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있는가

정책 당국이 모든 분야에서 전문적일 수 없다. 전문가들의 식견을 외면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간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 전문가 집단에게 조언을 구하고, 국민들과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올바른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절차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이번 코로나19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전문가 패싱시대의 일단을 취재했다. 

지난 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종식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종식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13일 코로나19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지 이틀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간담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희망찬 메시지를 전했다. “국내 방역 관리는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방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

섣부른 발언이었다. 그로부터 5일 만인 2월 18일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시작됐고, 28명이었던 확진자 수는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7313명(3월 8일 기준)으로 불어났다. 

문 대통령의 ‘종식 발언’은 이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국민들에게 괜한 기대감을 심어줬다’는 식의 감정적인 비판이 아니었다. 국민 보건을 책임지는 방역 당국의 ‘전문성’이 결여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그럴 만도 했다. 2월 초중순 무렵 코로나19는 잠잠했지만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그 우려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고, 무증상 감염자가 방역망을 무너뜨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방역 전문 인력을 보강하고, 취약계층을 관리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종식 발언과 전문가들의 주장은 분명히 궤가 달랐다. 정부 정책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배제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른 이유다.

최근에도 비슷한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월 24일 정부는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수보회의)를 범의학계 전문가 단체 초청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했다.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전문가 단체엔 대한감염학회ㆍ한국역학회ㆍ대한응급의학회ㆍ대한감염관리간호사회 등이 참석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두 단체는 ‘중국 봉쇄론’을 주장한 곳이다. 중국 봉쇄론은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게 골자인데, 지역사회 감염의 확산을 막고 중증환자 치료에 중점을 둔 정부의 완화 전략과는 방향이 다르다.

물론 어떤 전략이 더 효과적이고, 시의적절한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주장이 엇갈릴 만큼 코로나19 대응 전략엔 불확실한 요소가 많다. 중요한 건 정책 당국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토론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책을 재점검하고 국민을 납득시키는 과정이 있었느냐는 점이다.

만약 ‘중국 봉쇄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가 수보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정책 당국은 전문성과 현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책을 수립하기에 앞서 산학연 전문가로 이뤄진 집단에 조언을 구하는 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먼저 현 정부의 사례부터 꼽아보자. 문재인 정부의 3대 전략투자 분야 중 하나는 수소경제다. 수소는 고갈 우려가 없고 연소 과정에서도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꿈의 에너지’다. 

공론화 과정 제대로 거쳤나

다른 국가에서 전기차 개발에 힘쓸 때 우리나라에선 수소차 개발에 전념한 이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수소경제를 전면에 내세울 때 우려를 나타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수소경제는 단기간에 실현될 가능성이 높지 않고 생산ㆍ저장 기술과 인프라 부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숱하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중장기적인 대책과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런 전문적 제언이 정책에 반영됐는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본격화한 지 1년여, 안전관리ㆍ효율성ㆍ인프라 확충에 따른 비용부담 등 숱한 문제가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어서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내연기관차ㆍ전기차ㆍ수소차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하면 경쟁력이 밀릴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수소차에 올인했는데, 원천기술 확보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틀어질 경우엔 리스크가 크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의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에도 전문가들이 배제됐다는 쓴소리가 쏟아진다. 탈원전 정책의 방향성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공론화 과정에서 전문가들을 배제했다는 이유에서다. 정책 초기부터 지적받은 문제인데, 지금도 크게 바뀐 게 없다.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학연 전문가 워킹그룹과 함께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5대 추진방향’을 수립했다. 하지만 원자력 분야 전문가는 원자력공학 교수 한명만 포함됐을 뿐, 탈원전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산업계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부가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면 제조기업들은 그에 맞춰서 계획을 짜는 수밖에 없다”면서 “전력수급계획이 나올 때면 밀실행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늘 나왔다”고 말했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이 신산업의 활로를 봉쇄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4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타다금지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자, 타다가 일부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건 대표적인 사례다. 국토교통부와 국회가 “위법이 아니다”는 법원의 판결(2월 19일)을 사실상 뒤집은 셈이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렌터카 기반 사업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면서 “다양하고 혁신적인 모빌리티 서비스가 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타다는 사실상 기존 서비스를 운영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도 일부 집단의 의견만 반영됐다는 논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카풀도, 타다도 마찬가지로 국토부가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발족해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모빌리티 업계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정부가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현 정부에서만 쏟아진 건 아니다. 이전 정부에서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숱한 우려에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명박 정부 역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해 전문가들의 충고를 묵살했다.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전문가들을 배제하고 여론을 유리한 쪽으로 이끄는 건 쉽다. 하지만 정치적이고 비전문적인 선택은 그만큼 잘못된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고, 국내 경제ㆍ사회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힐 공산이 크다. 숙의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번 정부가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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