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장부, 직장 내 괴롭힘일까
이석장부, 직장 내 괴롭힘일까
  •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 호수 376
  • 승인 2020.02.22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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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윤호 변호사의 記錄
직장 내 괴롭힘 피해 보상

자리를 뜰 때마다 장부에 기록하는 게 회사의 원칙이었다. 커피 한잔을 타러 갈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적어야 했다. 심지어 직장상사는 이 장부를 보고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했다. 장부가 공개된 장소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이석장부, 직장 내 괴롭힘일까.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위자료를 인정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위자료를 인정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누군가 나에게 “거짓말하는 게 최순실(최서원 개명) 같다”고 말했다면 기분이 어떨까. 동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랬다면 아마도 큰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직장 내에서 발생한 이야기다. 이같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근로자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ㆍ경제 활동이 불가능할 만큼 중대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 위자료를 인정하고 있다.

언급한 사례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가해 근로자 A씨와 피해 근로자 B씨는 같은 직장 동료 사이였다. 문제의 발단은 ‘B씨가 이상한 말을 했다’고 의심한 A씨가 이를 기정사실화해 다른 동료들에게 소문을 퍼뜨리면서다. 
하지만 B씨는 정작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A씨는 B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또다시 험담을 시작했다. A씨는 동료들에게 “B씨가 거짓말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그런지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는지 모르겠다” 등등 가정사까지 비하했다.

부당하게 모멸감 느꼈다면…  

이틀 후에는 B씨와 동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내게 거짓말을 해놓고 자기 잘못을 모른다. 진실이 밝혀졌으니 회사를 관둬라”고 말했다. 또 “네가 최순실이냐” “쪽팔려서 회사 다니겠냐” “그렇게 해서 천국 가겠냐”며 조롱했다. B씨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기 위해 최순실에 빗대기까지 한 셈이다. 법원은 가해자 A씨의 발언에 모욕죄를 인정하고,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이 발생한 건 2016년으로 국정농단 사건이 한창 불거지던 시기였다. 시기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법원은 “네가 최순실이냐”는 말이 피해자 B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고, 조롱과 모멸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아울러 B씨의 정신적 고통을 고려해 위자료 600만원도 인정했다. 

이번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형사처벌에 해당하진 않지만, 법원이 손해배상을 인정한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해보자. 이른바 이석移席장부를 쓰도록 한 회사의 사례다. 이석장부란 말 그대로 직원이 자리를 뜰 때마다 왜 자리를 비웠는지, 시간과 장소 등을 기록하는 장부다.  

2018년 해당 회사는 피해자 C씨에게 이석장부를 적도록 지시했다. C씨는 잠시 커피를 타러 일어났다가 자리에 돌아올 때에도 장부를 적어야 했다. 심지어 C씨는 직장상사 D씨로부터 이런 말도 들어야 했다. “하루 평균 7번 정도 화장실을 가시더군요.” 하루 평균 화장실에 몇번 가는지까지 일일이 상사가 확인하고 있었던 셈이다. 

해당 이석장부가 사무실 안,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이 비치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C씨로선 생리적 욕구, 횟수까지 모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C씨는 이를 직장 내 괴롬힘이라고 판단하고,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석장부를 작성하도록 한 회사에 “회사가 사용자로서 정당한 지위, 감독권 한계를 일탈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고, 결국 C씨의 행복추구권과 일반적 행동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또 이에 따른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회사는 근로자를 보호하고 배려할 의무가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회사는 근로자를 보호하고 배려할 의무가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C씨를 괴롭힌 건 이석장부만이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 E씨가 회사의 익명 게시판에 올린 비방글 때문에 속앓이를 심하게 했다. E씨는 게시판에 C씨를 지칭하며 “무전취식을 한다” “급식충 같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더 큰 문제는 회사 측이 이를 알고도 9개월 넘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법원은 “회사가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근로자의 보호 및 배려 의무를 위반했다”면서 “위자료 500만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물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피해 근로자에게 위자료가 얼마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위자료를 받는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가 회복될 리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판례가 이어지는 건 피해 근로자가 마음의 상처와 경제적 손실까지 혼자서 감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직장에서 부당하게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면 조금이나마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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