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식 변속기의 맹점

요즘 인터넷에서 ‘팰리세이드 전복사고’ 관련 논란이 뜨겁다. 운전자가 버튼식 변속기를 잘못 조작한 것을 계기로 팰리세이드가 전복됐는데, 이게 누구 잘못이냐는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현재로써는 운전자의 과실로 보인다. 그렇다고 제작사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도 아니다.

팰리세이드 전복사고를 놓고 누구 잘못이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팰리세이드 전복사고를 놓고 누구 잘못이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현대차의 대형 SUV 팰리세이드는 현재 최고의 인기 차종 중 하나다. 2018년 11월에 출시된 이 차량을 인도받으려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미국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기아차의 텔루라이드와 함께 SUV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팰리세이드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다. 지난해 12월 팰리세이드 전복사고가 발생했는데,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다양한 논란이 일고 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먼저 팰리세이드 운전자가 내리막길에서 변속기를 후진으로 잘못 눌렀다(팰리세이드의 변속기는 버튼식). 그러자 차량 자체의 엔진보호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시동이 꺼졌다. 그 상태로 내리막길이 계속되자 가속도가 붙었고, 당황한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시동이 켜져 있을 때와 달리 브레이크가 잘 밟히지 않았다. 운전자는 산비탈 쪽으로 차를 부딪쳤고, 차량은 전복됐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뒷자석에 아이들이 타고 있었고, 산비탈 반대쪽이 낭떠러지였다는 걸 감안하면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동영상 퍼지자 뜨거운 논란이 일어났다. 일부에선 ‘차량 결함’을 주장하면서 4억원 이상을 배상하라는 운전자의 요구가 무리한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내리막길에서 후진 기어로 놓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으면 시동이 꺼지는 건 당연한데 그걸 모르고 운전을 했느냐며 운전자의 무지를 탓하는 이들도 있었다. 

반대로 시동이 안 꺼지는 차들도 있다는 걸 근거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현대차를 탓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논란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먼저 사고 운전자의 요구부터 보자. 이번 사건의 전말을 완전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8년간 한국소비자원의 수송 분야 분쟁조정위원을 맡고 있는 필자가 봤을 때도 운전자의 요구는 무리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교통사고만 났다 하면 누군가에게 덤터기를 씌워 한몫 챙겨보겠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통사고 피해자의 약 60%가 병원 진단서를 끊는다. 일본은 전체 교통사고 피해자의 6%만 진단서를 끊는다. 한국인들은 사고의 경중과는 무관하게 진단서부터 끊고 본다는 얘기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이득일 리 없다. 

그렇다면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일단 운전방법을 탓할 수는 있다. 운전자의 실수에서 기인한 사고라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특히 시동이 꺼졌다 하더라도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으면 차는 정지한다. 그렇다고 이번 사고를 운전자 탓으로만 돌리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팰리세이드에 탑재된 버튼식 변속기의 경우, 조작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운전을 하면서 무의식으로 혹은 조수석 탑승자로 인해 버튼이 잘못 눌러진 경우를 누구나 경험해봤을 거다. 자동차 전문가인 필자도 이런 경우가 간혹 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중앙에 변속기 레버가 있지 않고, 운전대 우측 다기능 스위치 부분에 변속기가 달린 차량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 조작 실수의 가능성이 더 높다. 이 때문에 버튼식 변속기에는 당연히 안전장치가 있어야 했다. 

일반적인 변속기 레버는 ‘P(주차) → R(후진) → N(중립) → D(전진)’ 순서로 돼 있다. 전진과 후진 사이에 중립기어가 있어 조작 실수를 예방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버튼식은 단 한번의 누름으로 조작되기 때문에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다.

일례로, 일부 제작사는 버튼식 변속기를 잘못 조작했을 때 중립으로 자동전환하면서도 시동이 꺼지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차는 엔진 보호만 고려할 게 아니라 탑승자 보호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는 거다. 

이런 측면에서 팰리세이드 전복사고는 운전자의 조작 실수가 사고를 유발한 건 틀림없지만, 탑승자 보호보다 엔진 보호만을 고려한 제작사의 잘못된 설계로 볼 여지가 없지 않다. 실제로 팰리세이드 전복사고가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따라 소비자에게 이로운 판단이 내려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버튼식 변속기는 레버식에 비해 조작 실수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사진=현대자동차 제공]
버튼식 변속기는 레버식에 비해 조작 실수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사진=현대자동차 제공]

그럼에도 현대차 측은 소비자를 크게 배려하지 않은 듯하다. 그동안 자동차 제작사들이 소비자를 홀대해왔던 탓이 아닐까 한다. 정부조차 자동차 분야에서만은 소비자 보호에 적극적이지 않다.

더구나 국내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결함 유무도 운전자가 직접 밝혀야 한다. 미국과 달리 급발진 사고 피해자들의 소송은 100% 패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사들의 소비자 보호 혹은 구제를 기대한다는 건 쉽지 않다. 

정부가 자동차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이번 사고에서도 정부가 공공 차원에서 소비자를 생각해 조사를 하고, 근본 원인을 찾았더라면 좀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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