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난은 반복될까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금배지들은 진영에 갇혀 싸우기만 했다. 산업계는 뿌리째 흔들렸고, 사회적 안전망은 부실함을 드러냈다. 오로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신종 코로나) 때문이랴.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ㆍMERS)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대한민국이 ‘고질병’에 갇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신종 코로나 사태에 숨은 문제점을 취재했다. 

공포에 떨지 말라는 정부와 달리 국민은 불안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있다. 신뢰가 무너져서다.[사진=연합뉴스]
공포에 떨지 말라는 정부와 달리 국민은 불안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있다. 신뢰가 무너져서다.[사진=연합뉴스]

공포와 두려움의 도가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신종 코로나) 감염증 확산의 여파다. 정부가 ‘최선을 다해 확산을 막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사라지지 않는 전염병처럼 불안감도 가시지 않는다.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다. 재난이나 대형사고 앞에 당당한 정부는 지금껏 없었다. 재난이나 대형사고를 부르는 ‘고질병’의 뿌리를 뽑아낸 정부도 없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ㆍMERS)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던 박근혜 정부와 달리 ‘청와대가 곧 컨트롤타워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문재인 정부 역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강력하고 발빠른 선제적 조치’를 거듭 주문했지만 조직도, 시스템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 의심 환자를 진료한 병원이 검사를 요청했음에도 정작 질병관리본부 1339콜센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건 대표적 사례다. 그 환자는 결국 신종 코로나 16번째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또는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처음부터 검역대상 지역을 폭넓게 설정하지 않은 것도 실수였다. 우한武漢 교민을 데려올 때, 격리시설을 선정할 때, 내부에서 엇박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장 중심적이지 않은 소극행정, 부처 간 소통부재, 성급하고 일방적인 정책결정 등 기존 공공조직의 문제가 이번에도 표출된 셈이었다. 그 바람에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부의 약속은 신뢰를 잃었다. 

그렇다고 금배지들이 제 역할을 한 것도 아니다. 진영논리에 취한 여야는 신종 코로나마저 정쟁政爭에 활용하기 바빴다. 실례로 역학조사관 부족으로 현장인력이 감염 경로 탐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여당은 역학조사관을 늘릴 궁리보다는 역학조사관 감소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기 바빴다. 

민낯 드러나는 고질병

신종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야당에 미루기 위해 정략을 펼친 셈이다. [※참고 : 한겨레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여당이 단체장으로 있는 지자체에서 대부분 역학조사관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여당에도 책임이 없지 않다.] 

대형 재난 앞에 야당도 순수하진 않았다. 신종 코로나를 정권심판론에 불을 붙이는 도구로 활용하는 듯한 행보만 거듭했다. 일부에선 “국민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이 정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해 신종 코로나가 더 빠르게 퍼지길 염원하는 것이냐”는 비난도 쏟아졌다.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정치가 길을 잃은 사이, 경제ㆍ사회 분야에선 ‘고질병’이 터지기 시작했다. 산업계는 신종 코로나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중국의 부품생산공장이 멈추면서, 현대차ㆍ기아차ㆍ쌍용차까지 자동차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수년 전부터 이어진 ‘중국 부품의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을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허투루 들은 결과였다. 

미중 무역분쟁,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등을 겪으면서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산업계의 리스크 관리는 허술했다는 얘기다. 신종 코로나로 자동차 생산 공장이 멈춘 한국과 달리 부품 공급처를 다변화한 일본은 자동차 생산에 별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안전망까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기침체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계는 신종 코로나 앞에 ‘절망의 늪’에 빠졌다. 정부가 신종코로나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중소ㆍ중견ㆍ소상공인에 대출을 지원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그 문턱을 넘는 건 여전히 어렵다. 대출을 받는 절차가 까다롭긴 마찬가지여서다. 자영업자 사이에선 “규모가 있는 곳들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한탄까지 나돈다. 애초에 위기 관리를 잘 했다면 자영업계가 어려워지지도 않았다.

피해자는 언제나 소시민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사태 땐 법적 공백으로 국민이 되레 피해를 입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예컨대, 마스크를 매점매석買占賣惜하려는 얄팍한 상인들이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해도 소비자는 속수무책이었다. 법이 없어 피해보상은커녕 구제조차 받지 못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소비자 권익 보호시스템이 위기 상황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벌어진 황당한 피해다. 

문제는 대형 재난이나 사고가 마무리되면 이런 고질병이 그대로 남는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 이후 또 다른 재난이 터지더라도 정부는 신뢰를 잃을 것이고, 정치권은 싸울 것이다. 산업계는 흔들릴 게 뻔하고, 사회적 안전망은 확충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거기서 비롯되는 피해는 애먼 국민의 몫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신종 코로나가 남긴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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