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기 기본요금 부과 논란
“기울어진 운동장”
vs “밥그릇 싸움”

한국전력이 민간 충전사업자들과 불공정한 충전사업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한국전력이 민간 충전사업자들과 불공정한 충전사업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한국전력이 전기차 충전기에 ‘기본요금’을 매기기로 했다. 전기차 충전용 특례요금제도가 올 6월 일몰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민간 충전사업자들이 격하게 반발한다. 충전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기본요금을 내야 하는데, 그게 타당하냐는 거다. 한전 측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리도 기본요금을 내는데 뭐가 문제냐”는 거다. 갈등이 격화하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이번에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전기차 충전기 기본요금 부과 논란을 취재했다. 

오는 6월이면 전기차 충전용 전력요금 특례할인이 완전히 끝난다. 한국전력이 2019년 12월말 일몰 예정이던 특례할인제도를 더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전은 2016년 3월부터 정부의 전기차 보급 확산 정책에 맞춰 전기차 사용자와 충전서비스 제공사업자에게 기본요금을 면제하고, 충전요금은 50% 할인해줬다. 이런 할인정책이 종료하긴 했지만 ▲충전기 전력사용량이 1㎾ 미만일 땐 50% ▲1㎾ 이상일 땐 100% 부과하는 방법으로 6개월간 유예기간을 뒀다. 

그럼에도 민간 충전사업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할인제도를 폐지하면 사업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게 이유다. [※참고: 여기서 민간사업자들은 환경부로부터 충전기 설치 보조금을 지원받아 충전인프라 확대 정책에 참여해 완속충전기를 집중 설치한 중소사업자들로 한정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별히’ 할인해주던 걸 원래대로 되돌리겠다는 건데 뭐가 문제냐는 거다. 영업이익 감소에 시달리는 한전에 ‘명분’이 있다는 옹호론도 있다. 그 때문인지 ‘민간 충전사업자들이 밥그릇 지키기 위해 생떼를 쓰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할인제도 폐지 문제는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논란의 핵심은 ‘기본요금’에 있다. 이번 할인제도 폐지로 모든 전기차 충전기에는 ‘기본요금’이 부과된다. 충전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은 기기에도 ‘요금’이 발생하는 셈이다.

기본요금은 1기당(7㎾ 완속충전기 기준) 1만6000원 수준이다. [※참고 : 이번 논의에서 이동식 충전기와 급속 충전기는 제외한다. 이동식 충전기는 대부분 사용자에게 요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민간 충전사업자들과 별 상관이 없다. 급속충전기 역시 충전요금이 비싸도 (충전)시간을 단축하길 원하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문제는 고정형 완속충전기에 한정한다.]

물론 일반 가정도 사용했든 그렇지 않든 기본 전기요금을 낸다. 하지만 이를 전기차 충전기에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전기차 충전사업’의 구조부터 살펴보자. 

충전사업자는 환경부로부터 충전기 설치 보조금을 지급받아 설치하고, 이후 충전기를 직접 관리ㆍ운영한다. 충전요금은 충전기 종류에 따라 소비자가 한전에 직접 내기도 하고, 민간 충전사업자가 우선 낸 후 소비자에게 수수료를 덧붙여 부과하기도 한다. 민간 충전사업자들이 전기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한전과 소비자 사이에서 중간판매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본요금에 숨겨진 이해득실

문제는 이런 일을 하는 게 민간 충전사업자뿐만이 아니란 점이다. 공교롭게도 한전 스스로 전기차 충전사업을 하고 있다. 충전사업자와 한전이 경쟁관계인 셈이다. 민간 충전사업자와 한전이 운영하는 완속충전기는 각각 8624개, 5263개다. 대부분 B2C 용도로, 사업 분야가 겹친다.

이런 상황에서 전혀 쓰지 않은 충전기에 ‘기본요금’이 부과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민간 충전사업자들은 수익이 없어도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는 한전 역시 마찬가지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전기요금 부과 주체가 한전이고, 수금 주체도 한전이기 때문이다. 기본요금을 사실상 면제 받는 거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한전 관계자도 “기본요금이 부과되면 민간 충전사업자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지불 비용은 회계상 다시 한전의 수익으로 잡힌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할인제도 폐지의 문제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불공정경쟁’에 있다는 얘기다. 기본요금 부과를 두고 민간 충전사업자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전 기본요금 체계에 다르면 계량기 1대에 3대의 충저기가 맞물려 있을 경우 충전기를 1대만 사용해도 3대의 기본요금이 부과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한전 기본요금 체계에 다르면 계량기 1대에 3대의 충저기가 맞물려 있을 경우 충전기를 1대만 사용해도 3대의 기본요금이 부과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민간 충전사업자 A씨는 “별도의 도매단가도 없는 시장에서 전기를 독점한 한전과 벌거벗고 싸우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면서 “우리는 요금폭탄을 맞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다른 민간 충전사업자 B씨는 “사업을 시작할 때 민간 충전사업자는 서류 등 준비할 게 숱하게 많았지만 한전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한전은 누워서 사업을 시작했고, 시장에서도 우월적 지위를 확보했다”고 꼬집었다. 

환경부 “담당자 바뀌어서 몰라”

그렇다면 충전인프라 보급정책을 주도한 환경부는 이 문제를 아예 몰랐을까. 환경부 담당자는 엉뚱한 소리만 늘어놨다. “담당자가 바뀌어서 불공정한 경쟁을 예견했는지, 필요한 조치들을 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환경부도 원칙적으로는 기본요금 부과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한전의 결정을 되돌릴 방법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환경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쏘아붙였다. “전기차 시장이 활성화하려면 내연기관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민간 충전사업자들과 한전이 충전사업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 민간 충전사업자들이 버틸 수 있겠는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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