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 돕겠다는 내놓은 정부의 이상한 플랜

국토교통부가 항공업계를 돕는 방안으로 항공진흥공사 설립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토부 장관은 이미 항공업계 CEO들에게 이런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진흥공사 설립을 놓고 “공무원들의 자리 보전을 위한 기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을 입맛대로 움직이려는 기구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 “설립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텐가”라는 우려도 쏟아진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늪에 빠진 항공업계를 돕겠다면서 내놓은 정부의 이상한 플랜을 취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지원에 나섰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가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지원에 나섰다.[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한국항공진흥공사(가칭ㆍ진흥공사) 설립을 검토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사 설립 여부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지난해 12월 19일 발표한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그 안에 진흥공사 설립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가 진흥공사를 설립하려는 논리적 근거는 간단하다. 미중 무역분쟁의 장기화, 일본의 수출규제, 환율인상 등으로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국내 항공산업이 위기를 맞자 별도의 공기업 혹은 공공기관을 설립해 항공업계를 지원하겠다는 거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확산이란 이유까지 덧붙었다. 실제로 2월 17일 정부가 발표한 자료(코로나19 대응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일본 수출규제 관련 관계장관회의)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항공업계 피해는 심상치 않다. 

우선 국내 항공사의 운항횟수가 확 줄었다. 특히 한중 노선(59개)의 운항횟수는 올해 1월 1주 주 546회에서 2월 3주 126회로 76.9%나 감소했다. 당연히 여객수도 줄었다. 2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만 비교해도 전체 항공여객은 전년 동기 대비 32.2% 줄었다.

이 가운데 중국노선 여객은 64.2% 감소했다. 동남아 주요 노선 여객도 19.9% 줄었다. 정부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한 항공여객 감소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ㆍSARS)나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ㆍMERS) 때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환불에 따른 손해도 크다. 여행심리(중국과 동남아) 위축으로 항공권 예약취소와 환불이 급증해서다.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1월 26일부터 2월 12일까지 항공사들이 환불한 금액만 해도 3000억원에 이른다. 화물 피해도 적지 않다. 물동량이 급감해서다. 특히 중국을 출발해 인천공항을 경유한 후 미주ㆍ유럽ㆍ동남아로 가는 항공화물 물동량은 2월 3일부터 9일까지 약 2000t(톤)으로, 주간 평균인 4000t의 절반에 머물렀다. 

정부가 항공업계 긴급 지원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17일 ▲긴급 금융지원과 각종 사용료 납부유예 ▲대체노선 발굴과 신시장 개척을 위한 지원 ▲항공수요 조기 회복과 항공사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지원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토교통부의 진흥공사 설립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2월 10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국내 항공사의 최고경영자(CEO)들과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 “연내에 해양진흥공사와 비슷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진흥공사 설립을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관건은 진흥공사가 과연 항공업계를 살리는 기구가 될 수 있느냐인데,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아서다.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진흥공사 설립은 항공업계의 요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월 10일 항공업계 CEO들을 만나 항공진흥공사 설립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연합뉴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월 10일 항공업계 CEO들을 만나 항공진흥공사 설립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항공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진흥공사가 해양진흥공사와 비슷한 조직이라면 (항공기 도입시) 정부보증을 통한 금융지원 등이 중점적인 역할이 될 거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매우 유익한 지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경쟁력을 높이려면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는 것보다 많은 지출이 나가지 않도록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항공업계에는 시급한 사안이 더 많다.”

그가 말하는 시급한 사안이라는 건 뭘까. 예컨대 항공사가 항공기를 구입할 때 내는 등록세나 취득세 감면 등이다. 일반 국민이 주택이나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내는 세금을 왜 감면해줘야 할까 싶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제조기업이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투자한다고 하면 정부 혹은 지자체 차원에서 각종 세제혜택을 준다. 항공사 입장에서 가장 큰 투자는 항공기 구입이다. 비교적 작은 항공기도 1대에 1000억원이 넘는다. 웬만한 공장 하나 설립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왜 항공사에는 세제혜택을 주지 않느냐는 거다. 

진흥공사 설립을 둘러싼 논란이 예고되는 이유는 또 있다. 설립의 목적성이 불분명하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항공경영학) 교수는 “아직 진흥공사의 설립 여부가 확실하지 않아 뭐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항공업계 경쟁력 강화가 목적이라는데,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조직부터 만들고 보자는 느낌이다. 쉽게 말해 존립 근거가 약하다는 건데, 그렇게 설립된 기관이 과연 항공업계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할지 의문이다. 공무원 조직 늘리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더구나 지난 2월 17일 정부가 항공업계에 지원하기로 한 3000억원도 아직 풀지 않고 있다. 심사를 핑계로 항공업계를 줄 세우기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가 진흥공사를 통해 시장에 개입할 여지도 있는 셈이다. 가뜩이나 규제가 많은데 또다른 규제가 나올지 우려된다.”

관광개발진흥기금도 있는데…

진흥공사의 설립 자금 조달도 고민이다. [※참고: 진흥공사가 표방한다는 해양진흥공사는 한해 인건비만 100억원에 달한다.] 아무래도 국민 세금이 들어가거나 항공업계가 갹출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어려운 항공업계를 돕겠다면서 자금을 갹출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 국민 세금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세금으로 한계기업을 지원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허 교수는 “대우조선해양처럼 정책자금을 지원해준 기업이 망할 것 같으면 그걸 또 살리겠다고 인공호흡기를 달아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세금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항공기를 이용하는 사람들한테 걷는 관광개발진흥기금이 수천억원 쌓여 있는데, 항공산업을 관광과 연계해서 본다면 충분히 항공업계 지원에 쓸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걸 놔두고 별도의 진흥공사를 설립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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