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정비법상 농어촌민박 괜찮나
소방규제 면제해주는 ‘법’의 심각성

펜션에서 또 화재사고가 터졌다. 2018년에도 비슷한 사고가 펜션에서 있었다. 미디어든 전문가든 뻔한 분석만 내놓는다.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맞다. 무등록업체가 버젓이 손님을 받아왔으니 ‘인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논의를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펜션 화재사고가 터지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건축법상 다가구주택, 농어촌정비법상 농어촌민박에 해당하는 펜션은 소방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펜션 사고가 반복되는 진짜 이유를 취재했다. 

잊을만 하면 어이없는 화재사고가 되풀이된다. 사진은 강원도 동해시 토바펜션 화재 현장.[사진=연합뉴스]
잊을만 하면 어이없는 화재사고가 되풀이된다. 사진은 강원도 동해시 토바펜션 화재 현장.[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25일,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에 위치한 토바펜션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5명이 죽고, 2명이 중상(전신화상), 2명이 경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현재로선 건물주가 객실 내 조리시설을 인덕션으로 교체하면서 가스배관 마감시공을 부실하게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겪는 수많은 사고들이 그렇듯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였던 셈이다. 실제로 해당 펜션은 숙박업 신고조차 하지 않은 무등록 업소였다. 그럼에도 동해시는 이 펜션을 추천 숙박업소로 소개했다. 무등록 펜션의 불법영업을 용인한 것은 물론 홍보까지 해준 꼴이다. “신고를 하지 않은 펜션이어서 지자체의 각종 단속을 빠져나갔다”는 동해시의 해명이 궁색한 이유다. 

아울러 관할관청의 ‘소극행정’도 사고를 키웠다. 2019년 11월 화재안전특별조사를 진행하던 이 펜션의 관할 소방서는 ‘건물주가 거부한다’는 이유로 펜션 내부를 점검하지 못했다. 이후 관할 소방서는 이 펜션이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해시에 알렸지만, 정작 시 측은 별다른 행정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게 있다. 펜션 사고가 유독 많은 이유가 이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적 신고 여부를 떠나 태생적 위험을 안고 있는 펜션이 수없이 많다”고 털어놨다. 무슨 말일까.

해당 펜션의 법적 성격부터 검토해보자. 이 펜션은 건축법상 ‘다가구주택’이다. 그래서 소방 관련 규제를 받지 않는다. 펜션 사장이 법적 신고를 마쳤더라도 ‘농어촌민박’으로 규정됐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소방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참고 : 농어촌정비법상 ‘농어촌민박’은 건축법상 단독주택(동법 시행령에 따른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을 이용해 투숙객에게 숙박ㆍ취사시설ㆍ조식 등을 제공하는 곳이다. 여건을 갖추고 신고만 하면 영업이 가능하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의 농어촌민박은 2만6578개다.]

법적 신고를 했든 그렇지 않든, 관할관청이 행정을 적극적으로 했든 그렇지 않든 건축법상 다가구주택, 농어촌정비법상 농어촌민박 형태의 펜션은 화재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전에 사고가 터진 펜션의 상당수도 다가구주택을 이용한 농어촌민박이었다. 2018년 12월 18일로 시계추를 돌려 보자. 당시 수능시험을 갓 치른 학생(고3) 10명이 강원도 강릉시 아라레이크펜션에 묵었다가 3명이 죽고, 7명이 의식불명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보일러 배기관 연통 연결 불량에 의한 일산화탄소 가스 중독이었다. 펜션을 건축할 당시 허술하게 설치된 보일러 배기관 연통 연결 부위가 시간이 지나면서 빠졌고, 그로 인해 가스가 새어나온 거였다. 사고 후 “1만원짜리 가스경보기만 설치돼 있었어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사고만 나면 호들갑을 떠는 정치권은 농어촌민박에 가스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들을 줄줄이 내놨다. 

국회 소관심의위원회는 농어촌정비법ㆍ공중위생관리법 등 시행규칙 일부만 개정해도 가스경보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고, 2019년 3월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가스경보기 설치 의무화는 마무리됐다. 강릉시는 비슷한 사고를 막겠다면서 ‘강릉시 펜션사고 백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소방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농어촌민박의 문제는 그렇게 논의 대상에서 빠졌다. 

2019년 7월 한국소비자원이 내놓은 ‘펜션형 농어촌민박 안전실태조사’ 보고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잘 담고 있었다. 이 보고서가 짚은 문제점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농어촌민박은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230㎡(약 70평) 미만의 주택을 활용하는 숙박업소다. 하지만 농어촌민박은 규모나 시설 면에서 일반 숙박업소와 비슷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농어촌민박은 일반 숙박업소와 비교해 소방안전설비가 훨씬 취약했다. 소화기 등 최소한의 소방설비 설치만을 의무화하고 있어서다. 따라서 일정규모 이상의 농어촌민박은 숙박업 수준으로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복합건축물 형태의 농어촌민박은 특정소방대상물로 지정해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가 외면하는 문제의 핵심

소비자원은 효율적인 대안도 내놨다. “농어촌민박의 시설 전반이 일반 숙박업소에 비해 현저히 안전하지 않다면서 소비자들이 이를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숙박시설에 ‘농어촌민박’임을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

그럼 이제 정부는 무얼 해야 할까. 다가구주택을 규정한 건축법과 농어촌민박을 통제하는 농어촌정비법만 손보면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소방안전 문제는 법 규정을 개정한다고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무부처를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소방안전 법제가 필요하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소방방재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숙박의 행태는 비슷해지고 있는 반면, 숙박시설 형태는 다양하고, 각 숙박시설마다 주무부처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인ㆍ허가와 관리ㆍ감독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선 안전이 부수업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고, 안전 관련 전문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아울러 주무부서의 밥그릇 싸움만 키울 수도 있다, 이참에 건축법과 소방안전법을 통합해 관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안전을 담보하고 싶다면 법체계의 틀까지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일침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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