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쪽방촌 잔혹사 

볕은 들다 말다 했다. 때만 되면 영등포 쪽방촌을 정비하겠다는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현실적으로 바뀐 건 없었다. 정부와 민간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공공임대주택으로 주민을 이주시키거나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때론 성공했지만 결과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2020년 정부가 ‘영등포 쪽방촌’의 정비계획을 내놨다. 이번엔 정말 볕이 들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영등포 쪽방촌에 숨은 이야기를 취재했다. 

정부가 영등포 낙후지역을 공공임대주택 방식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사진=천막사진관]
정부가 영등포 낙후지역을 공공임대주택 방식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사진=천막사진관]

1996년 경부선 철도를 넘어가는 영등포역 고가차도가 개통됐다. 총 길이는 1060 m로 1㎞에 이른다. 이 고가차도의 목적은 문래동과 영등포동 간 교통 체증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리 밑에 둥지를 틀고 있었던 무허가 청과상과 야채상이 정리됐다. 무허가주택(쪽방)의 철거는 미뤄졌지만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또 24년, 이 쪽방들을 개발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곳의 개발플랜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제법 구체적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영등포 쪽방촌엔 과연 ‘볕’이 들 것인가.

시계추를 이곳에 쪽방촌이 생기기 시작한 1970년대로 돌려보자. 강남 개발이 시작되기 전인 1970년대, 영등포는 남서울의 중심지였다. 경제 발전이 한창 이뤄지고 있던 시기, 기차역인 영등포역 주변에는 유흥가와 상가가 가득했다. 사람이 모이니 일용직 일자리도 많았다. 거처를 구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위해 상경上京한 사람들이나 유흥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영등포역 주변으로 모였다.

사람들이 몰린 역 주변의 주거시설 상태는 신통치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정하고 있는 최저 주거 기준 면적은 14㎡(약 4평)이지만 하나의 방을 쪼개서 임대하는 쪽방은 이보다도 더 작다(6.6㎡ 이하). 차츰 경제 규모가 커지고 다른 지역의 불량 주택들이 정비되면서 영등포역 일대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러 차례 나왔다.

정부에서도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주거 개선을 위한 시도가 여러번 있었다. 주거 복지 상담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주민 이주를 돕거나, 일자리를 구해 경제적 자립을 돕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450만~500만원에 이르는 공공임대주택의 보증금은 기초생활수급자 비중이 높은 주민들에게 큰돈이었다. 고령자나 건강 문제로 일자리가 있어도 일을 하기 어려운 주민들도 있었다.

경제적 문제만 있던 것도 아니다. 다른 동네로 옮겨가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빈곤한 동네에서 온 사람에게 가해지는 곱지 않은 시선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여태 만들었던 이웃 관계의 단절을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떤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정책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던 결과였다.

다른 방향이 모색됐다. 개별적으로 주민들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허가 주택의 시설을 향상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2012년 영등포 쪽방 리모델링 사업이 시작됐다.

“사람은 집만으로 살 수 없다”

1차 시작은 95개(2012년ㆍ전체 쪽방 541개)였다. 가장 큰 문제는 주민 생활의 안정이었다.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기존 거주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도 안되고, 공사를 마친 뒤에도 임대료가 오르는 것을 막아야 했다.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 공간이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일부가 노면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어 이 자리에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임시 거처인 컨테이너가 설치됐다. 낡은 바닥 타일을 교체하거나 난방 설비를 고치고, 위험한 시설을 수리했다.

2015년까지 441개의 쪽방이 리모델링됐다.집주인들로부터 사업 이후 5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서약도 받아냈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기약한 5년이 지나면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2020년이 왔고, 임대료 동결조치가 끝났다.

5년 임대료 동결조치를 연장하지 못한 것처럼 쪽방촌 주거 개선 사업은 2014~2015년을 기점으로 명맥이 끊겼다. 원인은 ‘주민 반대’에 있었다. 영등포동ㆍ문래동 일대 주민들은 노숙인이 거주하는 시설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여기저기 붙일 정도로 크게 반발했다. 

주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관官’이 적극적이지 않으니, 쪽방촌 거주민을 완전히 이주시켜야 하는 민간 주도의 ‘도시환경정비사업’도 탄력을 받지 못했다. [※ 참고: 2012년 리모델링 사업이 시작될 당시 서울시가 공개한 회의 결과 보고서에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 건립을 영등포구가 반대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구청이 리모델링 초기부터 주민의 눈치를 봤다는 뜻이다.] 

이렇게 영등포 쪽방촌의 주거개선 사업은 흐지부지됐다. 쪽방촌 주민의 자립을 돕거나 공공임대주택(보증금 500만원ㆍ임대료 월 10만원)으로 이전시키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개별사업으론 역부족이었다. 월 10만원의 임대료를 내는 것조차 어려운 쪽방촌 주민들이 많다는 점도 문제였다. 

풀어야 할 숙제만 산처럼 쌓여가던 지난 1월 20일, 서울시가 영등포 쪽방촌 관련 방안을 발표했다. 임시거처와 임대료 해결책이 모두 들어있는 이 방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전면 철거 대신 부분 철거방식을 택한다. 일부를 철거하고 남은 건물은 리모델링해 임시거처로 사용한다. 그다음 철거한 땅에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완전히 이주를 시킨다. 보증금은 161만원, 월 임대료는 2만원으로 잡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의 다른 쪽방촌 4곳도 영등포와 같은 모델로 사업이 시행되길 희망한다”며 “이번 영등포 쪽방촌 정비방안을 시작으로 다른 쪽방촌과 준주거지역까지 햇볕이 스며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사업으로 441개 쪽방이 개선됐지만 임대료 상승도 피할 수 없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리모델링 사업으로 441개 쪽방이 개선됐지만 임대료 상승도 피할 수 없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하지만 장애물이 숱하다. 쪽방촌 주민들이 거주할 공공임대주택의 보증금과 임대료를 기존보다 낮게 설정했지만 161만원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이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360여명이 입주한다고 가정할 경우, 필요한 금액은 5억8000만원대다. 저리 융자 등 지원책이 없다면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대부분 공공주택사업의 발목을 잡는 복잡한 토지소유문제도 난제다. 사업지에 해당하는 140여개 토지 필지의 소유 현황을 확인해보니, 25명이 지분을 공동소유하고 있거나 외국인 등 9명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도 있었다. 특히 25명이 지분을 공유한 토지의 마지막 지분을 취득한 2명은 2018년 8월 소유권을 얻었다. 부동산 투자처로 점찍힌 곳일 수 있다는 건데, 이는 토지수용 과정에서 진통이 잇따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번 영등포 쪽방촌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주민 100%가 재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얻는다. 달성은 물론 목표로 삼아본 적 없는 비율이다. 그만큼 혁신적인 구상이란 얘기다. 하지만 남은 과정은 어려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튼튼한 대비책이 없다면 또 공염불에 그친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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