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관습의 흔적

➊백남준, 로봇(라디오 맨, 요셉 보이스), 혼합매체, 194×75×55㎝, 1987년 ➋정상화, 무제, 한지에 목판화, 36×20.5㎝, 1989년  ➌송현숙, 6획, 캔버스에 템페라, 110×100㎝, 2008년

2000년을 맞은 사람들은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설렘과 함께 두려움도 많았다. 미술계도 변화를 꾀했다. 관습을 허물며 다양화를 통해 반경을 확장하고자 했다. 21세기의 출발점에서 20년이 또 흘렀다. ‘학고재 소장품: 21.2세기’는 21세기의 두번째 장을 넘기며 저마다의 내일을 향해 도약하는 예술가들의 세계를 조명한다. 백남준을 비롯한 11인 작가들의 조각ㆍ회화ㆍ영상ㆍ드로잉ㆍ콜라주ㆍ판화 등 26점이 소개된다.

가장 먼저 백남준의 ‘로봇(라디오 맨, 요셉 보이스)’이 관람객을 맞는다. 로봇의 상단 모니터에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년)’이, 하단에는 ‘바이 바이 키플링(1986년)’이 재생된다. 암울한 미래를 예견한 조지 오웰에게 안녕을 건네고, 동서양의 화합을 부정한 러디어드 키플링에게 회답한다. 정상화의 ‘무제 A’는 물감을 뜯어내고 메우는 반복을 통해 구성한 추상회화다. 가득 찬 동시에 비어있는 한국적 여백을 선보인다. 김현식의 작품은 에폭시 레진표면을 촘촘히 긋는 과정을 반복한다. 색과 선이 교차하며 수많은 층계를 이룬다. 

안토니 곰리(영국)의 ‘커패시터’는 동명의 조각을 드로잉한 것이다. 수없이 뻗은 막대의 반경은 신체와 자아의 확장을 뜻한다. 조각가 정현은 침목ㆍ석탄 등 산업폐기물을 활용해 인체를 표현한다. 형태를 추상화하고 물질성을 강조해 상징적 의미를 담는다. 

 

➍김현식, Who Likes K Magenta?,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프레임, 40.5×21.5×7㎝, 2016년 ➎양아치, 20세기를 근근이 포즈를 써 유지, 혼합매체, 108×158㎝, 2011년  ➏이이남, 아사천에 매화꽃이 피었네, 55inch LED TV, 8분 50초, 2013년
➍김현식, Who Likes K Magenta?,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프레임, 40.5×21.5×7㎝, 2016년 ➎양아치, 20세기를 근근이 포즈를 써 유지, 혼합매체, 108×158㎝, 2011년 ➏이이남, 아사천에 매화꽃이 피었네, 55inch LED TV, 8분 50초, 2013년

양아치의 ‘20세기를 근근이 포즈를 써 유지’는 스탠드 마이크에 금박지와 전구를 붙여 만든 오브제다. 이이남의 영상 회화는 고전 이미지 위에 애니메이션을 더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줄리안 오피(영국)의 ‘나의 침실 창문 밖 풍경’은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담은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간결한 실루엣이 돋보인다. 허수영은 변화하는 풍경을 한 화면에 중첩해 그린 연작을 선보인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경화가 겹겹이 쌓여 추상으로 변모한다. 안드레아스 에릭슨(스웨덴)의 작품은 견고한 추상화면이 특징이다. 자연의 색채와 질감을 참조하지만, 실제 풍경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재독在獨 작가 송현숙은 한국의 토속적 이미지를 화면에 담는다. 전통 가옥의 귀퉁이ㆍ장독대 등 소재와 표현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엿보인다. 

전시의 마지막은 백남준의 ‘TV 부처(1974/89)’가 장식한다. 미디어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 진실을 성찰하게 만든다. 학고재 갤러리에서 4월 5일까지 개최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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