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T 해외사례

저비용·고효율 대중교통 수단인 간선급행버스체계(BRT)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교통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지속가능성까지 높일 수 있어서다. 그러나 국내 BRT는 버스전용차로 외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 국토교통부가 ‘슈퍼 BRT’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유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BRT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BRT의 해외사례를 취재했다. 

국토부는 슈퍼 BRT를 만들어 BRT 국제 표준 등급에서 최상급인 ‘골드’를 받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사진=연합뉴스]
국토부는 슈퍼 BRT를 만들어 BRT 국제 표준 등급에서 최상급인 ‘골드’를 받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2일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는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향상한 ‘S-BRT(이하 슈퍼 BRT)’ 도입을 위한 표준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에 따르면 2024년 도입이 목표다. 시범사업 지역으론 인천계양·부천대장, 창원, 인천, 성남, 세종 5곳이 뽑혔다. 국토부가 ‘지하철 수준의 최고급형 BRT’를 만들겠다고 나선 건 2004년 도입한 BRT가 별다른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엔 서울·하남·고양·세종·청라·부산 등지에 BRT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국제 BRT의 표준을 정하는 국제교통개발정책연구원(ITDP)은 BRT의 조건으로 버스전용차로, 요금징수 시스템, 추월차로 설치, 교차로 신호체계, 버스정보시스템 등을 명시하고 있다. 국토부가 슈퍼 BRT의 목표로 ▲첨단정류장 ▲전용시설 ▲운영시스템 ▲출도착 일정 2분 이내 ▲이용객 편의성 등을 내세운 이유다. 

정부는 더불어 슈퍼 BRT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밝혔다. ITDP가 정한 BRT 국제표준등급 중 최상급인 골드(Gold)를 받겠다는 거다. ITDP의 국제표준등급은 골드·실버·브론즈·베이직 총 4개로 나뉜다. 그중 골드·실버·브론즈 등급은 ‘국제모범사례’에 해당한다. 

골드(100점 기준 85점 이상)는 대부분의 평가 기준을 만족한 우수한 곳이다. 실버(70~84.9점)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춘 운영능력이 좋은 곳을 말한다. 브론즈(55~69.9점)는 BRT의 조건을 전부 갖춘 모범사례다. 총점이 55점에 못 미치거나, BRT의 필수 조건만 갖추고 있으면 베이직 등급을 받는다. 


현재 BRT가 적용된 한국의 7개 구간(여의대방로·경인로·강남대로·동소문로·수색BRT·천호대로 2곳)은 베이직 등급이다. 평가기준 5개(차로설계방식·전용차로·요금징수체계·교차로 신호처리·수평 승하차) 중 2개(요금징수체계·수평 승하차) 부문에서 0점을 받아서다. 그렇다면 ITDP 표준에서 상급(골드·실버)을 받아 우수성을 입증한 도시들은 어떤 BRT 시스템을 갖췄을까. 흥미롭게도 해외 각국이 어떤 콘셉트의 BRT 시스템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교통체계는 물론 문화까지 달라졌다. 

■고용량 선택한 보고타 =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는 세계적인 ‘고용량’ BRT 시스템을 갖췄다. 보고타의 BRT는 지하철만큼의 운송률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글로벌 BRT 데이터에 따르면 보고타 인구는 현재 818만명이고, 하루 평균 BRT 승객 수는 219만명에 달한다. 보고타는 ITDP 평가에서 평균 86.2점(구간 7개)으로 등급상 ‘골드’에 해당한다. 


BRT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 보고타는 교통환경이 나쁘기로 악명 높은 도시였다. 1990년대 보고타의 인구는 700만명이 넘고, 인구밀도는 단위 ㏊(헥타르)당 240명에 달했다. 그러나 2000년 BRT 시스템인 ‘TransMilenio’를 만들면서 교통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게다가 도로가 정비되자 도시 경관까지 쾌적해졌다. 

당시 시장이었던 엔리크 페나로사는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철도 대신 BRT를 택했다. 2000년 12월 첫단계 사업을 시작해 2007년 3월에 간선 84㎞, 지선 420㎞를 확보했다(한국교통연구원). 2015년 전체 시스템이 완공돼 380㎞ 간선망이 들어섰다. 보고타는 TransMilenio를 통해 교통 체증을 해결하는데 중점을 뒀다.

