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의 진실

지난해 4월 대형마트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사라진 비닐봉투의 자리를 채운 건 장바구니다. 장보러갈 때 장바구니를 습관처럼 챙기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그렇다고 장바구니가 ‘친환경’으로 직결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장바구니를 수차례 사용하지 않으면 환경보호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친환경 장바구니의 민낯을 취재했다. 

일회용 비닐봉투 규제 이후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늘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사진=뉴시스]
일회용 비닐봉투 규제 이후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늘었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사진=뉴시스]

# 주부 한보라(34)씨는 마트에 장을 보러갈 때 장바구니를 꼭 챙긴다. 지난해 4월 대형마트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전면 금지된 후부터다. 한씨는 “처음엔 장바구니를 챙기는 게 번거로웠지만 이제 습관이 됐다”면서 “환경도 생각하고 봉투값도 절약할 수 있으니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게 일석이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직장인 김재원(30)씨는 평소에도 가방에 장바구니를 챙겨 다니려고 노력한다. 퇴근 후에 짬이 날 때마다 장을 보는 편이기 때문이다. 장바구니를 챙겨오지 않은 날엔 꼭 필요한 것만 사서 손으로 들고 갈 때가 많다. 김씨는 “장바구니를 항상 가지고 다니려고 하는 편이다”면서 “부피도 작고, 가벼워 가지고 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구성도 좋아 사용할 때 편리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장바구니를 통해 환경문제 해결에 동참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가 환경 이슈 관련 의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환경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장바구니를 상시 구비하고 있다”는 응답률은 각각 78.8%(복수응답), 55.1%에 달했다. 

장바구니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각 대형마트에선 장바구니 판매량도 증가했다. 롯데마트에선 1월 1일 이후 장바구니가 하루 평균 9000여개씩(1월 29일 기준) 판매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9월 일평균 판매량 2700여개, 11월 일평균 판매량 4800여개보다 2~3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이마트에서도 1월 1일~13일 사이 장바구니(56L)가 6만여개 판매됐다.


대여→반납→소각, 악순환 

장바구니가 필수품으로 자리 잡자,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거나 선물로 증정하는 업체도 많아졌다. 예컨대 지난해 10월 롯데주류는 ‘클라우드 장바구니 기획팩’을 선보였다. 파리바게뜨(SPC그룹)은 창립 33주년 기념으로 ‘에코백’을 소비자에게 증정했다. 11월 열린 코리아세일페스타에서도 일정 금액 이상 구매 고객에게 장바구니를 제공했다. 

최근엔 장바구니 대여 서비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17L 장바구니를 보증금 500원에, 35L·56L 장바구니를 3000원에 대여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43L 장바구니를 3000원에, 57L 장바구니를 4000원에 대여 중이다. 고객이 매장에 장바구니를 되가져올 경우 보증금 전액을 환불해준다. 

그렇다면 장바구니는 정말 친환경적일까. 그렇지 않다. 장바구니는 꾸준히 사용해야 친환경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영국 환경청(2011년)은 “각 제품 생산시 발생하는 탄소의 양을 고려하면, 에코백(면직)은 131번, 폴리프로필렌(PP)백은 11번, 종이백은 3번 이상 재사용해야 비닐봉투 대체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덴마크 환경식품부 역시 일회용 비닐봉투보다 장바구니가 더 친환경적이려면 수천~수만번씩 재사용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2018년)를 발표한 바 있다. 면 재질의 경우 7000번, 유기농면 재질의 경우 2만번 이상 재사용해야 대체 효과가 있다는 거다. 

‘대여’ 보다 중요한 ‘관리’

소비자가 일주일에 2번씩 장을 본다고 가정하고, 매번 동일한 장바구니를 사용한다고 해도 1년에 90여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하나의 장바구니(면직 에코백 기준)를 최소 1년 이상 사용해야 환경보호 효과가 있는 셈이다. 

더구나 업체들이 선물하거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장바구니의 재질은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플라스틱이나 부직포인 경우가 많다. 김현경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장바구니를 재사용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구매해서 사용하게 되면 결국 일회용 비닐봉투를 더 비싼 일회용품으로 대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바구니 사용으로 일회용 비닐봉투 대체 효과를 보려면, 꾸준히 재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사진=뉴시스]
장바구니 사용으로 일회용 비닐봉투 대체 효과를 보려면, 꾸준히 재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사진=뉴시스]

그렇다고 장바구니 대여서비스가 실효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회수율이 높지 않는데다, 대여한 장바구니를 재사용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장바구니 회수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데다, 고객이 되가져온 장바구니가 훼손된 경우가 많아 사실상 재사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롯데마트가 장바구니 대여 서비스를 중단하고 판매만 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국장은 “대형마트 업체들이 수거한 장바구니 대부분을 소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장바구니 대여 서비스가 본래의 취지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고 말했다. 

김현경 활동가는 이렇게 꼬집었다. “대형마트에서 장바구니를 무한정 대여해주고, 제대로 반납 받지 않는다면 결국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계속 생산해서 판매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각 마트별로 대여 수량을 제한하거나 대여해간 고객이 장바구니를 반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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