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내 하늘과 네 하늘이 다르리오
[Economovie] 내 하늘과 네 하늘이 다르리오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78
  • 승인 2020.03.06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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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❶

리들리 스콧 감독은 흔히 말하는 ‘제작비에 구애받지 않는’ 거장 중 한사람이다.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2005년)’은 어마어마한 인원과 물자를 마음껏 동원해 제작한 대서사 드라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12세기 십자군과 이슬람군을 재현한 대규모 전투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장면 하나하나에 ‘돈 냄새’가 진동한다. 

예루살렘은 특정한 신의 왕국이 아니라 모두의 ‘하늘(Heaven)의 왕국’이다.

막대한 제작비가 든 작품이지만, 전쟁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보기에 불편하고 어이없는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왜 저렇게 죽고 죽여야 하나? 꼭 저래야만 하나?” 영화는 200년(1096~1290년) 가까이 7차례에 걸쳐 마치 대역병처럼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1187년 3차 십자군 전쟁 중의 가장 처절했던 ‘하틴(Hattin) 전투’를 보여준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3만명의 이슬람군과 유럽에서 원정 온 2만명의 십자군 부대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결국 십자군이 거의 전멸하며 이슬람군이 승리한다. 당연히 이슬람군에게는 자랑스러운 승전의 기록이고, 서구 세계에는 지워버리고 싶은 치욕의 역사로 남게 됐다.

서구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영국의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굳이 소환해냈다는 것이 흥미롭다. 대서사극인 만큼 당연하게도 1억3000만 달러라는 거대 제작비가 투입됐다. 그러나 스콧 감독의 이 대작은 미국에서 4000만 달러밖에 회수하지 못하는 실패작이 된 반면, 이슬람 국가에서는 흥행에 성공해 겨우 본전을 뽑은 것으로 기록된다. 

영화는 십자군 전쟁 중 가장 처절했던  ‘하틴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는 십자군 전쟁 중 가장 처절했던 ‘하틴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불행하게도 예루살렘이라는 작은 성은 기독교의 성지인 동시에 이슬람교의 성지다. 하틴 전투에서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수호하려는 2만명의 십자군은 ‘이슬람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수복하려는 3만명의 이슬람군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며 죽어간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기독교도에게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무덤이 있으며, 솔로몬의 성전이 있는 성지다. 

그러나 이슬람교도에게 있어 예루살렘은 무함마드가 승천한 곳이자, 무함마드가 지시한 기도의 대상이었다. 무함마드는 “모든 이슬람교도는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를 올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슬람교도에게는 메카에 버금가는 성지인 것이다. 당연히 누구도 물러서거나 적당히 타협할 수 없는 곳이다. 

스콧 감독이 영화 제목으로 정한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은 다소 생경하다. 최후의 심판을 받고 선택된 인간이 들어가는 곳으로, 성경에 무수히 등장하는 용어는 킹덤 오브 헤븐이 아니라 ‘킹덤 오브 갓(Kingdom of God)’이다. 킹덤 오브 헤븐이라는 용어는 마태복음에만 몇차례 등장하는 희귀 용어다. 스콧 감독은 왜 굳이 성경 표준어인 킹덤 오브 갓이라는 말 대신 킹덤 오브 헤븐을 제목으로 정했을까.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신만의 왕국이 될 수 없었고, 여러 신의 왕국이었다. 예수의 왕국이기도 했고, 유대 신들의 왕국이기도 했으며, 무함마드의 왕국이기도 했다. 특정한 신의 왕국이 아니라 그저 모두의 ‘하늘(Heaven)의 왕국’일 뿐이다. 너의 신과 나의 신은 다를 수 있겠지만 너의 하늘이 따로 있고 나의 하늘이 따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은 모두의 하늘일 뿐이지 않겠는가. 

 

제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월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모두 ‘국민’의 이름을 떨치며 일어나고 있다. 집권세력은 ‘대한민국’이라는 성지를 지켜야 한다며 기사와 장병들을 향해 호소하고, 야권세력은 목숨 걸고 대한민국이라는 성지를 수복해야 한다며 성 밖에 진을 친 비장한 병사들을 독려한다. 바야흐로 전운이 감돈다. 이제 성 밖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면 일제히 성벽을 기어오를 것이고, 성안의 병사들은 그들을 향해 활을 쏘고 끓는 쇳물을 쏟아부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분명 ‘성지’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누구만의 성지가 아닌 ‘모두의 성지’였듯이, 대한민국 역시 누구만의 나라가 아닌 ‘모두의 나라’다. 영화 속에서 예루살렘의 보두앵 국왕과 주인공 발리앙은 모두의 성지인 예루살렘에서 기독교도와 유대교도, 이슬람교도들이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예루살렘을 꿈꾼다. 그러나 그 위태로운 평화의 꿈은 이뤄지지 못하고 이내 처절한 살육전으로 이어진다.

모두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보수든 진보든 그것도 아니라면 중도든,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것이 정말 예루살렘의 꿈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걸까.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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