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 통과 앞둔 국가혈액관리정책원 법적 논란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등과 충돌 위험
국회는 왜 혈액관리정책원 밀어붙이나

국가 혈액관리정책을 새롭게 담당할 ‘국가혈액관리정책원’이 곧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관련 법안이 국회(법사위) 통과를 앞두고 있어서다. 혈액업계는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혈액정책을 수립하는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정책원을 설립하느냐는 이유에서다. 사실상 민간기관에 나랏돈을 들여 ‘옥상옥’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의문까지 쏟아진다. 

문제는 또 있다. 국회 통과를 앞둔 이 법안에 법적 맹점이 숱하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 법무법인에서 작성한 ‘혈액관리법 개정안’의 검토의견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A4용지 1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엔 혈액정책원 지정이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포괄위임금지 원칙 등과 충돌할 수 있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정부가 설립을 예고한 국가혈액관리정책원은 옥상옥에 치여서 제 역할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설립을 예고한 국가혈액관리정책원은 옥상옥에 치여서 제 역할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가 혈액관리 체계가 확 바뀔 전망이다. ‘국가혈액관리정책원(혈액정책원)’이란 이름의 새 기관을 만드는 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어서다. 이런 내용이 담긴 혈액관리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일 소관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가결됐다. 이로써 본회의 상정 전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원회 통과 절차만 남았다. 

혈액정책원은 지난해 3월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법안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법안에선 혈액정책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현재 혈액관리정책은 보건복지부에서 사무관 1명이 수행하고, 대한적십자사가 대부분의 업무를 위임받아 수행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정확한 혈액수급 예측과 반복되는 수급난 해소를 위한 전문연구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흡한 국가 혈액관리 시스템을 관리할 새로운 기구를 만들자는 거다. 언뜻 명분은 충분해 보인다. 코로나19에 따른 혈액수급 비상사태로 국내 혈액 관리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법을 둘러싼 반론이 만만치 않다. 골자는 나랏돈으로 ‘옥상옥’ 기구를 만드는 전형적인 예산낭비란 거다. 국내 혈액관리의 주체는 보건복지부, 대한적십자사, 질병관리본부 등이다. 보건복지부가 총괄 기능을 맡고 있고, ‘혈액관리사업 수행’ ‘헌혈자 모집’ ‘혈액제제 제조’ 등 상당 부분의 업무는 공공기관인 대한적십자사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일부 혈액사업을 감시ㆍ평가한다. “전액 국고로 운영될 정책원을 신설하는 것보다 기존 조직을 제대로 관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적지 않은 이유다. 

복지위 소속 윤일규(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행 구조로 도저히 관리할 수 없다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야 당장 입법을 서둘러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공감대도 없이 무턱대고 새 기관을 만들면 예산만 축내는 옥상옥이 될 공산이 크다. 현행 조직의 해태가 문제라면, 더 촘촘히 감시ㆍ관리를 하면 될 일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정부부처고 대한적십자사는 공공기관으로 감시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별도 기구를 대체 왜 만들어야 하는가.” 

국회 전문위원회도 검토보고서를 통해 ‘장기적인 재정 부담’ ‘유사ㆍ중복업무’ 등을 우려했다. 심의과정에선 기획재정부와 대한적십자사가 반대의견을 표명했고, 소관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소속 의원 간 치열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그럼에도 이 법안은 법사위로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보건복지부가 의원 법안(김상희 의원 발의)에서 한발짝 후퇴한 법안을 절충안으로 제시하면서다. 재단법인을 신설하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니, 기존 기관ㆍ단체 중에서 혈액정책원을 ‘지정’해 운영하겠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입법을 앞둔 이 절충안마저 숱한 법적 맹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에서 작성한 ‘혈액관리법 개정안’의 검토의견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이 보고서엔 혈액정책원 지정이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포괄위임금지 원칙 등과 충돌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정보 관리 리스크 = 개정안에 담긴 혈액정책원의 주요 권한은 ‘자료제출 요청권’이다. “혈액정책원은 업무수행(조사ㆍ연구ㆍ교육 등)에 필요한 정보 수집을 위해 의료기관, 대한적십자사, 혈액제제 제조업자 등에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혈액정책원이 ‘조사ㆍ연구ㆍ교육’을 위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대한적십자사가 보유한 헌혈자 정보(약 7000만명)가 대표적이다. 여기엔 헌혈자의 주소ㆍ연락처ㆍ혈액형ㆍ병력 등이 담겨 있다. 혈액정책원은 이런 자료를 대한적십자사에 요청하면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위법 요소가 크다. 헌혈자 정보는 개인정보법의 ‘민감정보’에 속하는데, 이를 제3자에 넘기려면 정보주체로부터 별도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 혈액원들은 7000만명의 헌혈자 정보를 수집하기만 했다. 이 정보를 제3자에 넘긴다는 동의를 얻은 적은 없었다.

