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불확실성 잡혔나

“국내 셀 제조사들(LG화학ㆍ삼성SDI)의 주가가 CATL과 비교해 저평가돼 있다. 여기엔 국내 에너지저장장치(ESS) 사고 관련 불확실성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월 현대차증권이 내놓은 보고서 내용의 일부다. 2월 6일 ESS 화재사고 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과연 시장이 우려하는 불확실성은 해소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ESS 화재사고와 정부 조사, 그리고 그 속에 숨은 문제점을 취재했다.  
 

ESS 화재사고 조사단이 지난 6일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SS 화재사고 조사단이 지난 6일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화재사고가 난 ESS 설비 5곳 중 4곳의 배터리 충전율이 95% 이상(완전 충ㆍ방전에 가까운 수준)으로 운영됐다. 이런 상황에서 배터리 이상현상이 겹쳐 화재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화재를 예방하려면 ESS의 충전율을 낮춰 운영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일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사고조사단(조사단ㆍ2019년 10월 17일 구성)’이 ESS 화재원인을 추가로 조사한 지 넉달여 만에 내놓은 결론이다.

사실상 두번째 조사결과인데,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 먼저 1차 조사결과와 이번 결과를 비교해보자. 2017년 8월을 기점으로 ESS 화재사고가 잇따라 터지자 정부는 2019년 1월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조사위)’를 발족했고, 같은 해 6월 ESS 화재원인 1차 조사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뭐가 잘못된 건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백화점식 원인이 거론되면서 불안감을 털어내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ESS 화재사고는 또다시 반복됐다. 정부는 다시 조사단을 꾸려 2차 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가 앞서 언급한 내용이다. 조사단은 “1차 조사의 분석, 실험검증, 현장조사 검토자료 등을 활용해 효과적이고 정밀하게 분석했다”면서 “1차 조사 때보다 배터리 이상과 화재발생 간 관련성을 명확히 규명했다”고 자평했다.

문제는 2차 조사결과의 내용이 1차 때와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조사단은 화재원인으로 ‘배터리’를 지목했고, ‘충전율을 낮춰서 운영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놨다. 1차에 비해 훨씬 명확한 결론이었지만 ESS 업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되레 커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뢰성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일단 1차와 2차의 결론이 사실상 바뀌면서 정부의 조사결과를 신뢰하기 어렵게 됐다. 1차 조사결과를 요약해보자. “일부 배터리 셀에서 결함이 발견됐다. 이를 모사한 시험을 했지만 배터리 자체 발화로 이어질 수 있는 셀 내부단락은 발견되지 않았다.”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셀을 지목하기 힘들다는 거였다.

하지만 2차 조사결과에선 ‘5곳 중 4곳의 발화지점이 배터리’라고 추정했다. 제조결함 얘기는 없었다. 쉽게 말해 충ㆍ방전 범위가 넓으면 멀쩡한 배터리에서도 발화가 된다는 거나 다름없다. 당연히 정부가 말을 바꾼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진다. 1차 조사에서 무엇을 놓쳤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2차 결론이 바뀐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거다.

이 때문에 2차 조사결과를 1차 때와 달리 자체 홈페이지에 게시하지 않은 산업통상자원부의 태도까지 도마에 올랐다. [※참고: 2차 조사결과는 조사단의 중심이 된 한국전기안전공사 홈페이지에만 게시돼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서 게시 요청을 하지 않으면 게시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관련 부서인 에너지안전과와 제품안전정책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1차 때도 격한 반응을 보였던 배터리 셀 업계도 ‘반박’의 수위를 높였다. LG화학과 삼성SDI는 2차 조사결과가 나오자마자 조사단이 배터리 내부 발화 추정의 증거로 제시한 내용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공식 입장을 냈다. [※참고: 업계는 반박 입장을 내는 것과는 별개로 ESS 산업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강도 높은 안전대책을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향후 공방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1차 조사결과 발표 이후 일부 보험사는 제조사를 상대로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ESS 업계 관계자는 “현재 소송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듯하다”면서 “만약 그렇게 되면 과학적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결론이 어떻게 나든 시장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SS 산업이 성장하려면 안전시스템을 수시로 보강해야 한다. 사진은 울산 가스공장의 ESS 화재사고.[사진=연합뉴스]
ESS 산업이 성장하려면 안전시스템을 수시로 보강해야 한다. 사진은 울산 가스공장의 ESS 화재사고.[사진=연합뉴스]

전기제어전문가 A씨는 “빨리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분위기에 떠밀려 두차례나 성급하게 다른 결론을 내린 게 실책”이라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사실 다양한 가설을 만들고 이를 하나씩 지워가는 방식으로 조사를 하면 최소 몇 년이 걸린다. 이를 이해시킴과 동시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 특히 1차 조사에서 이해당사자인 배터리 셀 제조사들이 조사에 참여한 것도 패착이다. 제조사는 사실관계 규명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는 데 집중할 게 뻔해서다.”

안전대책 단편적이어선 안 돼

두번의 화재사고 조사를 통해 해결된 건 별로 없다. ESS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불안감도 그대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일은 아니다. 1차 조사 당시 조사위 위원장을 맡았던 김정훈 홍익대(전기전자공학) 교수는 “사실 몇 달 만에 화재원인을 찾아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이렇게 조언했다.

“ESS든 배터리든 화재사고로 떨어진 업계 신뢰도가 조사결과와 그로 인한 대책만으로 올라가겠는가. 누구의 잘못이라고 자꾸 지적하기보다는 원래 선행됐어야 할 ESS 산업 안전시스템 갖추기에 힘써야 한다.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배터리 관련 분야는 아직 안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전대책이 이번으로 그칠 게 아니라 계속 보강돼야 한다. 그렇게 쌓인 신뢰여야 견고하지 않겠는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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