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마스크 수급령 논란

마스크 대란 사태를 두고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19 사태가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데도 방역의 기본인 마스크 한장도 제때,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느냐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수출을 제한하고 생산량 대부분을 공적판매처로 돌리겠다고 했는데도 현장에선 효과를 체감할 수 없다. 구호물품을 기다리듯 긴 마스크 구매 대기 줄을 서도 금세 동이 나기 일쑤다. 정부의 마스크 수급 정책이 이토록 꼬인 이유가 대체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답을 찾아봤다. 

정부의 마스크 긴급조치 계획은 국민들의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의 마스크 긴급조치 계획은 국민들의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월 28일 오후 11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와 조기극복을 위한 민생ㆍ경제 종합대책’ 범정부 합동 브리핑이 열렸다. 마이크를 잡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확진환자 급증에 따라 마스크 수급에 대한 국민 불안이 여전한 상황”이라면서 “기존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앞서 ‘국내 생산량 10% 이상 수출 금지’ ‘국내 생산량 50% 이상 공적판매처(우체국ㆍ농협ㆍ공영홈쇼핑ㆍ약국 등) 우선 납품’을 골자로 하는 마스크 긴급조치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이렇게 확보한 마스크를 매일 500만장씩 시장에 풀기로 했던 공급계획이 틀어졌다. 공적판매처엔 마스크가 제대로 납품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긴급조치 발표 이후 마스크를 사러 갔다가 허탕을 친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홍남기 부총리는 “정상적인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하루이틀 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대한 조속히 구축을 완료해 해당 물량이 공급되도록 하겠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과 총리의 사과

같은날 오후 3시 국회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의 회동이 열렸다. “정부의 마스크 수급 관리가 부실하다”는 야당 대표의 지적에 문 대통령은 “국민들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마스크 수급 문제를 두고 직접 사과 입장을 밝힌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도권의 마스크 유통업체 대표 A씨의 휴대전화가 바쁘게 진동한 건 문 대통령이 사과한 지 3시간여가 흐른 6시 1분. 발신인은 대구 공공기관과 물품을 거래하는 바이어였다. 그의 요청은 간단했다. “마스크 물량을 최대한 구해 달라”는 거였다. A대표는 “마스크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관공서 직원에게도 마스크 확보 지시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대구ㆍ경북 지역의 마스크 물량이 시급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오전에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한 대구ㆍ경북 지역에 마스크 1000만장을 우선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었다. 이날 저녁에야 A대표에게 요청이 왔다는 건 물량을 확보한 상태에서 발표한 공급계획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대통령이 마스크 문제로 사과까지 하자 관官이 직접 유통업계ㆍ공장 등을 수소문해 물량 수급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차질을 빚었다. 120여개에 달하는 국내 마스크 생산업체가 이미 공장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었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맞추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중국 보따리상과 미리 물량을 확보하려던 중간 도매상이 가세하면서 마스크 물량전쟁은 더 심해졌다. 물건도 없는데 판매한다고 얘기하니,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난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생산물량 50%를 공적판매처에 납품하라는 정부의 긴급조치는 현장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지시였다. 마스크 업계 관계자는 “오래전 계약을 맺고 생산했거나 업무상 마스크 사용이 필수적인 분야를 위해 남겨둔 재고였는데, 무턱대고 비율에 따라 공적판매처에 팔라고 하니 공장이 이를 따르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아예 생산량을 줄이거나 잠시 문을 닫는 걸 고민하는 제조사까지 생기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의 한 마스크 업체는 얼마 전 공장 가동을 멈췄다. 이 업체는 “한 대의 마스크 생산 기계를 돌리면서 한국 근로자 3명을 고용해 중국산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마스크를 생산했다”면서 “그런데 조달청에서 생산원가의 50% 정도만 인정해 주겠다는 통보와 함께 하루 생산량의 10배에 이르는 수량 계약을 요구하는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유통업체 대표 A씨에게 걸려온 전화

뒤늦게 마스크를 구해달라는 요청도 황당했지만, A대표를 난감하게 했던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이어가 부르는 시중 납품가도 시시때때로 달라졌다. 첫날인 2월 28일엔 1장당 2800원(부가세 포함)을 요청하더니, 이튿날인 2월 29일엔 2500원으로 되레 낮아졌다. 

바이어는 “정부가 생산자금 50%를 대주기로 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지만, 시장의 현실은 달랐다. 마스크 생산 비용을 둘러싼 변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가령 마스크의 핵심 원자재인 MB필터의 가격은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기 전보다 3배가량 올라있었다. 중국산 마스크 필터용 부직포 수입이 중단돼 원재료 품귀현상을 호소하는 공장도 있었다. 정부는 “공적 공급을 통해 치솟은 마스크 가격을 통제하겠다”고 했지만 중간 유통과정에서 시세를 마음대로 조정한다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시중 납품가가 장당 2500~ 2800원이면, 소매가는 4000~5000원으로 치솟게 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 공적판매처에 제때 물량을 납품될 리 없었다.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마스크가 동나다시피 했고, 허탕 친 시민들의 원성이 이어졌다. 인천의 한 농협 하나로마트 관계자는 “주문은 해뒀지만 들어오는 물량은 매일 제각각”이라면서 “줄 서서 기다린 시민들에게 처음 공고한 숫자대로 팔 수 없어 난감했다”고 설명했다. 

마스크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마스크가 최대 1300만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5000만 인구가 매일 새 마스크를 쓰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일”이라면서 “세밀한 수급 전략도 없이 공적판매 확대에만 매달린 결과, 국민들의 불안만 더 커졌다”고 꼬집었다. 

 

수급 문제가 계속되자 정부는 뜬금없이 ‘마스크 아껴 쓰기’ 카드를 꺼냈다. 문 대통령은 3일 “효율적인 마스크 사용 방법으로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노력도 병행해달라”고 했다. 같은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마스크 1개로 3일을 써도 괜찮다”고 말했다. 

마스크 5일제라니…

식약처는 “동일인에 한해 마스크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마스크 사용 지침 개정안’을 발표했다. 기존 ‘마스크 착용 및 호흡에 따라 수분이 발생하고 필터가 오염돼 기능이 저하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선회한 것이다. 

공급이 부족하자 수요를 줄여보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원성이 빗발쳤다. 결국 정부는 5일 새로운 대책을 꺼냈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모든 마스크의 수출을 금지하고, 공적물량 공급분도 현재 총생산량의 50%에서 80%로 높이기로 했다. ▲1주당 1인 2매 구매제한 ▲요일별 구매 5부제 ▲중복구매 확인시스템 가동 등 ‘마스크 3대 구매 원칙’도 정했다. 


이제 국민들은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요일을 체크해야 한다. 마스크를 사러 갈 땐 주민등록증ㆍ운전면허증ㆍ여권 등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신분증이 없는 미성년자의 경우 주민등록등본으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공적판매처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을 없애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무능이 빚은 촌극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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