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같은 버스, 슈퍼 BRT의 이상과 허상
지하철 같은 버스, 슈퍼 BRT의 이상과 허상
  • 김다린 기자
  • 호수 374
  • 승인 2020.02.12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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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BRT 파란불과 빨간불

버스는 지하철보다 느리다. 반박하기 어려운 명제다. 중앙에 전용차로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승객이 몰려 버스끼리 서로 달라붙다가 적색신호에 걸리기 일쑤다. 정류장 간격이 촘촘하고 버스 숫자가 원체 많으니 전용차로 안에서도 정체가 발생한다. 이렇다보니 내가 원하는 버스가 언제 올지, 그걸 타더라도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지도 들쭉날쭉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이런 버스와 전용차로는 ‘간선급행버스체계(BRT)’라는 테두리에 속해있다. 버스를 타이어 달린 지하철처럼 만들자는 게 BRT 구상인데, 전용차로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다. 거꾸로 말해, 이 수준을 향상하면 진짜 지하철 같은 버스가 다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3기 신도시 교통대책의 일환으로 ‘지하철 같은 버스’가 지목됐다. 기존 국내 BRT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슈퍼 BRT’다.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정해졌고, 시범지역도 선정됐다. 막대한 비용 때문에 탈이 끊이질 않는 고속철, 지하철보다 훨씬 수월하게 개통될 전망이다.

하지만 일부에선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거란 지적도 나온다. 도로 한가운데 전용차로를 내주고, 시설 몇개를 더 짓고는 신도시 교통대책의 면피성 사업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정부가 구상 중인 슈퍼 BRT의 속내를 파헤쳐봤다. 

버스전용차로만 도입한 서울시는 초보적인 수준의 BRT로 평가받는다.[사진=연합뉴스]
버스전용차로만 도입한 서울시는 초보적인 수준의 BRT로 평가받는다.[사진=연합뉴스]

교통망. 신도시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서울에 닿을 수 있느냐다. 애초 신도시를 구축하는 이유도 급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2018년 말에 드러난 정부의 3기 신도시 계획은 교통대책과 함께 발표됐다. 개발 방향은 ‘서울 도심까지 30분 내 출퇴근이 가능한 도시’다.

그럼에도 3기 신도시 교통망 구축플랜은 숱한 의구심을 받고 있다. 광역교통망 구축사업이 늦어지면서 서울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 2기 신도시의 나쁜 선례 때문으로 풀이된다. 어쩌면 당연한 의구심일지 모른다. 지하철ㆍ고속철 등을 뚫는 데는 막대한 시간이 필요해서다. 예산을 둘러싼 갈등을 빚을 공산도 크다.

교통망 구축에 드는 비용을 국가ㆍ지자체ㆍ사업시행자 등이 나눠서 부담해야 하는 탓에 다툼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다. ‘교통 퍼스트’를 외치는 3기 신도시가 정부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흥미로운 운송수단 BRT = 그런데 이번 3기 신도시 교통대책엔 이런 논란들을 비껴갈 흥미로운 운송수단이 포함됐다. 무엇보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을 필요가 없고, 공사비도 저렴해 갈등요소가 적다. 주인공은 바로 ‘간선급행버스체계(BRT)’다. 

쉽게 말해 버스를 ‘도로 위 지하철’로 만들어 막힘없이 다니게 하는 교통 시스템이다. 국내에도 시범사례가 있다. 세종시 BRT는 교차로에서 버스가 정차하지 않고 우선통행할 수 있도록 신호처리를 조작해 운영 중이다.

낯선 시스템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2004년에 도입돼 친숙한 서울시의 ‘버스전용차로’도 바로 BRT의 핵심요소다.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도 버스는 파란색 전용차선 안에선 비교적 자유롭게 도로를 누빌 수 있다. 서울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버스전용차로를 운영 중인 도시는 청라, 부산, 대전 등 24개가 있다.

하지만 BRT가 긍정적인 평가만 받고 있는 건 아니다. “전용차로에서도 정체가 수시로 발생하지 않는가”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서울시의 ‘버스전용차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교차로 신호대기와 승하차 시간 때문에 버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막힘없이 승객이 타고 내리고 다음 역까지 이동하는 지하철의 편의성과 정시성에는 못 미친다. 

신도시 교통지옥 어쩌나

이 때문인지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는 지난 1월 좀 더 촘촘한 ‘슈퍼 BRT 표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새로 구축되는 BRT는 전용주행차로, 정류장 시설, 차량 운영 시스템 등 5개 분야의 16개 세부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이렇게만 하면 진짜 지하철처럼 정류장에서만 정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BRT 앞에 ‘슈퍼(S)’가 붙었다. 

