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화장품과 밀레니얼 세대

옷이나 가방을 메인 품목으로 선보이는 럭셔리 패션브랜드가 화장품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다. 샤넬, 크리스찬 디올, 입생로랑 등 브랜드는 일찌감치 ‘뷰티 라인’을 론칭했지만 최근엔 후속 주자들의 발걸음이 눈에 띈다. 콧대 높은 ‘명품 위의 명품’ 에르메스가 립스틱 출시를 앞두고 있는 건 놀라운 소식이다. 그들은 왜 화장품을 만드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명품과 밀레니얼 세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럭셔리 브랜드 립스틱은 명품이면서도 가격은 부담스럽지 않아 ‘스몰럭셔리’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 소비자들이 선호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럭셔리 브랜드 립스틱은 명품이면서도 가격은 부담스럽지 않아 ‘스몰럭셔리’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 소비자들이 선호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는 3월 4일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가 립스틱을 출시한다. 브랜드 134년 역사상 처음으로 선보이는 화장품이다. 전 세계 35개국에 동시 출시되는 에르메스 립스틱은 국내에선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비롯해 에르메스 퍼퓸 매장, 부티크 매장, 면세점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예상 가격은 1개당 8만원대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화장품을 선보이는 건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샤넬, 크리스찬 디올, 입생로랑 등의 럭셔리 브랜드가 뷰티 라인을 출시했고, 꾸준히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구찌는 지난해 유럽에서 립스틱을 출시했다.

2014년 화장품을 출시했다가 매출 부진으로 2년 만에 사업을 중단했던 구찌 뷰티는 지난해 다시 도전장을 내밀고 국내시장엔 올해 상륙했다. 1월 31일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판매를 시작했고, 2월 7일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2호점을 열었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7월엔 지방시 뷰티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 국내 첫 매장을 열었고, 곧바로 신촌점에 2호점을 오픈하며 국내 소비자들과 만났다. 이후 지방시 뷰티는 매장 수를 하나씩 늘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은 잘 팔리는 옷이나 가방이 있는데도 굳이 화장품, 그중에서도 립스틱을 만드는 걸까. 업계 전문가들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기엔 립스틱만 한 게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슨 말일까.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나심비(나를 위한 소비)’ ‘플렉스(돈을 자랑한다는 뜻의 은어)’ 등 자기가 중심이 되는 소비를 한다. 자동차나 옷, 가방 대신 작은 제품에서 사치를 부리는 ‘스몰럭셔리(Small Luxury)’ 역시 그들을 대변하는 소비문화다. 그런 의미에서 립스틱이 밀레니얼 세대에겐 안성맞춤인 소비품목인 것이다.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테이블 위에 화장품 파우치를 꺼내놓는 게 밀레니얼 세대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화를 하며 수시로 화장을 고치고, 화장품 정보를 교환한다. 그때 아무렇지 않게 꺼내 플렉스할 수 있는 게 바로 럭셔리 브랜드 립스틱이다. 수백만원에 이르는 명품백은 부담스럽지만 립스틱은 몇만원으로도 충분히 명품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경옥 성신여대(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 교수는 “아직 소득이 많지 않은 젊은 소비자들 입장에선 비싼 가방은 못 사더라도 작은 것에서 비싼 것을 샀을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밀레니얼 세대들이 럭셔리 브랜드 립스틱을 사는 이유를 분석했다. 

컨설팅그룹 리치24H(REACH24H) 코리아의 손성민 책임연구원은 “밀레니얼 세대와 그보다 더 어린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이전 세대들에 비해 스킨케어보다 색조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럭셔리 브랜드들이 그런 점을 노린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럭셔리 브랜드 입장에서도 립스틱은 좋은 ‘미끼 상품’이 될 수 있는 얘기다.

매출 부진으로 뷰티 사업을 중단했던 구찌는 지난해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사진=뉴시스]
매출 부진으로 뷰티 사업을 중단했던 구찌는 지난해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사진=뉴시스]

실제로 립스틱으로 신규 고객을 유입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옷이나 가방보다는 저렴하기 때문에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거다. 허 교수는 “실제 주종목은 비싼 것인데 일종의 마케팅믹스(Marketing Mix), 립스틱 등 비싸지 않은 품목까지 진출해 브랜드 로열티를 높이고 브랜드 확장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립스틱이 개당 가격은 비싸진 않아도 여성들에겐 생필품이나 다름없는 품목이지 않나”라고 말한 허 교수는 “립스틱을 계속 사서 쓰는 게 비싼 가방 못지않게 매출이나 고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끌고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밀레니얼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과 럭셔리 브랜드들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져 럭셔리 브랜드 립스틱이 국내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는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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