZ세대도 명품을 찾고 1인 라이프를 즐긴다. [사진=뉴시스]
미국 MZ세대도 명품을 찾고 1인 라이프를 즐긴다. [사진=뉴시스]

어떻게 100살을 앞둔 브랜드가 그보다 한참 어린 이들의 유행어로 자리매김했을까. 그 배경에는 명품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한 밀레니얼세대와, 환골탈태 후 고루한 이미지를 깨는 데 성공한 구찌가 있다. 

구찌는 2015년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한 후 이전까지의 디자인과는 다른 제품을 출시했다. 중후하고 단조로운 디자인 대신 화려한 색감에 큼직한 장식을 달고 나왔다. 변신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구찌를 ‘엄마 가방’ 정도로 인식하던 밀레니얼세대는 구찌가 내는 제품마다 열광했다.   

국내 백화점 명품관에도 구찌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쉽게 볼 수 있다. 명품시장에서 MZ세대는 핵심 소비자로 떠올랐다. 글로벌 컨설팅 전문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18년 글로벌 명품시장에서 MZ세대 소비자의 비율은 47.0%였다.

국내 MZ세대의 명품 사랑도 각별하다. 국내 MZ세대의 76.6%가 ‘자기만족을 위해 명품을 구매한다’고 답했다. 명품 구매를 과소비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33.6%에 그쳤다. 이들이 ‘명품’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브랜드는 ‘구찌(41.2%)’다(대학내일 20대 연구소). 

다만 명품에 열광한다고 해서 국내 MZ세대와 미국의 MZ세대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과) 교수는 “미국과 한국의 나라 간 환경의 차이가 있는 만큼 두 세대의 명품 소비는 결이 다르다”며 “양극화 현상이 심해 평생 벌어도 집을 사기 힘든 한국과 패권을 가진 미국의 경제 상황은 비슷해 보여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혼자 노는 게 좋은 JOMO = 1인 가구의 증가는 아예 새로운 경제 분야를 만들어 냈다. ‘1코노미’ ‘혼밥’ ‘알봉족’ ‘싱글슈머’ 등 파생한 용어도 수두룩하다. 이들을 위한 특화상품도 어느 분야에나 있다. 1인용 숙박·여행 패키지 상품이나 식당·영화관의 싱글석이 그 예다. 1인 가구는 자신을 위한 가치 소비를 즐긴다. 뿐만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현상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보를 놓치거나 모임에서 제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FO MO(Fear of Missing Out)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국내로 치면 ‘인싸(인사이더)’와 비슷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FOMO의 반대 개념인 ‘JOMO’가 뜬다. Joy of Missing Out의 약자인 JOMO는 다른 사람과 얽히지 않는 것을 즐기는 태도다. 일명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다. 이들은 여유로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 

JOMO가 뜨는 배경에는 가치관의 변화도 있지만, 1인 가구의 증가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1인 가구 수는 3648만개로, 미국 전체 가구(1억2858만개)의 28.4%에 달한다(2019년 11월 기준, 스태티스타). 한국에 비하면 적은 편(국내 1인 가구 비중 29.8%)이지만, 미국 내 1인 가구의 증가 속도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 비해 늦어진 결혼 연령, 수명 연장, 소득 수준의 상승이 미국 내 1인 가구가 늘어난 원인으로, 한국과 흡사하다. JOMO가 결코 낯설지 않은 이유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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