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 격상 논의 진단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감염병 관리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정부조직법 개정을 총선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격상하면 국민은 좀 더 안전해질까. 혹여 간판 교체비용만 더 드는 게 아닐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질병관리본부 격상 논의에 숨은 문제점을 취재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를 계기로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정부조직법 개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격상하고,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하자는 게 논의의 골자다. 일부에선 보건복지부를 보건부와 복지부로 완전히 분리하거나 보건복지부 내에 복수차관제를 두자는 의견도 나온다.

사실 공중보건 분야는 전문가 영역이다. 그럼에도 질병관리본부가 비전문가인 행정관료의 지휘를 받고 있어 위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질병관리본부에 다른 부처를 지휘할 권한이 없고, 인사권이나 예산권도 없으니 전문인력을 안정적으로 확충하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질병관리본부가 제 역할을 하려면 그에 맞는 조직 구성이 필요하다.

물론 처음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ㆍMERS) 사태 이후에도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본부장에 차관급을 임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는데, 이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논의가 재점화된 양상이다.

일단 여아가 질병관리청으로의 승격이나 독립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보건ㆍ의료 분야 총선 공약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문제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질병관리청이 탄생하면 국민이 감염병 걱정이 확실히 줄어들 수 있느냐인데,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과거 사례들을 보면 그렇다.

 

2008년 2월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당시 이명박(MB) 정부는 위기 대응과 재난 예방 등을 통해 국민의 안전한 삶을 약속하겠다면서 기존의 행정자치부를 행정안전부로 개편했다. ‘작은 정부’를 표방했던 MB정부였지만, 당시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로고와 슬로건까지 교체하면서 행정안전부의 출범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중요한 건 국민이 안전해진 건 아니었다는 점이다. 2011년 공산품으로 분류된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을 일으켜 총 78명이 사망(232명 피해ㆍ영유아 36명 사망)할 때까지 행정안전부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피해구제조차 2017년이 돼서야 이뤄졌다.

반면 각종 규제 완화로 국민 안전은 더 위협받았다. 2015년 1월 일어난 경기도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 화재사고가 단적인 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사고지만, 이 화재사고는 MB정부의 인재人災로 꼽힌다. 화재가 난 아파트는 MB정부가 소규모 서민주택을 대량 공급하겠다면서 안전시설 설치 의무를 대폭 완화한 기준에 따라 건축허가(2011년)를 받았기 때문이다.

2013년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도 안전을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행정안전부의 ‘안전’을 앞으로 빼서 안전행정부를 출범시켰다. 일부에선 기능과 조직 등이 크게 바뀌지 않고 인력이 좀 더 충원되는 상황에서 굳이 비용(CI와 현판 변경, 명함 교체 등)이 들어가는 개칭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그대로 강행됐다. 보건복지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청도 먹거리 안전을 위해 총리실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변경했다.

박근혜 정부는 안전을 강조하면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지만, 세월호 침몰사고로 아무 소용없는 일임이 드러났다.[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정부는 안전을 강조하면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지만, 세월호 침몰사고로 아무 소용없는 일임이 드러났다.[사진=연합뉴스]

좀 더 안전해졌을까. 아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사고를 통해 이름만 바꾼다고 국민이 안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보고는 정확하지 않았고, 대응 속도는 느렸다. 대규모 재난의 대응과 복구 등을 총괄조정하기 위해 꾸려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이 본부장)는 ‘안전전문가가 전무한 단순 행정조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계기로 2014년 11월 안전행정부는 다시 행정자치부로 교체됐다. 대신 안전처와 인사처를 분리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국민안전처였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안전처 내에 소방방재청 업무를 이관해 중앙소방본부를, 해양수산부에서 해양경찰청 업무를 이관해 해영경비안전본부(육상범죄수사권 제외)를 꾸렸다. 


안전 강조한 정부, 안전했나

국민안전처 신설로 뭔가 달라졌을까. 역시 아니다. 신설된 국민안전처는 엉뚱한 논란만 키웠다. 누굴 수장으로 앉히고, 수장의 지위를 어느 정도까지 보장할 것인가에 더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공조직의 밥그릇 싸움으로 번진 셈이다. 그런 국민안전처가 온전히 국민 안전을 책임질 리 없었다.

2016년 7월 울산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긴급재난문자는 20분이나 늦게 발송됐고, 9월 경주 지진 때는 국민안전처 홈페이지가 먹통이 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17년 5월 강릉ㆍ삼척ㆍ상주 지역이 산불로 뒤덮였을 때는 긴급재난 문자가 발송되지 않은 문제를 놓고 국민안전처와 산림청, 일선 지자체들이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식약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16년 11월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검출됐지만 한달 가까이 지난 후에야 방역대책본부가 움직였다. AI 발병 후 한달 만에 10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면서 시중에는 닭과 달걀 값이 천정부지로 뛰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라고 달랐을까. 그렇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7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국민안전처를 폐지,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을 다시 분리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완전하지 않았다. 소방청이 분리됐지만 2019년 4월 발생한 강릉~동해 산불은 소방관이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이원화된 상태로는 소방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어떤가. 그동안 역대 정부는 ‘국민 안전’을 강조하면서 숱하게 조직을 뗐다 붙이고, 이름도 수시로 바꿨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 논의를 두고 회의론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바꿔야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적절한 권한과 자원이 없는 조직의 행정적 지위만 높인다고 해서 뭔가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조직의 행정적 지위보다 더 중요한 건 조직의 권한이고 관련 법규다. 법규가 행정부 조직과 민간을 포함한 각 행위 주체들에게 적정한 유인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 조직 개편은 큰 의미가 없다.”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한다는 거다.

박중훈 한국행정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부처의 통합과 분리를 반복하는 식의 하드웨어 위주 개편은 국정수행과 관리의 합리성 제고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했다”면서 말을 이었다. “면밀한 진단 하에 제한적이고 점진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분권화를 위한 기능 조정이 먼저 돼야 하고, 정치적 타협에 의한 개편이 아니라 전문성을 고려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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