다른 차가 거의 진입하지 못하는 폐쇄형 차로를 택했고, 한번에 많이 탈 수 있는 굴절버스를 도입했다. 정류장은 여러 대의 굴절버스가 동시에 정차할 수 있는 구조다. 터미널에는 지선버스와 광역버스를 연계했고, 환승시설·관리시설·차고지·운전자 편의시설 등도 갖췄다.

시설만 두루 갖춘 게 아니다. 복잡한 도로를 개선하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는 데도 집중했다. 공원 조성, 인도·광장 개선, 자전거도로 설치, 시간별·요일별 승용차 운행 제한, 차 없는 날 시행 등이 그 예다. 시민들이 나서서 BRT를 이용하게끔 적극적으로 유도한 것도 BRT의 효과를 볼 수 있었던 이유로 꼽힌다. 

■서비스 질 선택한 광저우 = 중국 광저우廣州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BRT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광저우는 2010년 2월 처음으로 BRT를 개통했다. 승용차 이용자가 늘면서 버스와 승용차가 뒤엉켜 도로가 혼잡해지자 교통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했다.

광저우 BRT의 총 운행구간은 22.9㎞, 정류소는 26개다. 989대 버스가 총 31개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서울연구원). 하루 평균 운송거리는 21만㎞, 하루 평균 승객 58만명으로 아시아 최대 수송량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2018년 기준).   

광저우 BRT 시스템은 많은 인구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게끔 설계됐다. 대표적으로 첨단 정류장이 있다. 광저우는 ITDP의 주요 평가 기준이기도 한 요금 선지불 시스템을 택했다. 승객은 버스에 타기 전 정류장에서 요금을 내야 한다. 버스에서 결제를 하지 않아 승하차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한국에는 도입되지 않은 시스템이다. 

몰리는 승객에 대비한 부분은 또 있다. 승강장은 55m에서 최대 280m에 달할 만큼 길이가 길다. 대신 승객은 끝까지 가지 않아도 승강장 중간에 설치된 LED 전광판(부정거장)을 통해 타려는 버스가 서는 곳과 도착 시간을 알 수 있다. 정류장엔 허리 높이의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혹시 모를 추락 사고를 예방했다. 

정류장 접근성도 강화했다. 육교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수많은 사람이 버스의 통행을 막지 않으면서 정류장에 쉽게 오게 만들었다. 지하철역과 BRT가 연결돼 환승도 편리하다. 자전거셰어링과 전기버스를 운영하는 것도 접근성을 높인다. 하루 평균 대중교통 운송량만 1455만명에 달하는 도시의 상책이다. 


■교통약자 선택한 멕시코시티 = 인구도 많고 차도 많은 멕시코시티의 도심 교통은 혼잡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2011년부터 교통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2013년에는 ‘지속가능한 도시상(2013 Sustainable Transport Award)’을 받았다. 멕시코시티가 상을 수상하는 데엔 BRT의 공이 컸다. 

멕시코시티엔 세계에서 가장 폭이 넓은 간선도로가 있다. 시는 여기에 추월차로를 설치한 BRT를 도입해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멕시코시티의 인구는 885만명, BRT의 하루 평균 수송량은 124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수요는 적은 편이지만 더욱 넓은 지역을 서비스할 수 있는 격자형 네트워크를 채택했다. 

무엇보다 멕시코시티의 BRT 시스템이 우수 사례로 꼽히는 건 교통약자의 접근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통약자란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어린이, 유모차가 있는 사람, 옮길 짐이 있는 승객 등을 모두 포함한다. 멕시코시티 BRT는 승강장에 교통약자를 위한 출입구를 설치했다.

또한 저상버스의 비중을 늘리고, 버스 출입구 높이와 승강장 높이를 맞춰 교통약자가 쉽게 타고 내릴 수 있게 했다. 수평 승하차 부문에서 아예 0점을 받은 데다 저상버스 도입률조차 30%대(2015년)에 그치는 한국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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