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덴마크ㆍ스웨덴ㆍ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부패인식 수준이 높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해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도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당연히 해당 국가의 기업들도 청렴할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또한 경제력이 낮다고 CPI 지표가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가 CPI를 부문별로 세심하게 뜯어봐야 하는 이유다. 

국가별 CPI 순위가 높다고 해당국 기업의 부패인식 수준이 높은 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국가별 CPI 순위가 높다고 해당국 기업의 부패인식 수준이 높은 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2019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가 발표됐다. CPI는 세계적인 반反부패운동 단체 국제투명성기구(TI)가 1995년부터 매해 발표해온 지표로, 공공ㆍ정치 부문의 부패 정도를 보여준다. 부패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개선하고, 의식 수준을 높이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부패인식 수준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은 매번 CPI 순위 상위권에 오른다. 

CPI를 ‘정부혁신 3대 지표’ 중 하나로 꼽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난해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CPI 점수가 높을수록 청렴하다는 의미인데, 우리나라는 지난해 100점 만점에 59점을 받았다.

순위는 제법 높다. 총 180개의 조사대상국 중 39위다. 2010년에 달성했던 역대 최고기록과 같다. 2016년 역대 최저순위(52위)까지 떨어졌다가 3년 만에 최고기록을 경신했으니 정부가 자축할 만하다. 

그런데 국가의 CPI 순위가 높다고 해서 해당 국가에 속한 기업들까지 청렴하다는 건 아니다. 청렴한 국가의 기업들도 해외시장에선 얼마든지 부패행위를 할 수 있어서다. 이는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의 벌금 통계를 보면 잘 드러난다. FCPA를 위반해 고액의 벌금을 낸 기업들 중 상위권에는 청렴 선진국의 기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벌금액을 봐도 마찬가지다. FCPA 전문사이트 FCPA Blog에 따르면 지난해 CPI 순위 5위권에 든 국가(덴마크ㆍ뉴질랜드ㆍ핀란드ㆍ싱가포르ㆍ스웨덴)의 기업들이 FCPA가 집행된 이래로 납부한 벌금액은 총 24억9000만 달러(약 2조9556억원)였다. 10위권 안에 든 국가(스위스ㆍ노르웨이ㆍ네덜란드ㆍ독일ㆍ룩셈부르크 추가)로 범위를 넓히면 벌금액이 54억3000만 달러에 이른다. 

FCPA 집행 이후 지금까지 기업들이 지불한 벌금 총액이 총 172억4000만 달러다. 이를 감안하면 CPI 순위 5위권 안에 든 국가의 기업들이 전체 벌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4%, 10위권 국가 기업들은 31.5%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청렴하다는 상위 5%의 국가들이 FCPA 벌금 3분의 1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오랫동안 청렴한 국가 이미지를 유지해온 스웨덴은 지난해 자국 기업인 에릭손(통신장비 제조업체)과 텔리아(통신업체)가 벌금 순위 2위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CPI 순위에서 주목해야 할 건 두개가 더 있다. 첫째, 경제 규모와 CPI가 ‘정의 관계’인 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력이 약해도 청렴도가 높은 나라가 있다. 대표적 사례는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66년 독립한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법치가 잘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로 손꼽힌다. 1994년 강력한 반부패법을 제정한 이후 20여년에 걸쳐 부패방지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지난해 CPI 순위에서도 보츠와나는 34위에 올랐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됐지만 청렴 수준은 더 높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벗어난 이후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 제도를 잘 닦아놨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둘째 요소는 CPI 순위보다 점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CPI 점수가 1점 높아지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0.029%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와 연관이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의 국가별 CPI 순위는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긍정적인 시그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점수는 여전히 50점대에 머물러 있다. 점수만 봤을 땐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올해 6월 2년마다 개최되는 반부패국제회의(IACC)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우리 사회 전반에 부패방지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한다. 
글=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정리=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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