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T의 빛과 그림자

전용차로를 내달렸다. 고급스러운 정류장에도 이 버스만 정차할 수 있었다. 청라국제도시에서 운영 중인 간선급행버스체계(BRT) 버스 7700번은 위용을 뽐냈다. 하지만 청라를 벗어날 무렵부터 멋들어진 위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종점인 서울 가양역에 도착할 때까지 숱하게 많은 정체를 겪었다. 서울에서 청라 BRT는 ‘값만 비싼 버스’에 불과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BRT 버스 7700번을 직접 타봤다. 

청라 BRT 노선은 신호등이 많아 반쪽짜리 BRT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청라 BRT 노선은 신호등이 많아 반쪽짜리 BRT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기점 인근에서 타면 출근시간에도 앉아서 갈 수 있습니다. 사람 많은 인천 지하철 2호선보다 편하긴 하겠죠. 그렇다면 청라 BRT가 혁신교통이냐고요? 글쎄요, 광역버스와 차이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직접 타보면 알겁니다.”

얼마 전 결혼을 앞두고 청라국제신도시에 신혼집을 마련한 후배의 설명이었다. 간선급행버스체계(BRT)는 ‘도로 위 지하철’로 불리는 교통시스템이다. ‘버스전용차로’ ‘편리한 환승시설’ ‘교차로 우선통행’ 등을 도입해 버스의 정시성과 통행속도를 끌어올리는 게 목적이다. 건설비가 저렴하고 공사기간이 짧아 혁신 교통으로 꼽힌다. 해외 여러 도시에선 그 효과가 입증됐다. 

이 시스템은 말 많고 탈 많은 3기 신도시 교통대책에도 포함됐다. 정부가 정한 사업명은 ‘슈퍼 BRT’다. 기존 국내 BRT보다 시설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 국내 BRT는 대부분 버스전용차로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앞으론 진짜 지하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슈퍼 BRT를 도입하겠다”고 설명했다.

국내 BRT 시설이 미흡하다는 얘기인데, 청라국제도시 역시 그 질 낮은 BRT를 운영 중인 지자체 중 하나다. 그렇다면 기존 BRT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아울러 슈퍼 BRT를 도입하면 정말 버스가 지하철처럼 빨라질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 취재팀은 1월 29일 아침 7시 50분, 청라국제신도시의 랜드마크인 청라호수공원 인근에 있는 ‘청라중앙호수공원입구(서울 방향)’ 정류장에서 르포를 시작했다. 

정류장은 10개의 차선이 놓인 청중로 중앙에 섬처럼 놓여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정류장에 닿을 수 있었고, 그 안엔 열댓명의 시민이 있었다. 비를 막고 햇빛을 가릴 수 있는 반개방형 구조물 두개가 연달아 설치될 정도로 넓은 공간이라서 그런지 한산하단 느낌까지 들었다. “정류장 앞뒤로 4개의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고, 평일 출근시간인데 사람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정류장 벽면에 붙은 노선표를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류장에 승객의 노선은 ‘7700번’과 ‘701번’ 두 개뿐이었다. 이중 701번은 청라국제도시 내부를 도는 버스였다. 서울에 진입하는 버스는 한대로, 청라국제도시 내 로봇랜드와 서울 9호선 가양역을 잇는 7700번이다. 이 노선이 바로 청라국제도시 교통난 해소를 위해 2013년 야심차게 시동을 건 ‘청라 BRT’다. 

황량했던 BRT 정류장

널찍한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가 두 대뿐인 건 이 정류장이 BRT 전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청라 BRT 노선은 7700번뿐이니, 사실상 이 버스를 위한 정류장인 셈이다. 7700번의 총 운행거리 39.6㎞ 놓인 18개 정류장이 모두 ‘BRT 전용’이다. 청라지역 정류장에서만 내부교통망인 701번ㆍ702번이 예외적으로 정차할 뿐이었다. 다른 지선버스나 마을버스의 정류장은 모두 가로변에 놓여있었다. 

이번엔 배차시간을 봤다. 평상시엔 15분 간격이지만 아침 7시엔 8분 간격으로 촘촘했다. 시간표에 따르면 기점 출발시간은 7시 52분. ‘청라중앙호수공원입구’ 정류장이 기점과 불과 2정거장 떨어져있으니 곧 승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8시 정각을 넘기자 7700번 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외관은 광역버스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버스 옆면에 ‘BRT’를 새긴 점은 눈에 띄었다. 요금은 교통카드 기준 2200원(현금 2500원). 경기도 광역버스 요금(교통카드 기준 2800원)보단 저렴했지만, 일반 시내버스(교통카드 기준 1450원)보단 비쌌다. 

기점과 맞닿은 정류장이라서 그런지 빈자리는 넉넉했다. 직선거리 650m 떨어진 다음 정류장인 ‘청라중봉대로’로 주행하는 동안 도로에 새겨진 흥미로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BRT 전용도로.’ 다시 말해, 이 도로는 7700번만 다닐 수 있다는 소리다. ‘노선지정 버스’ ‘마을버스’ ‘어린이 통학버스’ 등 온갖 차종이 진입해 정체를 일으키는 서울의 버스전용차로와는 달랐다. 

그렇다고 교통지옥인 상황에서 7700번만 고고하게 내달렸던 건 아니다. 출근시간임에도 5차선 대로변 덕분인지 일반차로에선 지ㆍ정체가 없었다. 그제야 후배가 “수도권 광역버스와 다를 게 없다”고 말한 의미를 알아차렸다. 수도권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 대부분은 전용차로가 없더라도 수도권 구간에선 정체를 겪는 일이 많지 않아서다. 교통량이 서울보단 여유로운 까닭이다. 

BRT라고 속도가 빠르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신호등도 일반차로와 동일하게 적용받았기 때문이다. 옆차가 빨간불에 멈출 땐, 버스도 멈췄다. 청라국제도시를 빠져나가 작전역에 다다를 때쯤 40여석의 좌석이 꽉 찼다. 이후 인천 봉오대로에 놓인 뻥 뚫린 전용차로를 누비며 BRT 버스는 수월하게 달렸다. 시계를 보니 8시 35분. 종종 신호에 걸리긴 했지만, 종점인 가양역까진 2정거장만 남았다. 9시 전에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BRT 전용도로 없는 서울구간

하지만 이게 웬걸. 서울 화곡로에 들어서자마자 청색의 BRT 전용도로가 끊겼다. 화곡로는 주차장이나 다름없었다. 진출입로마다 차량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빵빵! 빵!” 곳곳에서 짜증스러운 경적소리가 났다. 앞 신호가 두차례나 바뀔 때까지 버스는 멈춰서 있어야 했다. 전용차로가 없는 BRT는 순식간에 일반 시내버스로 전락했다. 

청라신도시 관계자는 “당초 시가 예상했던 종점 소요시간은 40여분이었는데, 서울구간 정체 때문에 1시간 이상을 예상해야 한다”면서 “가양동이 서울의 중심이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인천 지하철 2호선을 타는 게 속도나 정시성 면에선 안정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점인 가양역엔 9시 10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3기 신도시에 구축될 슈퍼 BRT 역시 ‘서울 진입’이 관건인데, 뾰족한 해결책은 보이질 않는다. “지하철 프리미엄은 있어도 BRT 프리미엄은 없다. 시민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교통수단은 아니라는 얘기다.” 슈퍼 BRT를 깎아내렸던 청라호수공원 인근 공인중개소 대표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야속하지만 정답 같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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