신설에서 지정으로 후퇴

혈액정책원이 해당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도 난제다. 개인정보호법은 민감정보를 제공받은 기관에 별도의 개인정보 안전 확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혈액관리법 개정안엔 개인정보 관리 내용을 정해두지 않았다.

비슷한 이유로 생명윤리법에도 저촉될 가능성이 높다. 헌혈자의 혈액과 그로부터 얻은 유전정보는 모두 인체유래물(인체로부터 수집하거나 채취한 조직ㆍ세포ㆍ혈액ㆍ체액 등)에 해당한다. 악용될 시 부작용이 큰 만큼 엄격한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가령 연구 목적으로 인체유래물을 제3자에 제공을 할 경우, 개별 헌혈자의 서면동의가 필요하다. 연구목적과 보유기간도 헌혈자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익명화 및 개인정보 보호방안을 마련해 관련기관인 생명윤리연구회의 심의도 필수다. 하지만 혈액관리법 개정안엔 이런 내밀한 정보를 다루는 방법이 담겨 있지 않다. 

■혈액정책원이 뭐기에 = ‘국가혈액 관리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조사ㆍ연구ㆍ교육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는 혈액정책원의 모호한 권한은 헌법의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을 침해할 공산도 크다. 이 원칙의 취지는 법률이 위임하는 사항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특정 행정기관에 포괄적으로 입법권을 주는 걸 금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개정안은 혈액정책원의 조직구성이나 업무범위를 정하지 않았다. ‘혈액정책원의 지정 및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고만 돼 있다. 숱한 내용이 복지부에 사실상 ‘백지위임’된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혈액정책 관련 연구를 전담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해서 추진된 법안”이라면서 “옥상옥을 우려할 만큼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지 않을뿐더러 논란이 될 수 있는 법적 요소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위헌적 요소를 차치하더라도,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데다 혈액정책 수립이라는 막대한 임무를 맡았다면 좁고 엄격한 규정이 필수다. 혈액정책원이 조사ㆍ연구ㆍ교육 등을 이유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혈액정책원 누가 운영하나

더 중요한 관건은 이런 권력을 누가 쥐게 되느냐다. 혈액업계 관계자는 “관련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은 이미 혈액관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혈액정책원은 민간의료기관이 지정받을 공산이 크다”면서 “이들 기관이 정책원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혈액수급 난제를 해결할 묘안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중차대한 기구를 만드는 데도 국회ㆍ복지부 등은 관계기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지 않았다. 특히 복지부가 낸 수정안의 경우, 입법예고와 관계기관의 의견수렴 절차를 생략했다. 법안과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놓인 대한적십자사는 아예 의견도 제출하지 못했다. 

혈액업계 관계자는 “기존 조직이 버젓이 있는데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기구나 중복기구를 만들어 실패한 역사는 수없이 많았다”면서 “국가 혈액관리 체계의 중역을 맡게 될 새로운 기구가 곧 생기는데도 국민들은 모르고 있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 피를 새로 관리하는 기구가 생기는데, 국민이 모른다는 건 합당하지 않다는 일침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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