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고질병 ‘할인꼼수’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하다.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물가가 오를수록 소비자는 ‘반값할인’ ‘행사상품’ ‘특별상품’ 등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행사상품만 골라 담아도 지갑에서 나가는 돈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유가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대형마트의 고질병 ‘할인꼼수’의 덫을 살펴봤다. 

대형마트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할인 여부를 따지는 소비자는 83.1%에 달했다.[사진=뉴시스]
대형마트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할인 여부를 따지는 소비자는 83.1%에 달했다.[사진=뉴시스]

“킹크랩 사려고 번호표 받고 1시간을 기다렸다.” “30분 만에 다 팔려서, 킹크랩 구경도 못했다.” 지난 2월 이마트에서 ‘킹크랩 대란’이 벌어졌다. 코로나19로 중국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산 킹크랩 가격이 하락하자, 이마트가 이를 매입해 전년 대비 40%가량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서다. 

문제는 ‘물량’이었다. 당초 이마트는 킹크랩 20톤(t)을 확보했다며, 2월 13일부터 19일까지 반값 수준(100g당 4980원)에 판매하겠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막상 행사를 시작하고 보니, 매장당 판매할 수 있는 수량이 10~30마리에 불과했다. 

킹크랩을 사러 왔다가 허탕을 친 소비자들이 불만을 쏟아낸 이유다. “살 수도 없는 미끼상품을 내건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마트 측은 “평소 킹크랩 판매량이 매장당 1~2마리 안팎이었기 때문에 수량이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하지만 소비자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워 물량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있었지만 이마트로선 고객을 매장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사실 이는 이마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온라인 장보기’에 익숙해진 소비자를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형마트들은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대형마트들이 대규모 할인행사를 진행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마트는 지난 1월 1일 ‘초탄일’ 행사를 벌였다. ‘초저가 탄생일’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이마트는 신선식품부터 가전제품을 최대 50% 할인 판매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초탄일(1월 1일) 매출액이 전년 동일 대비 78.3% 증가했다. 매장 방문객 수는 43.1% 늘었다. 롯데마트는 같은 날 ‘통큰절’ 행사를 열었다. 신선식품과 생필품을 초저가에 판매하자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 롯데마트 역시 통큰절 하루 매출액이 전년 동일 대비 42.7% 증가하는 효과를 거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평소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소비자 중엔 “저렴한 가격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부 최정연(31)씨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산 것도 많지 않은데 10만원이 훌쩍 넘는다”면서 “그나마 절약하려고 ‘할인상품’이나 ‘특가상품’을 주로 구입하는데 비용절감 효과를 체감하진 못 하겠더라”고 말했다. 이는 최씨의 ‘기분 탓’이 아니었다. 


같은 가격인데 ‘행사상품’ 

한국소비자연맹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가격할인’이나 ‘특별상품’ ‘행사상품’ 등의 표현이 가격 할인을 의미하진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대형마트 3사(이마트ㆍ롯데마트ㆍ홈플러스)의 할인행사(제품 가격표에 할인 전 가격 명시) 상품이나 할인유사표현(할인 전 가격 명시 안 됨, 가격할인ㆍ특별상품ㆍ행사상품 등) 상품의 가격 추이를 조사해 보니, 가격 변동이 없거나 가격 인하 효과가 미미한 수준인 경우가 숱했다. 

이마트가 지난 2월 킹크랩을 ‘반값’에 판매하면서 소비자가 몰렸지만, 구매 가능 수량은 태부족했다.[사진=뉴시스]
이마트가 지난 2월 킹크랩을 ‘반값’에 판매하면서 소비자가 몰렸지만, 구매 가능 수량은 태부족했다.[사진=뉴시스]

이마트의 경우, 조사 기간 내 행사품목 9개 중 2개의 가격이 똑같았다. 롯데마트는 11개 품목 중 2개, 홈플러스는 15개 품목 중 4개가 가격 변동 없이 행사 품목에 이름을 올렸다. A제조사의 만두 제품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소비자연맹이 제품가격 추이를 8회에 걸쳐 조사한 결과다.

이마트에선 8회 중 5회 ‘행사상품’으로 표시해 판매했다. 실제로 가격이 인하된 건 1회(8480원→7480원)였다. 동일한 제품을 롯데마트는 8회 중 6회 ‘특별상품’으로 표시했다. 가격 할인은 역시 1회(8480원→8180원)뿐이었다. 홈플러스에선 8회 중 4회 ‘행사상품’으로 표시했고, 판매가격은 8480원으로 동일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특별상품ㆍ행사상품 등으로 표기하는 건 제품의 중량을 늘렸거나 덤으로 증정하는 상품이 있을 경우”라면서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경우에만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연맹 측 설명은 달랐다. 김수연 한국소비자연맹 팀장은 “조사 대상 제품 대부분이 동일한 중량과 가격에 판매됐다”면서 “그럼에도 업체들은 주기적으로 ‘특별상품’이나 ‘할인상품’으로 표시해 판매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보가 통제돼 있는 소비자로선 해당 기간에 특별 혜택을 제공받는 것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런 ‘눈속임’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대형마트 간 소송으로 번진 ‘1+1 행사’가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2016년 대형마트 3사가 1+1 행사를 진행하면서 가격을 올려 실제론 두개를 산 것과 다름없는 가격에 판매한 것은 거짓ㆍ과장광고(표시광고법)에 해당한다고 봤다. “소비자는 1+1 행사를 한개 가격에 두개를 구입할 수 있는 50% 할인으로 인식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대형마트 측은 “1+1 행사는 두개를 구입했을 때만 혜택을 제공하는 ‘증정’의 개념으로 할인과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대형마트 3사는 공정위에 불복해 시정명령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법원은 “1+1 묶음 가격이 낱개 2개를 사는 것보다 저렴하다면 소비자에게 혜택이 있으므로 적법하다”며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줬다. 

1+1, 할인이야 증정이야 

하지만 혼란스러운 소비자는 여전히 많다. 직장인 김소연(28)씨는 “편의점에서 1+1 행사 제품을 살 때에는 당연히 한개 가격에 두개를 산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대형마트에선 어느 정도 혜택이 있는 건지 알기가 어려워, 단위 가격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수연 팀장은 이렇게 꼬집었다. “여전히 많은 소비자가 1+1 행사를 ‘할인’으로 인식한다. 이 점을 업체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가 오인할 여지가 있는 1+1 행사를 명확하게 정의하거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불황에 주머니가 휑한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하다. 그래서 ‘반값 할인’ ‘행사상품’ ‘1+1’과 같은 문구에 혹하기 쉽다. 실제로 소비자의 83.1%(한국소비자연맹ㆍ2019년 12월)가 “제품 구입 시 할인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대형마트들은 법망 안에서 ‘할인하지 않은 할인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그 사이 소비자는 또 ‘봉’이 돼버렸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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