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새 CEO 구현모의 과제

‘황창규 체제’의 KT는 많은 상처를 입었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고, 각종 비리 의혹으로 경영진이 검찰수사 대상에 올랐다.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로 ‘통신대란’까지 일으키며 위상은 물론 신뢰도마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부턴 새 CEO인 구현모(56) 사장이 KT를 이끈다. 내부인사 출신으로 KT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 정상화에 적합한 인물이란 평가다. 하지만 그에게도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구현모 사장의 과제를 살펴봤다. 

구현모 신임 CEO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사진=연합뉴스]
구현모 신임 CEO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사진=연합뉴스]

“CEO를 선출할 때마다 밀실ㆍ낙하산 선임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고 조직을 추스르기에 적합한 리더로 보입니다.” 최고경영자(CEO)의 교체를 앞둔 KT의 직원에게 “새 CEO 구현모 사장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구 사장에게 거는 직원들의 기대와 바람을 엿볼 수 있는 답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구 사장은 남다른 과정을 거쳐 통신공룡 KT 대표에 뽑혔다. KT가 CEO 심사방법을 대폭 바꿨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CEO추천위원회(사외이사 전원+사내이사 1명)가 후보군을 올리면 이사회ㆍ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회장이 선정되는 절차를 거쳤다. CEO추천위원회가 CEO 선임의 모든 과정을 맡다보니 외풍에 흔들리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2018년 3월 정관을 뜯어고쳤다. ‘지배구조위원회→회장추천위원회(전 CEO추천위원회)→이사회→주총’으로 CEO 선임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심사기준 중 하나인 ‘경영경험’도 ‘기업 경영경험’으로 바꿨다. 관료나 정치인 출신 인사가 CEO가 되는 길을 틀어막기 위해서다.

지배구조위원회(사외이사 4명+사내이사 1명)는 지난해 6월부터 차기 회장 선임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내부에선 KT 직급 기준으로 부사장 이상인 자로 후보군 제한을 뒀다. 외부 인사도 공모를 받았다.
이렇게 총 37명의 사내외 후보자군을 비교 평가해 9명의 심사대상자를 추렸다. KT는 이때 후보군의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외압 논란을 줄이고 투명하게 심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최종 후보로 구현모 커스터머ㆍ미디어 부문장(사장)이 확정됐다. 구 사장은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 자리에 오를 예정이다. 구 사장이 기대를 받는 건 달라진 선임과정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정통 ‘KT맨’이다. 1987년 한국통신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33년 동안 KT에서만 근무했다. 경영전략 담당, 비서실장, 경영지원총괄 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내부인사가 CEO로 선정된 건 남중수 전 KT 사장이 2008년 11월 물러난 이후 처음이다. 이후론 이석채ㆍ황창규 등 외부 인사가 CEO를 맡았는데, 결말이 좋지 않았다. 이석채 전 회장은 정권 교체 1년 만에 검찰 수사를 받다 직에서 물러났고, 황창규 회장은 상임위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제공한 혐의로 지금껏 수사를 받고 있다. 구 사장은 내부인사인 만큼 외풍이나 정권 입김에 시달릴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다. 

이 때문인지 KT는 유독 겸손한 스탠스로 구 사장을 맞이하고 있다. ‘회장’이란 직함을 없애고 ‘사장’으로 낮춰 부르기로 한 건 대표적 사례다. KT 관계자는 “국민기업인 KT에 회장 직급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서 “구 사장 역시 기득권을 줄이는 대신 경영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달라진 CEO 승계 과정

KT 노조는 “구 사장이 KT를 속속들이 잘 알고 이해하는 인물인 만큼, 지속가능 경영의 토대 위에서 경영혁신과 성장을 이끌어내길 바란다”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구 사장이 이런 기대에 제대로 부응할지는 미지수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KT의 주력사업인 이동통신서비스 시장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쌓지 못하고 있다. 미래 수익원으로 꼽히는 5G 가입자 경쟁에서도 밀리는 분위기다. 지난해 통신사별 5G 가입자 수는 SK텔레콤(208만4388명)이 전체 44.6%의 비중을 차지했고, KT는 141만9338명으로 30.4%에 그쳤다. 5G 시장이 개화開花했을 때 오히려 KT가 우세를 보였던 점을 떠올리면 뼈아픈 대목이다.

실제로 이통3사 중 가장 먼저 가입자 10만명을 확보한 건 KT였다. KT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의 파트너사로 5G 기술을 먼저 선보였고, 황창규 회장이 ‘미스터 5G’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적극 마케팅에 나섰음에도 위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동통신 세대 교체기엔 초기 가입자 모집 성적이 이후 경쟁에서의 성패를 가른다”면서 “KT가 초반 강세를 유지하지 못한 건 5G 마케팅 전략의 실패”라고 꼬집었다.

미디어 시장에서도 변화가 시급하다.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은 1위는 KT가 굳건하지만, LG유플러스ㆍSK브로드밴드가 잇달아 케이블TV 업체인 CJ헬로(현 LG헬로비전)ㆍ티브로드를 인수해 몸집을 불리고 있다. OTT(Over the Top) 시장에선 오히려 KT가 밀리는 형국이다. 

지난해 11월 ‘시즌’이란 새 OTT 서비스를 발표했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ㆍ유튜브뿐만 아니라 SK텔레콤과 방송3사의 합작법인인 웨이브와 비교하면 판세를 바꿀 만한 장점이 없다는 평가다.

구 사장 자신에게도 리스크가 있다. 황 회장과 긴밀하다는 점이다. 구 사장은 황 회장의 첫 번째 비서실장을 지냈고, 황 회장 임기 3년 만에 전무에서 부사장을 거쳐 사장으로 승진할 만큼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독毒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구 사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피의자 신분이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해 1월 황창규 회장과 KT 전ㆍ현직 임원 7명, KT 법인(양벌규정)을 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여기에 구 사장도 포함됐다. 검찰 조사결과에 따라 구 사장의 거취가 새롭게 결정될 수도 있다.

검찰 조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구 사장에게 황 회장의 존재는 넘어야 할 벽이다. 황 회장 체제의 KT가 국정농단 사건 연루,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후원금 스캔들 등 각종 이슈로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전직 KT 임원은 “이번 CEO 선임 과정에서도 황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면서 “황 회장의 KT를 향한 국민들의 신뢰가 추락한 상황인 만큼 구 사장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참신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사장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KT 내부의 기대처럼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시장의 기대는 별로 높지 않다는 점이다. KT 주가는 몇년째 2만원대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 구 사장이 CEO 후보로 확정이 된 지난해 12월 27일에도 주가는 전일 대비 2.5% 하락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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