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강행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DLF 사태를 일으켰던 우리금융그룹은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의 제재가 확정되기 전 손태승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던 우리금융은 이번에도 민첩한 행보를 띠었다. 금융위원회의 기관 제재 의결(3월 4일)에 앞선 지난 3일 이사회를 열고 정기주주총회에 손 회장의 연임안을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금감원의 제재 결정에도 연임을 결심한 손 회장으로선 금융당국과의 소송전이 불가피해졌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손 회장이 연임을 강행하는 이유와 연임 가능성을 취재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연임을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사진=연합뉴스]

지난 4일 금융위원회 정례회의. 금융업계의 이목이 예민하게 쏠렸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한 금융감독원의 검사결과 조치안을 의결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의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DLF 사태의 책임이 있는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업무 일부정지 6개월과 각각 167억8000만원, 197억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지난 1월 30일 임직원 중징계(문책 경고)에 이어 기관까지 제재를 받은 셈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우리금융 회장직의 연임을 준비하고 있는 손태승 회장이다. 3월 25일로 예정된 우리금융 주주총회 전에 제재 결과를 통보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위의 제재 결과를 받은 금감원은 10일 이내에 최종 결과를 해당 금융회사에 통보해야 한다. 제재의 효력은 결과가 통보된 직후 발생한다.

손 회장이 제재를 받아들이면 향후 3년간 금융권에 취업할 수 없다. 손 회장이 연임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임직원 중징계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가처분을 신청하고, 법적 소송을 통해 ‘제재 결과의 적정성’을 다투는 것이다. 법원이 손 회장이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 효력이 중단된다. 이런 상황에서 손 회장의 연임이 주총을 통해 결정되면 3년의 임기를 채울 수 있다. 적어도 2~3년은 지나야 행정소송의 최종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2009년 금융당국의 중징계 처분을 받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도 대법원에서 중징계 무효 결정을 받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법원이 손 회장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는 순간, ‘연임의 길’이 열리는 셈이다.

시장의 예상대로 손 회장이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면, 한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금융이 금융당국과의 소송전까지 불사하면서 손 회장을 미는 이유가 뭐냐는 거다. [※ 참고: 우리금융은 지난해 12월 금감원의 중징계 사전 통보 직후 손 회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결정했다. 올 1월 30일 금감원의 중징계가 결정된 이후에도 손 회장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손 회장을 대체할 인물이 사실상 없다”고 말한다. 2월 13일 권광석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를 차기 우리은행장으로 내정했지만 임기는 1년에 불과하다.

중징계 확정된 손태승 회장

손 회장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라는 건데, 이는 우리금융의 숙원사업인 완전 민영화를 막아서는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이 손 회장의 연임 불발을 되레 부정적인 이슈로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법원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주느냐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 ▲효력정지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경우 ▲제재의 정당성이 논란이 있는 경우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다. 그렇다면 손 회장의 사례는 어떨까. 이대순 변호사는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예단하긴 어렵다”면서도 “DLF 사태의 파장을 감안하면 제재의 필요성은 충분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의 의견도 비슷하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DLF 사태, 라임자산운용 사태 등 소비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 사건의 중심엔 우리은행이 있었다”며 “DLF 사태의 배상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임을 위해 행정소송까지 진행하겠다는 건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 때문에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손 회장이 ‘징계의 정당성 문제’를 부각할 것으로 내다본다.

무슨 말일까. 금감원이 손 회장을 중징계하면서 내세운 근거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금융회사지배구조법)’는 것이다. 하지만 손 회장의 입장은 다르다. “내부통제 기준은 이미 마련돼 있는 데다, 이를 운영하는 문제는 CEO 책임이 아니다.” 실제로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는 내부통제 기준 위반을 이유로 CEO를 처벌할 근거 규정이 없다. [※ 참고: 제재 근거를 넣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일부에서 법원이 손 회장의 주장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편에선 우리은행에 내부통제 기준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한두개가 아니라고 쏴붙인다. 익명을 원한 금융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금감원이 발표한 DLF 사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DLF 출시를 반대한 위원을 교체해 찬성 의견을 받거나, 평가표 작성을 거부한 경우 찬성을 임의로 기재했다. 수익률 모의실험(백테스트) 결과에 문제를 제기한 실무자의 의견도 무시했다. 이는 내부통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법원, 손 회장 손 들어줄까

‘내부통제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CEO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현행법엔 없다’는 손태승 회장 측의 주장에도 빈틈이 있다는 반론도 숱하다. 김하나 민변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자.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과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시행령 등 관련된 법을 살펴보면 내부통제기준에 관한 자세한 규정이 있다. 위반 시 금감원장이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수준의 제재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처럼 손태승 회장을 둘러싸곤 소송, 연임 등 갖가지 말이 나온다. 모두 손 회장의 거취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런 논란이 우리금융과 우리금융 주주에게 어떤 도움이 될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손 회장과 금융당국의 전면전에 불이 붙었고, 이게 진흙탕 싸움의 서막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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