대광위 관계자는 “국민들이 지금껏 누렸던 BRT는 제대로 된 BRT가 아니었다”면서 “글로벌 수준과 견줘도 흡족할 만한 최고급 시스템을 구축해 속도와 정시성을 대폭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쿠리치바와 BRT의 역사 = 정부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선 BRT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 시스템의 역사는 깊다. 브라질의 대도시 쿠리치바가 1974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성공적으로 모델을 안착시킨 게 화제가 됐다. 쿠리치바는 이미 1990년대에 ‘버스전용차로’ ‘급행버스 체계’ ‘원통형 정류장’ ‘정류장 요금 지불 시스템’ 등을 구축해 지하철 같은 버스를 실현했고, 덕분에 고질적인 도시교통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다. 여기에 감명 받은 172개 도시들이 현재 BRT를 운영 중에 있다.

이런 도시들은 버스전용차로를 구축하는 데만 목매지 않았다. ‘수평승하차’ ‘신호체계 개선’ ‘정류장 요금 지불 시스템’ ‘환승시설 설치’ ‘자전거 이용 환경 개선’ ‘차별화된 브랜드 구축’ ‘정류장 추월 차로’ 등을 도시 상황에 맞춰 적절히 배치했다. 모두 승ㆍ하차 시간을 단축하고 버스의 통행속도를 끌어올리는 인프라다.

[※ 참고 : 국제교통개발정책연구원(ITDP)에선 이를 기준으로 BRT의 수준을 평가한다. ‘골드’ ‘실버’ ‘브론즈’ ‘베이직’ 순서인데, 우리가 익히 아는 서울의 경우는 가장 낮은 단계인 ‘베이직’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정부의 슈퍼 BRT 구상은 이를 ‘골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거다.] 

■슈퍼 BRT 기대효과, 하지만… = 이런 좋은 시스템을 접목한 우리 정부의 슈퍼 BRT는 기대효과가 뚜렷하다. ‘급행기준 평균 운행속도 35㎞/h(일반 25㎞/h)’ ‘출발ㆍ도착 일정 2분 이내’ 등이다. 여기에 건설ㆍ운영비가 훨씬 적게 들고 교통약자인 노약자ㆍ장애인ㆍ임산부 등이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고 이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슈퍼 BRT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느냐다. 익명을 요구한 교통전문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고급 BRT가 효율적인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리스크가 없는 게 아니다. 부산에서 운영 중인 BRT는 기존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었고, 대전 BRT는 개통한 뒤 전용차로가 단축되기도 했다. 광주 수완지구에 있던 버스전용차로는 폐지 수순을 밟았다. 구축을 해놓고도 운영의지가 뒤따르지 않으면 시민들로부터 빈축만 사게 될 공산이 크다.”

특히 BRT는 차가 있는 시민들에겐 민감한 이슈다. 정부가 구상 중인 슈퍼 BRT는 더욱 그렇다. 당장 전체 교통흐름이 방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버스전용차로의 경우, 도로 차선 하나를 별도로 차지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 혼잡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교차로에서 BRT 버스에 신호를 먼저 내주는 체계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일반차량의 대기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버스가 도시철도 대체할 수 있나

온갖 진통을 이겨내고 슈퍼 BRT가 계획대로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교통대책의 핵심 목적인 ‘서울 접근성’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서울 노선까지 슈퍼 BRT가 연결돼야 하는데, 이미 도로설비가 빽빽한 서울은 그런 인프라를 설치할 여유가 없어서다. 결국 서울까지 닿기 위해선 ‘신도시에서 BRT 출발→서울 외곽 하차→타 교통 환승→서울 도심 진입’이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청라신도시와 서울시 가양동을 잇는 청라 BRT는 벌써 이런 논란을 겪고 있다. 청라 BRT 버스는 인천 지역에선 줄곧 전용차로를 달리다가 화곡동에 진입함과 동시엔 일반 가변차로로 전환된다. 이때부턴 일반 버스와 다를 바 없이 도심의 극심한 교통정체를 겪는다.

1ㆍ2기 신도시의 불만이 컸던 이유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민이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지옥의 출근길’을 다녀야 했다는 점이다. 슈퍼 BRT 역시 같은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의 박용남 소장은 “글로벌 도시들이 BRT를 구축하려 했던 이유는 교통망 개선이 아닌 대중교통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려 했다는 점을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저비용ㆍ고효율의 교통수단이란 이유로 예산을 깎거나 설비 구축에만 급급해 치밀한 전략 없이 BRT를 구축한다면 일반 광역버스와 다를 바가 없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슈퍼 BRT, 차선을 이탈해선 안 된다.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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