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상한 태양광 긍정론

OCI와 한화솔루션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게 결정타로 작용했다. 그러자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모듈’로 이어지는 태양광 산업의 가치사슬이 무너져 태양광 시장의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국산 태양광 모듈의 점유율은 80%에 육박한다”면서 “국내 기업이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정부의 이상한 태양광 산업 긍정론을 취재했다. 

OCI가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사진=연합뉴스]
OCI가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사진=연합뉴스]

“설비보완과 사업환경 악화로 인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군산공장)을 중단한다.” OCI가 백기를 들었다. 지난 11일 공시를 통해서다. “일부(총 생산규모의 약 15%) 설비는 보완해서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제조에 투입할 것”이라면서 여지를 남겼지만 상황이 신통치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 최대이자 전세계 3위의 폴리실리콘 제조사인 OCI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간명하다. 품질 면에서 한국산과 별 차이가 없고, 가격은 훨씬 싼 중국산 폴리실리콘과의 경쟁에서 밀려서다. 실적도 바닥에 가깝다. OCI가 11일 공시한 지난해 잠정실적 발표에 따르면 매출은 2조6051억원으로 전년(3조1121억원) 대비 16.3%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1807억원)했다. 

OCI뿐만이 아니다. 한화솔루션도 20일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폴리실리콘 가격이 너무 낮고, 가격이 다시 오를 거라는 기대감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태양전지)→모듈(패널)→발전소’의 순서로 이어지는 태양광 산업의 가치사슬(밸류체인)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진다. 가치사슬의 첫 단계에 있는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한다는 건 태양광 산업의 쌀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아서다.

폴리실리콘 시장을 중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국내 태양광 산업의 대중對中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란 걱정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180도 다르다. 

 

국내산 태양광 셀에 사용되는 잉곳과 웨이퍼는 대부분 중국산이다.[사진=연합뉴스]
국내산 태양광 셀에 사용되는 잉곳과 웨이퍼는 대부분 중국산이다.[사진=연합뉴스]

13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주장을 들어보자. “OCI가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의 생산을 중단해도 중국산 (폴리실리콘의) 수입은 증가하지 않는다. OCI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내수보다는 수출 중심이었다. 국내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의 대중 수입 비중도 전체의 3% 이내로 미미한 수준이다. 2019년 기준 국내 태양광 시장에서 국산 모듈 점유율은 78.7%로 국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쉽게 말해, 국내 태양광 시장의 대부분을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 점유하고 있으니 OCI가 폴리실리콘 생산을 중단하든 말든 중국의 침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정부는 과연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일단 산자부 주장에 틀린 내용은 없다. 우리나라의 폴리실리콘 수입 비중은 무척 낮다. 수입하더라도 중국산이 아닌 미국산과 독일산이 많다. 

이에 따르면 한가지 전제가 가능해진다. “폴리실리콘 대부분이 국산이라면 태양광 산업의 가치사슬 상 태양광 셀도 국산일 것이다.” 국내 태양광 시장에서 국산 모듈 점유율은 78.7%에 이른다는 산자부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럼 이 전제는 옳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중국산 별로 없다는 정부

국내 태양광 업계가 중국산 폴리실리콘을 거의 수입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정부의 말처럼 태양광 모듈이 온전히 국산인 건 아니다. 국내 태양광 셀 생산업체 대부분이 중국산 잉곳과 웨이퍼를 수입해 태양광 셀을 생산하고, 이 셀이 모여서 태양광 모듈이 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나라 태양광 셀 제조업체들이 쓰는 잉곳과 웨이퍼는 대부분 중국산이다. 비율로 따지면 95% 이상이다.” 

 

익명을 원한 태양광 셀 생산업체 관계자 역시 “우리가 들여오는 잉곳과 웨이퍼 상당량이 중국산”이라고 설명했다. 태양광 셀은 국산이지만, 그 재료인 잉곳과 웨이퍼는 중국에서 공급받고 있다는 얘기다. [※참고: 일부에서 한국 정부가 태양광 산업을 밀어붙이면서 중국 업체들만 이득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정부의 말처럼 ‘국내에 유통되는 폴리실리콘 대부분이 국산’이라면 그것을 원료로 잉곳ㆍ웨이퍼를 생산하면 되는데, 왜 중국산 잉곳ㆍ웨이퍼가 판을 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잉곳ㆍ웨이퍼 생산업체들이 폴리실리콘 업체들보다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잉곳ㆍ웨이퍼 전문생산업체의 명맥을 유지하던 웅진에너지가 지난해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건 ‘종언終焉’이나 다름없었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렸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는 태양광발전을 육성하면서 설치 보조금(박근혜 정부 이후 현재까지)을 줬다. 말하자면 태양광 셀과 모듈 구입비용을 지원해준 거다. 당연히 태양광 셀 제조사는 가격이 비싼 국내산 잉곳과 웨이퍼를 구입할 이유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잉곳과 웨이퍼 제조업체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잉곳과 웨이퍼 시장이 먼저 타격을 받은 이유다.”

문제는 무너질 산업이 더 남았다는 점이다. 강정화 한국수출입은행(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허리(잉곳ㆍ웨이퍼)가 끊어진 상태였으니 폴리실리콘 생산업체까지 타격을 입는 건 시간문제였다”면서 “셀 시장과 모듈 시장까지 잠식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심각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태양광 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의 추격에 등 떠밀려 LCD에서 손을 놓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면서 “태양광 산업에서는 기술력 격차라는 게 그다지 의미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훨씬 빠르게 추격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중국산 폴리실리콘 수입량이 얼마 되지 않고, 국내 태양광 시장에서 국산 태양광 모듈 점유율이 높다는 이유로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해외 이전밖에 답 없나

어떻게 해야 할까. 일부에선 “지금이라도 폴리실리콘 생산 단가의 30~40%를 차지하는 전기요금을 낮춰줘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는 현실성이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잉곳ㆍ웨이퍼 시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좀비기업을 국민 세금으로 떠받친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고, 태양광 산업 육성만을 위해 형평성에 어긋나는 정책을 편다는 건 타당하지 않다. 

강 선임연구원은 “단가를 낮출 수 있는 지역으로 생산 공장을 이전하는 것 외에 딱히 답은 없어 보인다”면서 “어쩌면 현재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그걸 지원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국산 태양광 모듈 점유율이 높다는 근거를 들며 정부가 안심한다면 태양광 산업의 앞날이 더욱 깜깜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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