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모펀드의 기록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펀드,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까지 악재가 연달아 터졌다. 한편에선 ‘사모펀드의 규제를 지나치게 빨리 풀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당연히 ‘빠른 성장에 따라 발생한 성장통의 일부’로 치부하는 반박론도 거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사모펀드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봤다. 악당 대항마였던 사모펀드는 왜 악당 취급을 받게 됐을까. 

부실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사모펀드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부실사태가 연이어 터지면서 사모펀드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03년 8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새 주인이 되자 한국은 난리법석을 떨었다. 한때 국책은행이기도 했던 외환은행의 인수자로 해외 자본이 적합하냐는 이유에서였다. 결과적으로 론스타가 4조원이 넘는 매각 차익을 챙기고 경영권을 되팔자 ‘먹튀’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로도 벌처펀드ㆍ헤지펀드 등 낯설고 무서운 이름의 금융기법이 우리나라 기업을 호시탐탐 노렸다. 2005년 3월엔 그룹 경영권을 두고 소버린자산운용과 SK가 표 대결을 벌였고, 2006년 칼 아이칸은 KT&G를 상대로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을 시도했다.

이때부터 불특정 다수를 모으는 ‘사모私募 방식’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펀드인 사모펀드는 악당이 됐다. 특히 외국계 사모펀드는 우리 금융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적으로 묘사됐다. 돈이 되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수익실현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름 뒤엔 늘 ‘탐욕’이 따라붙었다.

그 뒤 우리 정부는 토종 사모펀드 활성화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외국계 사모펀드를 상대로 토종 사모펀드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이들의 손발을 풀어주자는 취지에서였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초조함도 작용했다. 세계 각국이 민간 모험자본을 키워 경제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험자본은 당장 투자 위험은 크지만 일반적인 수준보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시도하는 단계에서 투자되는 자본이다. 대상은 벤처기업이나 부실기업 구조조정ㆍ부동산ㆍ화폐ㆍ금융이자 등으로 다양하다.

2011년 말엔 한국형 헤지펀드를 허용했고, 2015년엔 인가가 아닌 등록만으로 운용사를 설립할 수 있게 해줬다. 설립 보고도 사전에서 사후로 바꾸면서 보고 내용을 대폭 간소화했다. 

규제완화 기조는 정부가 바뀌어도 이어졌다. 2018년 9월 사모펀드 투자자 수를 49인 이하에서 100인 이하로 확대하고, 10% 초과 보유 지분에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는 등의 규제완화 정책이 발표됐다.

이후 사모펀드 설정액은 2008년 100조원을 넘어선 후 지난해 11월엔 400조원을 돌파했다. 2007년 이후 12년째 200억원대에 머물고 있는 공모펀드보다 규모가 커졌다. 각종 운용 규제로 가로막힌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다양한 전략을 활용해 수익을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사모펀드는 다시 악당 취급을 받고 있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서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했고, 가족이 투자한 수상쩍은 사모펀드는 법무부장관의 낙마를 부추겼다. 업계 1~2위를 다투던 라임자산운용은 고객들의 투자금 1조6000억원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규제의 고삐를 죄어야 할 것 같지만 정부는 신중한 태도다. 금융투자업계 일부에서 “사모펀드가 가진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보완해가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어서다. 사모펀드가 선진금융의 발판인지, 투기와 탐욕이 판치는 시장인지는 여전히 미심쩍다. 외국계에서 토종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론스타 공포에 떨던 17년 전에도 그랬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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