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연임과 금융위 제재통지

금감원이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에게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를 우리금융에 통지하면 효력이 발생한다. ‘중징계 처분’을 받고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의 전례前例를 살펴보면, 연임을 기대하는 손 회장의 꿈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금융위의 통지가 3월 주주총회 이후로 미뤄진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손태승 회장의 연임과 중징계의 상관관계를 짚어봤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DLF 사태가 해결되기도 전에 차기 우리금융 회장 단독후보에 이름을 올렸다.[사진=뉴시스] 

“조직의 안정을 위한 조기 선임이다.” “금융당국의 제재를 앞둔 상황에서 나온 선급한 결정이다.” 대규모 손실로 금융소비자가 손해를 입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금융그룹은 손태승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독일·미국·영국 금리 연동 파생결합상품이 문제를 일으킨 건 지난해 8월이다.

금리 하락의 영향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고, 피해를 입은 고객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DLF의 실상을 파악하겠다면서 현장검사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10월 1일) 발표된 ‘DLF 중간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영업성과를 올리는 데 혈안이 된 창구에선 불완전판매가 버젓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손실 가능성은 사라졌고, 안전성만 강조됐다. 설명의무를 위반하거나 투자자성향을 조작하는 일도 숱했다. 리스크 관리는 소홀했고, 내부통제도 이뤄지지 않았다. 금감원이 지난해 12월 26일 손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를 사전 통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우리금융의 그다음 행보였다. 우리금융은 금감원의 ‘제재(문책 경고)’가 사전통보된 지 나흘 후인 12월 30일 임원추천위원회를 열고 손 회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추천했다. 손 회장에게 연임 기회를 준 거였다. 일반적으로 임추위는 임기 만료 한두달 전에 열린다. 손 회장의 임기가 올 3월 말이라는 걸 감안하면 1월 중순이나 2월 임추위가 열리는 게 통상의 절차였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우리금융 임추위의 이상한 선택

이뿐만이 아니다. 임추위는 이보다 앞선 2019년 11월 26일과 12월 11일 회장 추천 일정과 선임 방법을 논의했다. 약 일주일 후인 12월 19일과 24일 1~2차 회의를 통해 손 회장을 포함한 후보군을 선정했다. 12월 5일 DLF 분쟁조정위원회의 결과가 나오고, 12월 26일 금감원이 제재 관련 사전통보를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금융은 피해자의 배상비율과 제재 수준이 결정되기 전부터 손 회장의 연임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DLF 사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정”이라며 “금융당국의 제재 수준이 결정된 이후 경영구도를 결정하는 게 일반적인 절차”라고 꼬집었다. 그는 “수천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DLF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손 회장을 후보군에 포함한 뒤 단독후보로 추천한 것을 금융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금융당국과 징계 수위에 대한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와도 할 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금감원의 중징계를 받은 손 회장의 다음 행보에 맞춰지고 있다. 손 회장처럼 중징계 통보를 받은 금융사 CEO 대부분은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2009년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은 2005~2006년 우리은행 재임 시절 논란이 일었던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부도스와프(CDS) 투자손실 사태로 3개월의 직무정지 처분을 받고, 재직 중이던 KB금융지주 회장에서 사임했다. 2014년 이건호 KB국민은행장도 주전산 교체 논란·각종 비리 사태로 금융당국의 중징계 처분을 받은 직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금융위가 금감원에 (임원 및 기관) 제재 결과를 언제 통지하느냐다. [※ 참고: 금감원이 손 회장(임원)에게 내린 문책 경고는 금감원장의 결재로 확정된다. 하지만 기관 제재는 금융위의 의결을 거쳐야 확정된다. 일반적으로 금감원은 임원 처분 결과와 금융위가 의결한 기관 처분 결과를 해당 은행 측에 동시에 통보하는데, 징계 효력은 그때 발생한다.]

3월 주총에 숨겨진 변수

만약 제재 결과가 우리금융의 3월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 은행 측에 전달되면 손 회장의 연임은 좌절된다. ‘문책 경고’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받으면 향후 3년 간 금융권에 취업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3월 주총에서 손 회장의 연임이 확정된 후 제재 결과가 통지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연임 확정 이후엔 문책 경고를 받더라도 손 회장의 의지만 있으면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연임 여부가 손 회장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손 회장이 ‘중징계 사전통보’를 받은 상태에서 차기 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3월 주총이 ‘변곡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에선 손 회장의 소송 가능성을 제기한다. 손 회장이 금감원의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정소송과 함께 제재 효력 집행정지를 신청하면 주총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금융당국과 전면전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는 금융회사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금융당국의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많지 않다. 최근 금융당국의 중징계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2014년 임영록 전 KB금융그룹 회장(3개월 직무정지)이 유일하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손 회장 관련 제재 결과 통지가 3월까지 미뤄진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면서 “시장에서 금융위의 제재 타이밍을 예민하게 체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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