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와 판매업체의 탐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확산 속도가 빨라 국내에서도 확진자가 20명을 훌쩍 넘어섰다. 감염자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바이러스를 막아준다는 보건용 마스크와 손세정제가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다. 온라인상에선 ‘마스크 전쟁’이 벌어졌다. 문제는 이 전쟁을 벌이는 게 소비자가 아니란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신종 코로나에서 나타난 판매업체의 탐욕을 취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신종 코로나)로 인해 전국이 뒤숭숭하다. 쇼핑몰·영화관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아예 휴업을 선택한 헬스장·수영장도 수두룩하다. 바이러스가 있는 비말(침방울) 등이 눈·코·입의 점막에 침투해 전염된다는 사실이 알려져서다. 손소독제와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면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스쿠프 취재팀이 지난 5일 오후 2시께 영등포역 인근의 H&B 스토어를 방문해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직원은 “오전 중에 다 팔리고 없다”며 “아침 일찍 와야 구매할 수 있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선 ‘마스크 전쟁’이 한창이다. 놀라운 건 소비자끼리의 전쟁이 아니란 점이다. 마스크를 주문하는 소비자와 이를 취소하는 판매자간의 전쟁이다.

바이러스 감염 예방에 효과가 있는 보건용 KF80(황사용)·KF94·KF99(이상 방역용) 등급 마스크는 일반적으로 약국이나 마트 등에서 개당 3000~4000원에 판매된다. 재감염 우려 탓에 한번 쓰고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소비자들은 오프라인에서 마스크를 구하기 힘든 데다 가격도 만만치 않자 온라인을 통해 구매하는데 나섰다. 

하지만 일부 도매상과 제조업체가 ‘돈 벌 기회’를 뜬눈으로 놓칠 리 없었다. 그들은 마스크를 매점매석하면서 가격을 터무니없이 끌어올렸다. 심지어 결제까지 완료된 상품을 일방적으로 (구매)취소해버리는 수법까지 썼다. 직장인 김민수(가명·26)씨의 사례를 들어보자. 

김씨는 지난 1월 29일 오픈마켓에서 마스크 한 상자(50개)를 주문했다. 결제창엔 ‘1월 31일 도착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마스크는 예정일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3일이나 흐른 2일에야 구매취소를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황당한 마음에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은 쉽지 않았다. 김씨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판매자의 마스크 10개를 결제했다. 

그러나 5일 도착한다던 마스크는 오지 않았고,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는 “도착 예정일에 출발조차 하지 않은 걸 보니 또 취소될 것 같다”며 “제품을 보내지 못하면 미리 안내를 해줘야 다른 곳에서 구매하든 말든 조치를 할 것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만의 사례가 아니다.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4일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마스크 관련 신고·상담 건수는 2016건에 달했다. 1372 소비자상담센터로 접수된 마스크 관련 상담은 1월 28일엔 9건에 불과했지만 29일 75건, 30일 210건, 31일엔 488건까지 치솟았다(소비자시민모임). 

4일간 접수된 상담(782건) 중 ‘온라인몰에서 마스크를 주문했지만 취소됐다’는 내용은 97.1%(복수응답)에 달했다. 또한 가격 인상 상담의 77.8%는 ‘품절을 이유로 구매 취소됐지만 검색해보니 동일 제품의 가격을 올려서 판매 중이다’는 내용이었다. 마스크 구매처로는 소셜커머스(48.2%)와 오픈마켓(29.0%)이 압도적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정부와 이커머스 업체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5일부터 ‘보건용 마스크 및 손소독제 매점매석 행위 금지 등에 관한 고시’를 시행했다. 고시에 따르면 적발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판매자에게 페널티를 주거나(쿠팡), 구매자에게 환불 및 품절 보상액을 지급하는 방식(위메프)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방적인 구매취소 빈번

문제는 이런 대책이 소비자에겐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판매자의 일방적 구매취소를 막을 수 있는 법이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통신판매업자는 소비자가 대금을 지급한 날부터 3영업일 이내에 재화의 공급을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만일 재화를 공급하기 곤란하다면 지체 없이 그 사유를 알리고 소비자가 대금을 지급한 날부터 3영업일 이내에 환급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김씨의 사례에서 보듯 이 법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었다. 소비자가 이 법을 활용해 신고를 하더라도 판매업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주로 시정명령)만 받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법적 사각지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재화를 구매했지만 이를 받지 못해 피해를 본 소비자를 보호하는 법안은 현재 없다. 전자상거래법상 기존에 고시한 가격을 임의로 인상한 경우 제재하는 규정도 없다. [※ 참고 : 전자상거래법 제13조 2항과 5항에 따르면 통신판매업자는 재화의 가격(가격이 없으면 결정 방법)을 고지하고 이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법적 사각지대도 있어

일부 판매업체는 “소비자원에 신고하면 그만”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통해 소비자가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소비자원에 신고절차를 밟더라도 판매업체와 접촉되지 않는 경우가 숱해서다. 소비자원에 들어온 신고·상담 처리 절차는 다음과 같다. 소비자가 피해를 신고하면 소비자원은 조사에 나선다. 

재난이 올 때마다 소비자는 속수무책이다. [사진=연합뉴스]
재난이 올 때마다 소비자는 속수무책이다. [사진=연합뉴스]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소비자원은 판매자와 소비자 간 중재에 나선다. 이후 소비자원의 조정 하에 소비자와 판매자 간 합의가 진행된다.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다행이지만, 소규모 업체 등은 연락을 받지 않는 곳도 있다. 이 경우 조정은 미뤄지고, 피해 구제도 늦어진다. 

소비자시민모임 측은 “정부와 통신판매중개업체가 관리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소비자도 사업자 정보나 통신판매업신고증 등을 잘 확인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사태 때도 그랬듯, 마스크 대란은 예견됐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불안한 소비자만 발 동동 구르는 모습은 5년 전과 똑같다. 재난이 올 때마다 소비자만 속수무책인 상황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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